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가명)님은 요즘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자주 마음이 흔들린다고 말했다.
“남자친구가 이번 연휴에 저를 만나지 않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돈을 쓰는 걸 보고…
이해는 하는데… 너무 화가 났어요.
그럴 때 말도 안 되게 불안해요. 그게 저 스스로 너무 이해가 안돼요.”
그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건, 누가 들어도 “그렇게까지 느낄 일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남자친구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아,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걸 이해할 수 없어.
그건 너무 과한 거 같아. 적당히 하자.”
언님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이성적으로는, 그 말이 맞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마음은.. 감정은…
전혀 따라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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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되는데… 감정이 따라가지 않아요.”
그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종종, 감정이 이성보다 ‘뒤처져 있다’고 느낀다.
이해는 되는데 여전히 불안하고,
납득은 되는데 자꾸 서운하고,
맞는 말인데 계속 눈물이 난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이런 감정은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감정을 이렇게까지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거 아닐까?’
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감정은 원래 이성적이지 않아요.
이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거든요.”
“억누른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그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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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감정을 분리해보기로 했다.
불안, 질투, 서운함, 외로움, 화남…
겹쳐 있는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고,
그 감정 안에 숨어 있는 문장을 찾아봤다.
려언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말들이 조용히 숨어 있었다.
“나는 너한테만 사랑받고 싶어.”
“엄마보다 내가 더 소중했으면 좋겠어.”
“근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너무 불안해.”
“이런 말은 너무 유치해서, 꺼내면 안 될 것 같아.”
이 문장들을 듣고 나서 나는 말했다.
“이 감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 감정을 다룰 언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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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만났던 5살짜리 아이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졌던 날,
불안해서 울다가도
그 아이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곧 올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돼.”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게 아니었다.
그 아이가,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감정을 다룬다는 건,
결국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말이 생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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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님과 나는
그 감정을 향해 말해보기로 했다.
“그래, 너 그렇게 느낄 수 있어.”
“지금은 기다려보자.”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우린 그 사람을 잃고 싶지 않잖아.”
그렇게 말해주자
언님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조용히 함께 머물렀을 뿐인데도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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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감정을 정리하고 싶다면
아래 세 가지를 해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1. 지금 느끼는 감정을 나열해보기
2. 각각의 감정에 ‘왜 그런지’를 적어보기
3. 그 감정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을 써보기
감정은 억제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설득할 대상이다.
우리가 감정을 다루지 못할 때는
내 감정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다룰 언어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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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언님과 함께
그 언어를 하나씩 다시 배워가는 시간을 가졌다.
감정은 때때로
이해되지 않아도
충분히 진짜다.
그리고 그 진짜 마음을
가장 먼저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