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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Jul 07. 2024

바위의 이름들

3, 첫 해외여행(대만; 2018년 9월23~ 26일)

다음날 간 곳은 예류지질공원이었다. 

바람과 태양과 바다가 함께 만든 해안 조각 미술관이라더니 말 그대로였다. 파도에 의한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독특한 모습이 된 암석들이 해안에 펼쳐져 있었는데 마치 지구가 아닌 또 다른 위성에 온 듯 신비로웠다.

기기묘묘한 모양의 바위들은 저마다의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이라는 건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많은 바위 중 하나인 듯 무심코 지나가다가도 그것에 붙여진 이름을 알게 되면 되돌아보거나 한층 더 가깝게 느껴졌다.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내 손녀가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던 것처럼.

제일 많은 것이 버섯모양의 바위였고 촛대바위, 아이스크림 바위, 용머리바위, 코끼리 바위, 선녀 신발, 지구 바위, 땅콩 바위, 구슬 바위..... 등등등 수없이 많은 비위들이 저 나름의 개성들을 뽐냈다.

자연이 빚어낸 수없이 많은 위대한 조각품들을 보며 경탄을 금치 못하는 동안 유모차에 앉은 사랑이는 울퉁 불퉁한 바위 길을 덜컹대며 끌려다녔다. 힘들어서 조금 칭얼대다가도 잠깐 달래주면 금세 그쳤다. 

"여기 돌들이 정말 예쁘지? 근데 이거 사람이 만든 게 아니야. 얼마나 신기해."

알아들을 리도 없겠지만 돌들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사랑이는 듣는 척해주었다.

 하지만 사랑이에게 이 길은 고행길일 뿐일 것이다.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 거친 돌길을 왜 다녀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땡볕을 유모차 지붕으로 간신히 가리며 어른들에게 끌려다니느라 지치고 힘들어했다. 간혹 칭얼대긴 해도 사랑이는 잘 참아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자연이 빚은 천연 조각품들을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었다. 

 마침내 이 공원의 하이라이트인 여왕바위 앞에 섰다. 여왕바위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바위였다. 오랜 세월 동안 햇빛과 비바람으로 만들어진 여왕의 가늘고 긴 목은 지금도 점점 더 가늘어지고 있었다. 



.

대만 관광청은 매년 2차례 씩 여왕머리 바위의  ‘목둘레’를 측정하는데 데이터에 따르면 바위의 목둘레는 매년 1~2㎝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바람까지 거들어주면 그 가는 목이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부러져, 여왕바위는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가는 목을 보니 생각보다 그날이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곳은 역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가장 길었다.   여왕의 모습을 잡을 수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어서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땡볕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의 움직임도 멈추고 서 있으니 사랑이가 힘들어 몸을 뒤틀었다. 울음이라도 터트릴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달래는 동안 마침내 우리들의 차례가 되었다.  위치를 잡고 가족들 사진을 찍었다. 그런 후 보니 햇볕과 거친 길에 시달리던 사랑이가 어느새 조용히 잠이 들어 있었다. 그 얼굴이 노을을 받아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사랑이가 스스로 대만을 찾아올 만큼 자라난 먼 훗날에도 이 여왕바위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가늘어진 목이 되어 있겠지.

그런데 그런 긴 세월을 기다리기에는 여왕바위의 목이 너무 가냘퍼보인다.

어쩌면 사랑이는 이 여왕바위를 이 사진을 통해서만이 그것이 존재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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