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려원 Aug 28. 2023

가을 한 줌 엮어서

아이가 등교한 이후에 아이의 방에 들어가 그날 가져가기로 한 물건들을 빠트리지 않았는지 제일 먼저 확인하게 된다. 가끔은 가져가야 할 것들을 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으며 쫓기는 아이의 잠은 늘 바쁜 등교 시간을 불러온다. 


돈을 써야 한다는 아이의 말이 있었음에도 지갑이 오늘 고스란히 책상 위에 놓여 있음을 알았다. 우산을 들고 가는 아이를 급히 현관문을 열고 불렀다. 지갑을 건네주는 엄마의 손끝에 "저는 역시 어머니가 없으면 안 돼요. 늘 저를 챙겨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가 학교로 향했다.


엄마, 아빠라는 말과 달리 아이가 부르게 된 존칭은 초등학교 입학 당시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사용하게 되었다. 어색했던 처음과는 달리 익숙해진 시간은 어느새 성인이 다 되어 가는 아이를 바라보게 한다. 더러는 부모를 따라 고된 날을 보내야 하는 시간도 아이는 막힘없는 성장을 해주었다. 폭풍 가운데서도 부모라는 기둥은 아이의 넓은 배 위에서 흔들리는 항해를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덕분인지 아이는 사춘기도 모른 채 아무 탈 없이 잘 지나와 주었다.


때론 지나지 않을 것 같은 날들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순간이었구나" 라며 뒤늦게야 깨닫곤 한다. 지금은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아버님의 생명 날짜를 받아놓고 하루하루 이별을 살던 그때가 늘 체한 듯이 그랬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어느 때라도 꺼내 볼 수 있는 그 자리에 간절한 그리움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비교적 선선하게 시작되는 하루다. 어제와 다른 바람이 날마다 찾아 오는 요즘이다. 놓고 간 아이의 말이 스치는 비의 아침이다. 이제는 눅눅한 비가 아닌 건조한 날에 내리는 축축한 비가 될 것 같다. 가을 한 줌 엮어서 그대에게도 보내 드리오니 아이가 놓고 간 말이 참 따스하게 느껴지는 하루의 시작입니다.



대문사진:윤향근 작가님

매거진의 이전글 김권사님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