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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눈의 침묵

#1 겨울, 스며드는 감정의 온기

by 하늘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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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눈을 만끽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인제 자작나무숲이 떠올랐다. 연애를 하기 전의 일이다.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3~5일 후에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던 적이 있었다. 울릉도와 강원도의 날씨를 계속 확인하다 타이밍이 맞았던 어느 날,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에서 당일치기 같은 1박 2일을 보냈다.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너무도 멀고 먼 곳이었다. 그렇지만 제법 인복이 많은 편이라 좋은 분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에 다시 가고 싶은 곳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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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당일치기로는 힘들다는 생각에 숙박장소를 찾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 이곳 만해마을이다. 내설악의 기운과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명상 속에 빠져들게 한다. 하물며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인 그분의 이름이 깃든 곳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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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라고는 우리뿐인 북카페는 오래된 레코드와 다양한 서적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한용운 선생의 시가 적힌 머그컵에 담긴 따뜻한 차와 보물찾기 하듯 고른 책을 함께 음미해 본다. 혀끝에서 문장들이 박음질된다(혓바늘/이혜미)는 시처럼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박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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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자작나무숲에 도착하자마자 떠오른 것은 한용운 시인의『님의 침묵』이다. 내가 기대한 것은 새하얀 눈으로 덮인 자작나무숲이었다. 입산불가철인 2월에도 폭설이 내려 이례적으로 개방했던 그때처럼.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온 자작나무숲에는 눈의 흔적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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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이번 겨울은 도통 눈구경하기가 힘들다.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린다 해도 다 녹을 만큼 기온이 올라가 버려 눈을 보기가 쉽지 않다. 유난히도 따뜻한 겨울이라 눈이 녹았을 거라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계절을 느끼고 싶어 찾은 곳이었는데, 그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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