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잘 ’다룬다‘는 건, 자신을 잘 ’설득‘하는 능력이다.
“글쎄요… 그냥 기분이 안좋아요.”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기분이 나빴어요.
근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불쾌했어요. 그냥 좀 싫었어요.”
감정을 느끼긴 했는데,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는 상태.
나는 아스퍼거 스펙트럼에 있는 친구들을 자주 상담하지만,
이러한 감정적 인지와 표현의 어려움은 단지 그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감정을 구체적으로 나누지 못한 채
그저 ‘불쾌’라는 말로만 하루를 덮어버리곤 한다.
이건 진단이 있거나 사회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감정지능이 낮아서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살다 보면 수없이 마주하게 되는 아주 평범한 경험이다.
1. 감정은 느꼈는데, 이름이 없다
채훈(가명)님도 그런 경험을 나눠주었다.
친구와 함께 걷던 중,
그 친구가 이어폰을 한쪽만 낀 채 걷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고 했다.
“마음이 불쾌했어요.
근데… 화가 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그 감정을 조금 더 함께 들여다보았다.
“생각해보니, 그친구가 이어폰을 끼고 있는게,
나를 무시하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게 바로 ‘화’예요.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반응한 감정이니까요.”
이 순간,
그의 감정 위에
처음으로 이름없는 불쾌한 감정에
‘화’라는 이름이 조용히 놓였다.
2. 감정분류기법- 3분류 질문법
나는 종종 내담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기분이 나빴다면,
그건 슬픈 걸까, 화난 걸까, 아니면 불안한 걸까?”
이 단순한 세 가지 선택지는
복잡하게 엉켜 있는 감정을
조금씩 구분해낼 수 있게 도와준다.
그 과정을 통해
내 마음의 결과 방향을 잡기 시작하면
자기이해도, 자기표현도 한결 쉬워진다.
3. 불안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은, 사실 ‘화’ 였다.
승영(가명)님도 그랬다.
시끄러운 장소에 가면 늘 “불안하다”고 말했고 공황증상이 나타났지만,
그 상황을 함께 찬찬히 나눠보다 보니
그 안엔 다른 생각들이 숨어 있었다.
“왜 저렇게 굴지?”
“왜 남을 배려 안 하지?”
“시끄러운 상황을 자꾸 만드는 게 싫었어요.”
우리는 그제서야 알게 됐다.
이건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시끄러움을 무례하게 여기는 내의 개념에서 비롯된
‘화’였다는 걸.
감정을 구분해내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그 감정에게
‘이름’과 ‘맥락’을 줄 수 있게 된다.
4. 감정을 잘 ’다룬다‘는 건, 자신을 잘 ’설득‘하는 일
그리고 그다음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연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담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 그 감정은 맞아요.
그럼 이제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 게 좋을까요?”
예를 들어 어떤 내담자는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고,
작은 자극에도 날카롭게 반응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했다.
“지금 화났지?
근데 곧 점심시간이니까
그동안 유튜브 보면서 기다려보자.”
감정을 다룬다는 건
억누르는 게 아니다.
참는 것도 아니다.
그건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이해하고 잘 달래서,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자기 자신을 설득해내는 과정이었다.
[혼자서 해볼 수 있는 감정 설득 연습 ( 아스퍼거증후군/ 사회성이 낮은 아동,청소년,성인 대상 ) ]
1. 오늘 가장 불쾌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 감정은 슬픔이었을까요, 화남이었을까요, 아니면 불안이었을까요?
2. 그 감정의 이유를 붙여보세요.
“무시당한 느낌이었어.”
“왜 배려 안 하지?”
“나만 투명인간 같았어.”
3. 그리고 감정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그래, 너 그렇게 느낄 수 있어.”
“근데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조금만 기다려보자.”
“지금은 쉬자. 이따 다시 얘기하자.”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정확히 뭔지는 설명할 수 없을 때,
그때가 바로
감정을 배워야 할 타이밍이다.
감정은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 삶을 훨씬 풍부하고,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언어가 된다.
서툴고 느리더라도
우리는 자기 감정의 선생님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감정은 절대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천천히, 함께 배워가자.
지금 여기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