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Jul 14. 2023

다온이와 둘레길 1코스를 완주하다.-1

두 개의 심장 김다온과 수락산을 가다.



걷기와 등산을 즐겨하는 내 친구는 나에게 자주 등산이나 걷기 코스를 함께 하자고 권유한다. 이번에 친구는 서울 둘레길에 꽂혔는데 친구가 자신의 반려견 다온이와 함께 하자고 했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더군다나 다온이와 함께라니 이건 무조건 가야 한다. 4월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덥지 않은 달이라 딱이었다.  친구가 둘레길 1코스에 관한 블로그 글들을 찾아보고는 하루 만에 완주한 사람들이 많다며 오래 걸릴까.. 힘들진 않을까.. 하며 쫄아있는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친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다. 그리고 친구도 하루 만에 완주해 낼 것이라 확신했었다.


처음 만난 누나 친구들과 밤새 놀았던 김다온.


다온이와 나는 내가 20대 초반 때 처음 만났다. 이태원에서 있었던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다온이와 만났고 밤새 같이 놀았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당시면 반려견 동반되는 곳이 별로 없었을 텐데 우리는 잘도 찾아갔다. 그리고 강아지와 같이 밤을 새워서 놀다니.. 세상에.. 다온이가 체력이 좋아서 다행이지 그때 생각하면 다온이에게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들린 가게에서 똥방귀를 뀌며 안절부절못하는 다온이를 똥 마려워서 그런 줄 모르고 ‘왜 그러지? 자리가 불편한가?’ 했는데 가게 나오자마자 대왕 똥을 싼 다온이의 자세가 잊히지 않는다.  


애교 많은 성격 + 한껏 성난 몸매 = 다온 왕자


다온이는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로 강철체력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근육으로 형성되어 있는 다온이의 몸이 말해준다. 지금은 9살이 된 다온이는 전에 비해 체력이 많이 죽었지만 그래도 팔팔하다. 열심히 놀고 2분 살짝 자면 다시 충전이 돼서 뛰어논다.


듬직한 다온이.


둘레길 1코스는 다른 둘레길 코스에 비해 많이 힘들고 험하다고 했다. 우리는 한라산 등반한 경험이 있어서 정말 오만하게 “껌이겠지!” 라며 쉽게 생각했다. 12시에 만나서 다온이 똥과 오줌을 누이고 치우고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온이는 우리보다 잘 걸었다. 절대 안아달라거나 지쳐 쓰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쓰러진다면 모를까.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오렌지 리본


처음은 아주 순조로웠다. 주황색 리본을 따라서 걸으니 게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재밌었다. 얘기하다가 주황색 리본을 놓쳐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농담으로 이렇게 못 보고 놓쳐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인 것 같지 않냐고 하하 호호 웃으며 걸어갔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우리에게 펼쳐질 험난한 길을 몰랐지..


사람도 강아지도 신나는 간식타임.


열심히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허기가 찾아왔다. 우리는 급하게 싸 온 먹거리들을 풀었다. 나는 배고플 친구와 나를 위해 토스트와 과일 그리고 요거트를 챙겨 왔다. 우리는 야무지게 먹었고 다온이에게는 우유를 줬다. 다온이는 유제품 러버인데 유제품을 좋아하는 만큼 방귀냄새도 진하다. 약간 고소하게 진하고 독하다. 사람과 강아지 모두 다 즐거운 간식타임을 가진 뒤 쓰레기는 싹 챙겨 가방에 넣었다. 한데 먹거리를 챙겨 올 필요는 없었다. 중간중간에 편의점도 있고 작은 식당들도 많이 있었다. (물론 강아지와 함께 먹으려면 야외에서 먹어야 하겠지만.. 야외도 안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저기요. 김다온 씨! 여기 사람 있어요.. 발맞춰가줘요 제발..


사실 둘레길이라고 해서 평지길이 많을 줄 알았는데 산이었다. 오르고 또 오르고 오르는 걸 반복해서 내 친구와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다온이는 두 개의 심장이란 별명에 딱 맞게 우리를 끌어올려줬다. 줄을 잡고 있던 나는 종이인형처럼 다온이에게 딸려 내려갔다가 올라갔다. 내가 말을 타고 있는 건가? 썰매를 타고 있는 건가? 싶었다. 다온이에게 끌려가면서 “다온아 나는 사람이야.. 다리가 두 개밖에 없단 말이야..”를 외쳤다. 하지만 다온이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좋아요.” 표현왕 김다온. 스킨십 왕자 김다온. 포에버.


다온이는 유전적으로 난청을 가지고 태어났다. 친구는 다온이를 식구로 맞이하고 좀 지난 뒤 알게 됐다고 한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불렀는데도 반응이 없어서 다온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봤더니 유전적 난청이 있어서 소리를 못 듣는다고 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온이는 그 어떤 강아지들 보다도 씩씩하다. 남 신경 안 쓰는 애교쟁이 마이웨이인 다온이. 다온이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참 많다. 생김새 때문에 사람들에게 예쁨을 받지 못해도, 강아지 친구들이 경계해도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함을 표현한다. ‘나도 예뻐해 주세요’,  ‘난 너 좋아.’라는 몸짓과 애교를 마음껏 표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온이를 밀어내면 쿨하게 멀찍이 떨어져서 신경 쓰지 않고 논다. 이렇게 멋진 강아지가 또 있을까? 진심으로 대견하고 기특하고 또 본받고 싶다. 미움받을까 봐 부담스러워할까 봐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멋지다.  다온이는 소심한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생명체이다.


차라리 날 욕하쇼! 가만히 있는 다온이한테 왜 그래요… 다온이의 반항눈빛을 받아라! 얍!


 우리는 수락산을 오르고 올랐다. 오르는 와중에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다온이의 생김새만 보고 씨름시켜 보라고 하거나 입마개를 하라고 하거나.. 어휴. 무례함에 한숨만 나온다. 다온이는 입마개 견종이 아니다. 그리고 다온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한 아저씨는 저 멀리서 달려오면서 대뜸 “줄 잡아! 문다고! 물어!” 이러는 것이다. 줄은 이미 잘 잡고 있는데.. 아저씨께 “아저씨 안 물어요.”라고 얘기했지만 “아 문다니까! 물면 어쩔래?” 라며 우리에게 소리 질렀다.  다온인 그 아저씨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다. 다온이가 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친구와 나는 불쾌하고 화가 났지만 “우리 저렇게 늙지 말자.”라고 하며 서로를 진정시켰다.


수락산은 역대급 돌산이구나..를 다리로 느낀 날..
와 경치 뭐야? 여기 둘레길 맞아? 둘레길 맞나고!를 100번 외친 날..


수락산을 오르고 올라 정상 비슷한 곳에 도착했다. 돌산이 뿜어내는 위엄에 우리는 입이 떡 벌어졌다. “둘레길 맞아? 이게 둘레길 맞냐고..” 옛날에 올랐던 북한산의 힘듦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앞에 펼쳐진 경치를 감상했다. 다온이는 아직까지도 팔팔했다. 돌들을 넘나들며 신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보잘것없는 나의 체력을 반성했다. 다온이와 같이 사진을 남기자며 사진타임을 가졌다. 다온이는 참을성 있게 사진타임에 응해주었다.


이렇게 생긴 길들이 무한 반복됐다.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 잘못했어요. 사람 살려!


정상 같은 곳을 지나 또 내려가고 올라가고를 반복했다. 갑자기 나의 도가니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는 괜찮았는데 내려갈 때 너무 아팠다. 끝이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반복되는 여정을 살짝 질려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라산 하산길과 같이 똑같이 생긴 끝 없는 계단을 내려오는 기분을 또다시 느꼈다. 다온이는 우리의 걸음을 맞춰주었다. 먼저 올라가서 우리를 기다려줬다. (물론 줄은 계속 잡고 있었다.) 다온이도 반복되는 길에 살짝 멈칫 해 했다. 한참을 반복되는 계단을 쳐다보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 다온이의 모습을 보고 ‘혹시 다온이도 지겨운 걸까..?’ 내 멋대로 생각하게 됐다.  


큰일이다. 해가 진다. 이걸 어쩐다. 여기서 헬기 부르면 우리 구해주나..?


해가 저물어갔다. 우리의 배도 고파왔다. 하지만 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린 지쳐갔고 다온이만 지치지 않았다. 우리의 자존심이 너무너무 상했지만 완주는 힘들다고 결론 내렸다. 철쭉동산까지만 가자. 거기에서 도장만 찍자. 그리고 다음에 다시 철쭉동산에서 시작해서 불암산까지 완주해 보자. 우리가 너무 오만했다. 우리는 우리가 완주할 줄 알았어요. 우리는 오만한 사람들입니다..


신기루처럼 보였던 철쭉동산. 해가 넘어가고 있어서 더 황홀했다.


겨우겨우 해가 넘어갈 즈음에 철쭉동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덜거리는 나의 도가니를 붙잡고 겨우겨우 내려왔다. 친구도 다리가 아린다고 했다. 지치고 힘든 다리를 이끌고 철쭉동산에 다다른 순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철쭉 철이라서 철쭉이 만개했었고 타이밍 좋게 넘어가고 있는 해의 모습이 마치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지치고 힘든 모든 감정들이 한순간에 마법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 아름다운 걸 보면 정신적으로 잠깐 마비가 되는 걸까? 너덜 거리는 다리의 통증이 갑자기 느껴지지 않고 미소가 절로 나왔다. 멋진 경치에서 다온이와 함께 사진을 남겼다.


감격스러운 철쭉동산 도착 기념사진. 약간 텔레토비 동산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배가 고팠다. 너무 허기가 졌다. 철쭉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나니 배고픔이 배로 왔다. 자, 이제부터 반려견동반 식당을 찾아야 한다. 지도앱을 켜 반려견 동반이 되는 집을 찾아봤다. 역시나 없었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 식당에 전화해서 조심스럽게 반려견동반 되는지 여쭤봤는데 중식당에서 룸을 드릴 테니 식사하러 오라고 해주셨다. 친구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 사실 이렇게 반려견동반에 대해 호의적인 식당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반려견동반 가능 식당 밀집지역이 아니라면 정말 찾기 힘들다.) 게다가 룸을 주시다니.. 친구는 엄청 많이 시킬 거라며 각오하라고 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중식당으로 향했다.


요를 깔아주자마자 기절한 다온이. 너무 배고파서 먹느라 바빠 음식 사진을 찍지 못했다..


중식당에 도착했다. 다온이를 안아 들고 룸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오늘 다온이는 많이 돌아다녀서 의자에 요를 깔아주자마자 누웠다. 우리는 탕수육과 짜장면, 짬뽕, 잡채밥을 시켰고 사장님은 우리 둘에게 누가 또 오냐고 물어보셨다... 아니요. 저희가 다 먹을 건데요..? 머쓱 민망.. 걸신들린 사람들 마냥 먹어치웠다. 남으면 포장해 가라는 사장님의 말은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면 저희 다 먹었거든요.. 하하..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에 다온이는 자거나 창밖을 구경하며 엎드려 쉬었다. 고마운 짜식.. 이렇게 매너 있고 얌전한 다온이 인데 생김새만으로 오해받는 순간들이 속상했다.


산속에 갇히는 줄 알았는데 집에 갈 수 있네, 우리.. 감사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다 먹고 나오는 길에 약국에서 근육이완제를 사서 나눠 먹었다. 내일 우리 일해야 하잖아. 이 중에서 제일 멀쩡한 건 다온이 뿐인 것 같다.. 다온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도 쌩쌩했다고 한다. 헤어지면서 다음에 완주하지 못한 불암산을 함께 오르자고 약속했다.


순둥이 다온이와의 추억 한 편 추가요~!


다온아. 산을 오르는 너의 엉덩이를 잊지 못해. 든든하고 귀여운 엉덩이. 먼저 세계단 올라가고 뒤쳐지는 누나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기다려 준 너. 등산을 하고 난 후 느낀 점은 다온이와 내가 좀 더 친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온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바라는지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다온이와의 교감 레벨이 업그레이될 수 있었던 시간.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귀여운 다온아. 다음에 누나들이랑 완주해내보자!




https://youtu.be/7ABN-BdF89I ​

매거진의 이전글 다롱이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