네버 엔딩일까?
이번 이야기는 애플의 본 제품을 샀던 이야기가 아니다. 애플의 부가 제품이지만, 사악한 가격을 가지고 있는 액세서리에 관한 이야기다. 많은 분들이 아이패드를 사고 느꼈을 것이다. 키보드 하나에 40만 원이 넘는 가격을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애플의 정책을. 이번 이야기는 내가 애플의 제품을 사면서 추가적으로 구매했던 액세서리에 관한 이야기이다(거의 매직 키보드 이야기겠지만).
셀룰러 설정이 있는 아이패드는 정말 대단했다. 어디서든 인터넷이 끊김 없이 작동했고, 지하철뿐만 아니라 거래처 미팅을 가거나 카페 어디서든 간에 인터넷이 끊기지 않아서, 생산성 측면에서 너무나 매력적이었다(물론 지하철에서 유튜브 볼 수 있는 것도 만족스러웠고).
하지만 아이패드에어4가 만족스러울수록 집에 굴러다니던,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의 포지션이 더 애매해졌다. 나에겐 13인치 맥북프로도 있고, 11인치 아이패드에어4도 있는 상황에서 도대체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의 메리트가 무엇이 있을까? 성능이 더 좋고 화면 큰 거 빼고는 아무런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았다. 생산성 측면에서는 맥북프로의 압승이었고, 휴대성 측면에서는 아이패드에어4의 압승이었으니(심지어 셀룰러 버전이라, 인터넷도 마음대로 잘되니까) 와이파이 모델인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의 포지션이 정말로 애매해졌다. 마치 계륵을 처음 본 조조의 마음이랄까?
여기서 대부분은 이 비싼 기기를 처분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왜냐고? 그게 가장 합리적이니까. 큰 화면으로 보고 싶으면 맥북을 쓰면 되고, 휴대하고 싶으면 아이패드에어4를 쓰면 되는데, 굳이 그림도 잘 그리지 않는 사람이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를 들고 있을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왜냐고? 나는 프로 앱등이기 때문이다(물론 반년밖에 안된 앱등이지만).
난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의 애매한 포지션을 확실히 하기 위해, 여러 대안을 찾던 중 애매함이 오히려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휴대용 태블릿과 생산적인 노트북의 중간 지점이라면, 오히려 그 애매함이 장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필요할 때는 태블릿으로 쓰고, 또 조금 생산적인 일을 할 때는 노트북으로 쓸 수 있다면, 이 태블릿의 진가가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화면도 12.9인치로 커서, 노트북으로 쓰기에도 적당한 화면 크기였으니까. 이런 장점으로 볼 때,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는 처분하기에 너무나 아까운 기기임에 틀림이 없었다.
결국 12.9인치 아이패드 프로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찾던 중, 키보드가 꼭 있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유는 내가 하는 생산적인 용도의 80% 이상의 타이핑이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 키보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루마 퓨전 등과 같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쓰기에도, 키보드가 있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키보드를 사기 위해 3가지 선택지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1. 매직 키보드
2. 스마트키보드폴리오
3. 로지텍 콤보터치
일단 1번째 안이 가장 베스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매직 키보드의 가격이 엄청나게 사악하다는 것을. 매직 키보드는 12.9인치 기준 44만 원이나 되는 가격이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44만 원의 가격은 무려 보급형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미니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아이패드 하나 값을 키보드에 지불한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2번째와 3번째는 가격 적인 면에서 확실히 장점이 있었고,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뚜렷했다. 일단 스마트키보드폴리오는 가격이 22만 원 선으로 가장 저렴하다(비교해서 저렴한 거지, 키보드 하나에 22만 원이 말이 되나?) 그리고 중량도 3개 중 가장 가볍다. 안 그래도 무거운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의 무게를 합쳐도 충분히 휴대할 만한 무게였다. 매직 키보드를 합친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의 무게가 1.3kg 정도다. 반면 스마트키보드폴리오를 합친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는 1kg 내외로 상대적으로 가볍다. 휴대용으로도 적합했고 또한, 나는 맥북프로 13인치가 있기 때문에, 메인 랩탑으로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를 쓸 일은 없었다. 때문에 태블릿 기능을 사용할 때도 적합한 스마트키보드폴리오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다. 스마트키보드폴리오의 타자감이 영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스마트키보드폴리오의 타자감은 내 기준에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치 키보드 커버를 씌운 타자감이었는데, 나는 평소에도 키보드 커버의 타자감이 싫어서, 절대 키보드 커버를 쓰지 않는다. 내가 프리스비에서 스마트키보드폴리오로 타자를 쳐보니, 오타도 많이 났다. 여러 가지 면에서 좋더라고 해도, 막상 키보드를 쓰기 싫어지는 타자감을 탑재했다면 내가 과연 이 키보드를 쓸까?...
마지막으로 고민했던 로지텍 콤보터치는 가격 면에서는 매직 키보드보다 14만 원 정도 저렴했다. 또한, 태블릿 모드로 사용할 수 있게 키보드와 떼어내는 기능도 있었다. 트랙패드도 매직 키보드보다 넓어서, 사용감이 편하다는 게 로지텍 콤보터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다. 키보드도 만족스러워서 로지텍 콤보터치를 구매하는 게 거의 확정될 뻔했지만, 가장 큰 문제가 3개 있었다.
- 로지텍 콤보터치의 가장 큰 단점 3개
1. 별도의 태블릿 지지대가 존재한다.
2. 개인적으로 디자인 불호
3. 사과 로고 없음...
일단 1번의 경우에는 누군가에게는 장점이지만, 별도의 태블릿 지지대 때문에, 무릎에 올려놓고 타자를 치기 어렵다는 게 아쉬웠다. 지하철에서 이동하면서 글을 쓸 때는 랩탑처럼 하단의 지지대로 버텨주어야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데, 로지텍 콤보터치는 별도의 태블릿 지지대로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무릎에 올려놓고 글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2번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 취향 때문이지만, 로지텍 콤보터치의 스웨이드 재질이 너무 아재 감성스러웠다. 누군가는 그 디자인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개인 취향으로는 로지텍 콤보터치의 디자인은 불호의 영역이라 구매에 더 손이 안 갔다.
마지막으로 사과 로고가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웠다(역시 난 앱등이).
이쯤 되면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어떤 키보드를 샀는지. 그래 결국 난 매직 키보드를 구매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프로 앱등이인 나도 44만 원을 모두 지불하고 매직 키보드를 구매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당근 마켓에서 매직 키보드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고, 계속 찾아보다가 당근 마켓에서 29만 원에 매직 키보드 12.9인치를 구매하게 되었다.
확실히 매직 키보드를 써보니, 아이패드의 활용도는 여러 면에서 좋아졌다. 아이패드로 글쓰기가 편해졌고, 영상을 볼 때도 트랙패드로 편하게 스크롤하고 클릭할 수 있으니, 여러 면에서 좋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게는 늘 아쉬웠다. 아이패드 12.9인치랑 매직 키보드를 합치니 무게가 1.3kg 정도였는데, 이 무게는 m1맥북에어랑 비슷하니, 거의 노트북 1개를 들고 다니는 무게였다. 물론 디자인이 만족스러웠고, 중고로 사니까 가격적인 면에서도 만족스러웠지만, 무게 때문에 아쉽게도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글을 쓸 때는 맥북을 쓰고, 휴대할 때는 아이패드 에어4를 쓰니, 가끔씩 집 근처 카페 갈 때나 들고 갈 정도였다.
2. 아니 매직 키보드를 하나 더 산다고?(매직 키보드 11인치)
매직 키보드를 샀던 내가 또 매직 키보드를 산다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 거 같나? 100% 미쳤다는 말을 듣겠지, 나는 it유튜버도 아닌, 일개 마케터임에도 왜 그렇게 매직 키보드를 2개 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냥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평상시에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보다 아이패드에어4를 가장 많이 쓴다. 그래서 늘 배터리 충전하는 건 아이패드에어4이고, 메모할 때도 아이패드에어4를 쓰니, 업무 하면서 타자 쓸 상황이 오더라도,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보다는 아이패드에어4를 활용할 일이 많았다. 이 상황에서 원래 쓰던, 블루투스 키보드는 늘 사용하기 불편했고, 휴대용으로 쓸 수 있는 키보드의 필요성은 더 커져만 갔다.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와 매직 키보드를 합친 조합은 무거워서, 잘 들고 다니고 싶지 않았으니... 집에서는 늘 계륵 같았지만, 그래도 매직 키보드를 한 번 써보니, 다른 건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도 매직 키보드 11인치를 당근으로 구매했고(21만 원 정도에서 구매), 지금도 매일 출근할 때 들고 다닌다.
자 총 4편에 걸쳐서 반년 동안 애플 제품에 750만 원가량을 쓴 경위를 밝혔다. 이렇게 까지 애플 제품에 돈을 쓰게 된 건, 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고, 내가 삼성 제품을 살 때는 이렇게 까지 끌리지는 않았다. 아마 돈을 쓰면 쓸수록 애플 제품이 가진 연동성이 마음에 들었기에, 이런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은 건가 싶다.
애플 제품은 하나만 쓸 때는 그 진가를 모른다. 하지만, 하나 씩 제품군이 늘어날 때마다, 어디서든 쉽게 연동되고, 즉각적으로 피드백되는 경험은 다른 브랜드 제품이 주지 못한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애플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하드웨어를 제조하기에, 이런 환상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아이폰에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저장하고 나서, 아이패드에서도 자동으로 와이파이 비번이 연동되는 걸 보면, 정말 애플 제품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단점도 크다. 일단 삼성 페이가 안된다는 것은, 사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괜히 허탈감을 들게 만든다. 갤럭시 유저는 지갑을 안 들고 다니고, 교통카드도 없이 폰으로 잘 들고 다니는데, 아이폰 유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에서 애플 페이가 도입될 확률은 극히 낮기 때문에, 더더욱 박탈감이 느껴진다. 애플 페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서드파티 제품들이 있긴 하지만, 갤럭시의 삼성 페이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결국 국내에서 쓰기에 가장 편리한 핸드폰은 갤럭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또, 전화 녹음이 안된다는 것도 아이폰의 큰 단점이다. 사실 미국에서는 전화 녹취가 불법이라 외국에서 출시되는 갤럭시 폰은 전화 녹취기능이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 갤럭시 폰은 전화 녹취가 가능하다. 아이폰은 애당초 한국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폰은 아니기에, 애초에 전화 녹취기능이 탑재되지 않았다. 또, 전화 녹취는 애플에서 불법으로 여기는 일이기에, 다른 앱들을 활용해서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아이폰을 쓰면서, 내가 안드로이드에서 잘 쓰던 앱을 못쓰는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나는 데일리북 pro라는 앱을 안드로이드에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앱 안에 내가 1년 동안 365권을 읽었던 데이터가 그대로 저장되어있다. 2018년 이후로 2021년 4월까지 읽은 책은 모두 이 앱 안에 기록되어있는데, 그 기록을 아이폰에서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안드로이드를 9년 동안 쓰던 유저로서 애플의 장단점이 명확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애플 제품이 주는 새로운 경험이 신선한 자극을 준건 사실이다. 사람은 신선함을 느낄 때마다, 도파민이 분비되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애플 제품이 주는 신선함은 내게 도파민을 불러일으켰다. 모르는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애플이 주었기에, 나는 거듭 애플에 빠져든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어떤 애플 제품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지 무척 기대가 된다.(물론 내 지갑은 보존해야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애플에 쓴돈 750 만 원
아마도 끝이길 빌며.(그렇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