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온이와 함께 불암산을 넘어 둘레길 1코스를 완주하다.
때는 23년 5월이었다. 이때쯤이면 더워질 것으로 보아 우리는 원래 반려견 동반 가능 호텔에 가기로 했었었다. 하지만 23년 5월은 그리 덥지 않았다. 날씨가 생각보다 선선했다. 안에서 보내기는 너무 아까운 날씨라는 결론의 끝에 우리는 미처 다 돌지 못했던 둘레길 1코스 불암산을 마저 오르기로 했다. 1편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둘레길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1코스를 너무 만만하게 봤던 우리는 수락산을 오르고 내려오다가 도가니가 아려오고 해도 뉘엿뉘엿 지고 배도 고파오는 냉혹한 현실에 완주중도포기라는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엔 오만함이란 없다. 무릎 테이핑도 챙기고 오르기 전 준비운동도 했다. 그때 내려왔던 철쭉동산에서 도장을 찍고 불암산으로 향했다. 물론 다온이와 함께.
이 날 다온이는 쿨 나시티를 입고 왔다. 강아지는 사람보다 더위를 잘 타기 때문에 다온이를 위해 친구가 쿨 나시티를 구매했다고 한다. 사실 다온이는 목과 어깨가 일자라 옷을 입고와도 자꾸 오프숄더처럼 옷이 내려간다. 옷을 입고 온 날은 항상 옷이 흘러내려서 결국엔 옷을 벗길 수밖에 없다. 이번에 입은 옷은 끈나시라 우리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나시끈을 더 짧게 묶어주었다. 나름 고정이 잘 된 것 같은 모습에 흡족해하며 힘차게 출발했다.
불암산은 생각보다 평탄(?)했다. 수락산이랑 비교하면 평지에 가까웠다. 만만의 준비를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느낌은 동네 산 오르는 정도였다. 열심히 오르다 보니 지브리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산길이 펼쳐졌다.
사진을 보면 느껴질 것이다. 평지. 이 정도면 정말 평지다.. 그전 수락산에 비교해 난이도가 급격히 내려간 불암산 산길에 우리는 미소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자신감이 붙었다. 다온이도 후다닥 우리를 앞질러갔다. 수락산을 갔었던 날씨에 비해 기온이 많이 올라가서 다온이가 많이 헥헥댔다. 살짝 걱정이 됐지만 오늘 완주를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우리는 열심히 산길을 올랐다.
너무 더워하는 다온이를 위해 중간중간 쉬어갔다. 다온이는 트레킹을 할 때면 물을 거부한다. 왜냐? 내 친구가 우유를 준다는 걸 알기 때문에. 트레킹을 할 때 기력보충과 영양보충을 위해 특별히 다온이에게 우유를 주는 내 친구를 너무나도 잘 알아버린 다온이는 물을 거부한다. 우유를 달라는 것이다. 정말 똑똑하다 이렇게 똑똑할 수가.. 우유를 보자 흥분한 다온이는 숨도 쉬지 않고 우유를 해치워버렸다.
강아지와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트레킹을 갈 때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특히 조금이라도 기온이 올라갔다 싶으면 강아지가 느끼는 온도는 더 높기 때문에 중간중간 쉬어주고 쿨나시를 물로 적셔주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물을 등에 뿌려주기도 해야 한다. 물을 많이 챙겨가야 한다. 가벼운 트레킹은 강아지와 함께라면 절대 불가능..! 잘 살펴주고 케어해 줘야 사람도 강아지도 즐거운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좀 걷다 보니 중간중간 쉼터 같은 곳들이 자주 등장했다. 할아버지 댁에 가면 볼 수 있는 시계가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다. 고즈넉함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우리가 향하는 둘레길 1코스 마지막 도착지, 대망의 화랑대역 표지판이 보이고 생각보다 싱거운 산길에 만만의 준비를 했던 친구와 나는 머쓱했지만 행복했다. 트레킹은 좋지만 힘든 건 무서워.. 이 모순된 감정이란..
중간중간 쉬어 준 덕분일까? 잘 걸어주는 다온이 덕분에 둘레길 1코스 진도를 팍팍 나갈 수 있었다. 중반까지 온 소감을 말하자면 불암산은 참 친절한 산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수락산은 텃세가 심한 느낌이었다면 불암산은 쉬엄쉬엄 가슈~ 이런 느낌..? 기분 좋게 트레킹 할 수 있었다. 수락산은 눈이 즐거운 절경이고 장관인 곳들이 많았다면 불암산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곳들이 많았다.
걸어가다 보니 불암산 전망대가 나왔다. 엘리베이터까지 갖추고 있어 놀랐다. 망설임 없이 바로 신나게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올라가니 절경이고 장관이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수락산에서 봤던 것보다는 감동이 덜하지만 편하게 산 정상과 산 아래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둘레길만 걸어서 그렇지 맘먹고 불암산 정산까지 간다면 힘들 것 같다. 또 도가니를 붙잡으며 울지도 모른다. 불암산 산 정상을 눈으로 보니 편하게만 생각했던 불암산이 무서워졌다. 불암산도 엄청난 돌산이구나.. 이렇게 둘레길 코스로 맛보기 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계속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불암산은 동네 쉼터처럼 중간중간 쉼터가 아기자기하게 위치해 있었다. 쉬지 않아도 되는데 쉬고 싶을 만큼 평화로운 느낌이 한가득이었다. 고양이 친구도 만나고 허리스트레칭운동기구도 하며 여유를 즐겼다. 이제야 우리가 걷는 이곳이 둘레길인 것이 실감이 났다. 이게 둘레길이지.
그리고 슬슬 허기 질 다온이를 위해 간식타임을 갖기로 했다.
간식도 다 먹고 예쁨도 실컷 받았겠다. 이제 슬슬 다시 걸어볼까?
계속 오렌지리본을 따라 걸었다. 리본은 친절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곳곳에 위치해 있다. 멍 때리다가 혹은 딴생각하다가 놓칠 수 있으니 집중해야 한다.
너무 아름다운 다리가 있어서 당장 친구에게 사진 찍으라고 했다. 거의 강압적으로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지나칠 수 없었다. 트레킹의 묘미는 이런 즐거움이 아닐까? 빠르게 정상을 향해 달리기보다는 멈춰서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는 것. 우리 성향과 너무 잘 맞는다. 우리는 트레킹 체질이야.
다온이가 옷을 끝까지 못 입고 있는 이유 하나를 깜박했다. 다온이는 온몸으로 자연을 즐기는 걸 좋아한다. 그것도 등으로 맘껏 즐겨야 한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냄새가 나는 곳에 망설임 없이 등을 비빈다. 내 친구의 마음이 쪼그라드는 건 모른 채. 처음엔 헉! 하고 당황하지만 즐거워하는 다온이를 보면 “그래, 다온이가 즐거우면 됐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귀여워서 봐주는 거야, 김다온! 결국 비장하게 입혔던 쿨나시는 가방으로 들어갔다.
1편 마지막에 같이 산을 오르면서 다온이 와의 우정이 깊어진 것 같다고 썼는데 이게 그 이유다. 항상 앞서가다가도 우리가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걸음을 맞춰준다. 다온이와 같이 산을 오르면 나도 모르게 찡하다. 짜식.. 나 확인해 주는 거야? 나 기다려주는 거야? 듬직한 다온이와 이런 교감을 나누며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된다. 정말 순수하고 귀엽고 듬직하고 소중한 존재, 김다온. 다온이의 배려심을 느끼며 많이 배웠다. 산행은 김다온처럼. 영화 중에 다온이 같은 친구가 나오는 만화영화가 있다. ‘캡틴 스터비’라는 영화인데 군대에서 큰 공을 세워 하사계급을 받은 강아지 ‘스터비’에 대한 만화영화다. 놀랍게도 실화이다. 무슨 강아지가 하사계급을 받냐며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다온이를 보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다. 용감하고 용맹하고 의리 있고 영리하다.
반복되는 길을 지나지나 불암산 입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불암산 둘레길 코스가 쉬워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트레킹 할 수 있었다. 물론 1편 수락산에서는 힘든 만큼 감동이 배로 왔었다. 힘듦과 감동은 비례한다. 이번 불암산 둘레길은 수락산만큼 진한 감동은 없었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경치를 천천히 감상하고 다온이의 표정과 사랑스러운 행동 같은,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음미하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불암산 입구까지 도착했으니 거의 다 완주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랑대역까지 도착해야 1코스가 끝난다. 그래야 도장을 찍을 수 있다. 물론 도장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부터 도장을 찍으니 집착하게 됐다. 도장을 찍어야 인정받은 느낌이 든달까? 더워하는 다온이의 등에 물을 뿌려주고 서둘러 화랑대역으로 향했다.
산길로 된 둘레길만 걷다가 보도블록을 걷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잘 다져진 길을 걸으며 길이 너무 편하고 쉬워서 감사하다는 말이 계속 튀어나왔다. 도심 속이라 정신없어서 오렌지 리본을 놓칠까 봐 친구와 나는 한껏 집중해서 리본을 찾았는데 너무 친절하게 위치해 있어 무사히 화랑대역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도장을 찍고 나니 뿌듯함에 허허허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도 잠시 우리는 몹시 배가 고픔을 인지했다. 이제부터 반려견동반 식당을 찾아야 한다. 1편에서도 말했지만 반려견 동반 식당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반려견 동반 가능 식당 밀집지역이면 모를까.. 내 친구가 반려견 동반이 되는 브런치매장을 찾아냈고 우리는 서둘러 브런치매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브런치매장은 거의 만석이었고 아주 조그마한 테이블 한 자리 밖에 없었다. 많이 걸어서 지친 다온이와 내 친구를 보자니 안 되겠다 싶어 옆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혹시 반려견 동반이 가능할까요?” 내 질문에 당황하시다가 한가한 시간이니 들어오라고 허락해 주셨다. 어떤 음식점인지 그때 확인했던 것 같다. 감자탕집이었다. 꽃집 같은 예쁜 감자탕집. 감사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내 친구는 신나서 원래 빵보다 밥을 먹고 싶었다며 서둘러 메뉴판을 훑었다. 그리고 사장님께 계속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너무나 고단 했던 걸까? 다온이는 밥 먹고 바로 기절하듯이 쓰러져 잤다.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까지도 다온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다온이를 보고 사장님은 너무 순하다며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네.. 오늘 하루 많이 고됐거든요.. 얌전히 자는 다온이를 보고 있자니 고맙고 대견하고 기특했다. 우리가 밥 다 먹을 때까지 잘 자줘서 고마워 다온아.
다온이와 둘레길 1코스 완주를 기념하며 다온이에게 쓰는 편지.
다온아. 무사히 둘레길 1코스를 함께 완주했네. 생각해 보면 다온이가 제일 잘 완주했어. 누나들은 비실비실거리고 힘들어하고 느려서 다온이가 많이 답답했을 텐데.. 그래도 계속 눈 맞춰주고 기다려주고 걸음 맞춰줘서 고마워. 다온이가 있어서 힘든 1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누나들끼리만 했었으면 수락산에서 헬기 불렀을 수도 있어. (농담이야) 다온이가 보여준 배려심, 나도 밖에서 많이 베풀려고. 기다려주고 속도 맞춰주고, 빠른 게 다 좋은 건 아니잖아. 다온이랑 산 오른 것처럼 즐겁게 천천히 인생을 즐겨보려고! 나랑 함께 소중한 추억 만들어줘서 고마워. 다온아 우리 다음에 또 트레킹 같이하자.
사랑하는 내 친구, 내 동생 다온이에게.
https://youtu.be/uTgTLdydKz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