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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Sep 02. 2023

어쩌면 좋아.영종도 아줌마

매장을 운영하며 손님들을 상대해 오던 그 가운데는 생활 속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도 다수 있다. 나의 명칭은 사장님이나 아기엄마로 불렸고 당시 내가 영종도 아줌마라고 부르던 분이 계셨다.  이분은 내게 애기 엄마라 불렀고 매장 처음 개업할 때부터 10년을 넘게 단골손님으로 오시며 인연이 되었다. 


내가 보낸 원고의 책이 나올 때마다 꼭 한 권씩 챙겨 드렸고 나를 보며 글을 쓰고 싶다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아줌마는 책도 무척 좋아하셨다.  그 당시 아줌마는 결혼하는 아들에게 살던 집을 물려주고 영종도에 새로 집을 지어 지금은 그곳에서 남편분과 함께 살고 계신다. 아줌마의 명칭은 영종도로 가시고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이름이 바뀌면서 부터였고 남편과 아이 데리고 꼭 놀러 와 자고 가라며 내게 진심을 다하셨던 분이셨다. 


엊그제 영종도 아줌마 에게 전화가 걸려와 시인이 되어 시를 쓰며 요즘 시낭송도 하신다는 소식을 주셨다. 내 책을 보다가 생각이 났다고 한다. 작년엔 첫 시집(이순재 1 시집. 어쩌면 좋아) 도 내셨다고 하니 우리는 그때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기쁨과 웃음이 한참 수화기 속을 통해 오고 갔다. 그럼에도 못다 한 말이 남아 있어 다음 약속을 잡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오래전 우리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책을 보며 관심이 시작되셨고 매장에 딸까지 데리고 와서 옷을 사입하기도 하셨다. 아줌마가 물건을 사실 때는 전혀 깎는 일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가끔 내가 알아서 물건값을 빼드리곤 했는데 이렇게나 많이 깎아도 괜찮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 날은 오히려 아줌마가 다음에 오셔서 일부러 물건을 사고 지난날 깎아진 자신의 그 옷값을 대신하기도 하셨다. 

다음 우리 만나는 날엔 본인께서 출간한 시집도 준다고 하신다. 책을 사서 보는 맛이 있으니 아니라고 했다. 그때 자신도 나에게 책을 그렇게나 많이 받았는데 절대 사지 말라고 또 당부하신다. 그러나 내게 그럴리는 없고 통화하던 엊그제 바로 주문한 시집이 오늘 도착했다. 영종도 아줌마처럼 깨끗하고 곱게 잘 다듬어진 문장들을 본다. 


어쩜 글도 이렇게 당신의 마음처럼 곱고 예쁘게 잘 쓰셨을까. 사람들의 관계 속에 인연으로 맺어지는 일도 그리 쉬운 일도 아닌데 진심과 진심이 만나 또 한 권의 시집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젠 시인이 되셨으니 시인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내겐 영종도 아줌마라는 호칭이 더 친근하고 좋은데 어쩌면 좋아.  



출발지도 도착지

도착지도 출발지

우리 생도 동그라미


뱅뱅 돌아도 동그라미

둥근 지구도 동그라미

뒤돌아보니 또 출발지


땅속에 묻혀 숨어서도

그 자리 동그라미

영원히 돌고 도는 동그라미

죽음도 삶도 없는 동그라미 「이순재. 동그라미 전문. 어쩌면 좋아 1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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