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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강가 Dec 25. 2023

22. 우리만의 드라마

#1 겨울, 스며드는 감정의 온기


대구에서 안동까지 출퇴근하던 때가 있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도 일하고, 남들 잘 때도 일한다. 반대로 남들 일할 때 쉬고, 남들 일할 때 자기도 한다. 물론, 남들 쉴 때 쉬기도 한다. 그런 탓에 그와 주말마다 데이트하기가 쉽지는 않다. 어느 주말 퇴근길, 그가 안동까지 와서 나를 데려간 곳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였던 만휴정이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 대신에, 얼음이 녹은 틈에서 나온 물줄기가 졸졸졸 소리 내며 조용한 리듬으로 살아난다. 얼어버린 땅보다 살짝 녹아내리는 땅이 더 미끄럽고 위험한 법이다. 원하는 구도에서 살짝 벗어났을 뿐인데, 우리는 또 우리만의 드라마를 찍어내고야 만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스완네 집 쪽으로 2』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접한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나에게 만휴정은 이제 더 이상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가 아니다. 먼 훗날 그 언젠가 다시 그리워질 아름다운 연애시절 추억의 장소로 거듭났다. 어느 추운 겨울 아침나절의 한 때는 내 기억 속에서 작고 소소한 일상의 작은 조각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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