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할빠와 손녀의 두 번째 여행(24, 3,22~3, 26 베트남)
일본을 다녀온 후 사랑이가 의외로 강하다는 걸 알았다. 제 부모였으면 응석을 부렸을지 모르지만 할빠하고 여서인지 예의를 차리고 떼를 부리지도 않았고 다른 여행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배려심도 보여 주었다. 일본의 찌는 더위 속에도 불평 없이 따라다니던 인내심까지 확인했다. 일곱 살에 그 정도 눈치를 가졌는데 갈수록 말귀를 더 알아들을 테니 사랑이를 데리고 어디든 다닐 수 있을 거 같았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두 번째 여행을 계획했다. 아직은 사랑이에게 추억을 만들어 줄 힘이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지는 알 수 없으니 미루고 싶지 않았다. 죽을 날이 살아온 날 보다 더 가깝다는 잔인한 현실만큼은 정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할매 아닌가.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일단 갈 만한 곳부터 찾았다.
오래 비행기 타지 않는 곳. 일본 여행처럼 날씨 때문에 지치지 않는 곳. 사랑이가 흥미를 가질만한 곳. 그런 조건들을 충족할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나는 열심히 인터넷 여행사이트를 뒤지고 다른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읽었다. 여러 군데 찜했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하다가 최종적으로 정한 곳이 베트남 푸꾸옥이었다. 사랑이가 놀만한 시설들이 많이 갖추어진 거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푸꾸옥으로 마음을 정한 후 여러 여행사의 상품을 비교하고 집중적으로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읽었다.
사진까지 보태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올린 분들이 많았는데 읽으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말하면 이 브런치 스토리에 오른 여행 후기가 제일 알찼고 탄탄한 문장 덕에 신뢰도 갔다. 그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베트남 여행은 십오 년 전쯤 친구 한 명과 배낭여행을 해본 적 있었다. 그 무렵 한국문화와 기업이 활발하게 들어가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고 베트남 여행이 새로운 여행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아직 초장기여서 여행사 상품은 대개는 하롱베이 쪽에 치중되어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나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베트남 현지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배낭여행을 계획했는데 배낭여행족 치고는 흔하지 않은 늙은 아줌마였지만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청춘이었다. 나는 기획 담당이었고 영어가 짧은 나 대신 영문과 출신인 친구가 현지 진행을 맡았다.
지도를 보면 베트남은 바다를 끼고 길게 생긴 모양이다. 처음에는 일주를 계획했는데 그러면 주마간산이 될 거 같았다. 하나라도 제대로 보자 싶어서 나는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남부, 중부, 북부. 그때 우리가 간 곳은 남부인 호찌민과 무이네, 나짱등이었다.
현지에서 당황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공부를 했는지 모른다. 간단한 베트남 언어는 물론, 무지하게 바가지가 심하다는 후기들을 곳곳에서 보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현지 기본요금까지 미리 파악했다. 남부를 다녀 오면 가려고 중부, 북부 지방에 대해서도 연구조사를 다 해 두었는데 아직도 실천은 못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그런데 그 사이 베트남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달라져 내 연구 조사가 쓸모 없어지지 않았을까.
8박 10일의 여행 동안 나는 진짜 최소의 물건만 넣은 작은 배낭 하나만 등에 짊어졌지만 친구는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배낭여행만이 가질 수 있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그중 기억나는 건 어느 식당에 갔더니 예쁘장하게 생긴 종업원이 우리를 매우 반겨주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며 한국인을 처음 보았다며 우리 옆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어를 혼자 공부하고 있었다며 공책을 들고 와 보여주며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묻기도 했다. 겨울 연가가 한류바람을 일으킨 몇년 후여서 배용준이 보여준 한국남자들에 대한 로망도 컸다. 그녀가 수줍게 묻던 게 기억난다.
"한국남자들은 다 그렇게 다정하나요? 그렇게 눈물도 잘 흘리나요?"
그때 만났던 베트남 현지인들 때문에 나는 베트남에 대한 기억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푸꾸옥은 최근에 관광 그 자체로 개발된 섬이므로 내가 아는 베트남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푸꾸옥을 가기로 결정한 후 여러 여행 상품을 찾아보았는데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나는 온전히 사랑이만을 위한 관광을 하고 싶지만 그런 맞춤 상품이 있을 리 없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결국 나는 자유여행을 하기로 했다. 할매와 할배, 게다가 어린 손녀의 여행길이라 조금은 겁이 나지만 그나마 할배가 콩글리시 조금 면한 생존영어는 하니까, 그리고 나는 왕년에 배낭여행도 해본 여자이니까.
그동안 쌓이기는 했지만 사용할 기회를 찾지 못했던 마일리지로 대한항공 표를 끊었다. 숙소 사이트를 찾아가 원하는 방을 찾아 예약도 했다. 숙소에서는 공항 픽업과 랜딩까지 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게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 공항에서 헤매지 않으면 그다음부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렇게 할빠와 손녀의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