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 스며드는 감정의 온기
안국역을 시작으로 삼청동에서 익선동까지의 거리를 걸었다. 사실 어디서 시작하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걷다 보면 모든 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좁고 깊숙한 작은 골목길, 굴곡진 언덕 사이사이를 누비는 일이 재미있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구든 이곳에서만큼은 길치여도 상관없다. 그것이 익숙함에서 멀어지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에는 오히려 더 좋을 테니까.
꽤 오래된 사이의 친구들과 수십 년도 더 되어 낡아가는 서울을 걷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그래, 이 거리는 어딘가 모르게 우리를 닮아있다. 이곳은 변하는 듯 변하지 않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듯 변한다.
세월이 지나도 오래도록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며 때론 나침반이 되어주는 곳들이 있다. 그러나 익숙한 곳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곳으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추억의 장소가 또 하나 사라졌다는 생각에 많이 아쉽지만, 변화무쌍한 서울에서 그나마 이곳은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난 이런 흐름이 좋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것은 도시만이 아니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어쩌면 나의 모습일 것이다.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고자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누군가는 변해가는 내 모습이 좋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변해가는 내게 원망과 비난을 쏟아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저 스스로의 모습이 좋으니 그걸로 되었다. 각자의 사정 속에 교류가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변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나를 구심점으로 모인 이들과의 시간은 서먹하고 부담스럽던 첫 만남과는 다르게 조금 더 부드러운 분위기로 흘러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리고 가깝게 지내는 것이 기뻤다. 또 다른 내 모습을 보이고, 그들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며 이들과 더 끈끈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익숙했던 관계의 재발견이자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