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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강가 Sep 23. 2023

10. 적막 속에서

#1 겨울, 스며드는 감정의 온기


아침부터 내린 눈이 조금씩 쌓인 종묘는 찾는 이들도 적어 고요했다. 잠들어 있는 자들을 위한 공간의 고즈넉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들뜬 내 마음까지 차분하게 가라앉혀버렸다. 움직임이 없다 해서 생기를 잃은 것은 아니다.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것 자체로도 생명력이 충분하다. 결계라도 쳐 있는 듯, 가까운 도시의 소음도 묻혀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다. 이 적막을 깨는 것은 오로지 나와 그의 발걸음 소리뿐이라 묵언수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 어떠한 말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누군가는 망한 왕조의 왕릉과 유적들을 왜 지켜야 하느냐고 따져 묻기도 하지만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지되었던 국가를 과연 그저 '망한 왕조'로만 볼 수 있을까? 그로부터 고작해야 100년이 넘은 시대에 살고 있는 100년도 채 못 산 우리가 말이다. 지금 시대가 얼마나 갈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것은 500년이 훌쩍 넘은 다음에 생각해 볼 문제다.





난 오히려 서울에 살면서 여러 문화유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좋았다.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한 발만 내디디면 과거와 현재를 오갈 수 있다는 것.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조금만 비껴 나오면 다른 세상이 나를 쉬게 한다는 것. 그 적막한 세상이 시끄러운 마음과 머릿속을 평화롭게 정리해주곤 했다. 동적(動的)인 나는 정적(靜的)인 것들로부터 평화를 얻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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