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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Dec 29. 2020

누룽지와 눌은밥

          

  나는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지 않는다. 압력밥솥이나 두꺼운 냄비를 쓰기도 하지만 지금은 주로 뚝배기로 밥을 짓는다. 물론 전기압력밥솥도 가지고 있다.  나 아닌 다른 가족들이 밥을 할 경우를 위한 비상용이다. 냄비나 뚝배기 같은 것에 밥을 짓는다면 번거롭지 않으냐며 친구들도 신기해하는데 사실 익숙해지면 전기밥솥만큼 쉽다. 

불려놓은 잡곡쌀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처음에는 센 불, 끓으면 중간 불로 낮추고 밥이 거진 다 된 후에는 약 불로 뭉근하게 한참 더 두면 이윽고 밥 냄새가 고소하게 올라오게 된다. 밥 짓는 시간도 전기밥솥보다 짧은데 나는 눋는 냄새가 나고도 약 불에 한참 더 둔다.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누룽지는 우리나라 경제가 그다지 넉넉하지 않던 시절, 간식거리가 부족해 입이 궁금하던 아이들에게 좋은 간식거리였다. 전기밥솥이라는 신문물도 없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솥으로 밥을 지었고 그러면 으레 누룽지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누룽지들을 긁어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주거나  물을 부어 눌은밥도 만들었는데 그래서 나오는 숭늉은 근사한 식후 디저트였다.       

 



 전기밥솥을 처음 개발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우리나라는 1965년에 금성사(현 LG전자)의 전기밥솥이 최초이다. 초창기 한국 전기밥솥은 밥맛이 좋지 않아 크게 보급되지 않았고 대신 보온밥통이 일반화되었다. 한국 전기밥솥 대신 주부들은 일제 전기밥솥을 가지고 싶어 했는데 아무나 가질 수가 없어서 더 간절했던 거 같다. 

 전쟁 후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국산품의 품질은 아직 많이 뒤떨어져 있었다. 막 움트는 여린 새싹 같은 우리들의 기술은 세계 시장이라는 거친 들판에 내놓으면 당장 시들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정책적으로 보호무역을 했지만 사실 시중에는 외제 물건들이 많이 풀려있었다. 정상 루터가 아니라 밀수품이거나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나온 것들이 대다수였지만.

정부는 국산품을 애용해 달라며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수시로 밀수품 단속도 했다. 하지만 매일 밥을 해야 하는 주부들은 편리한 일제 전기밥솥을 갖고 싶어 했고 그 욕망은 요즘 명품 백에 대한 동경에 결코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도깨비 시장이라고 공공연하게 밀수품들을 취급하는 시장도 있었다. 미군부대서 뒤로 빠져나오는 군수품을 판다고 양키시장이라고도 불렸는데 밀수 단속반원과의 숨바꼭질도 잦았다.  단속반원이 들이닥치면 거짓말처럼 가게가 사라지고 열린 가게도 진열대에는 어느새 외제 물건들 대신 한국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단속반이 떠나면 가게도 열리고 외제 물건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다시 시장이 형성되는 요술 때문에 도깨비 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기서도 일제 전기밥솥은 구하기 쉽지 않았다. 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이라 일반인들은 외국을 쉽게 갈 수도 없었다. 일본에 출장 가는 지인이 있으면 부탁해서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으니 그만큼 품질 좋은 제품에 대한 갈증도 심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순수 목적의 해외여행이 허용된 것은 1983년 1월 1일부터였다. 나라의 문을 처음 여는 거니만큼 조건도 까다로웠다. 50세 이상이어야 하고 당시로는 거금인 200만 원을 1년간 예치해야 했으니 일반인들은 엄두내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자격조건에 통과된 사람들도 연 1회만 유효한 관광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 외국이란 영화나 책에서만 보던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신세계였다. 그런 곳에 직접 가볼 수 있게 됐다니! 요즘 사람들에게 그때 들떴던 감동을 설명하려면 책에서나 보던 달나라 방문이 허용됐다고 하는 거만큼 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북한 주민이 한국 자유 관광을 허락받은 거 같다고 하는 게 좀 더 가까울까? 어쨌든 그만큼 신기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미주는 멀고 공산국가 중국과는 외교 단절상태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일제 제품에 대한 갈증이 워낙 컸던 까닭도 있었다. 정상적 수입 루터를 통한 제품들이 아니다 보니 일제나 미제는 가격도 매우 비쌌다. 도깨비 시장에서 뻥튀기하지 않은 제 값으로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 여행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들 생각했던 거 같았다.  

    

 예상대로 일본 관광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많은 일제 물품들을 사 왔는데 손에는 으레 일제 전기밥솥이 들려있었다. 부피가 크다 보니 유독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고 한국에 오면 바로 돈이 되어주니 거의 한 개 이상이었다. 일본 언론은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는 한국 관광객들을 관심 있게 보다가 관광보다 쇼핑에 더 열성적이며 특히 일제 전기밥솥에 열광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았던 거 같다. 그리고 1983년, 2월에  마침내 큰 사회문제가 터지고 말았으니 이른바 ‘일제 코끼리밥솥 사건’이었다. 

주부 17명이 일본 단체 여행을 갔다가 일제 물건을 잔뜩 사들고 돌아왔는데 이 호화쇼핑을 먼저 언론화한 것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 아사히신문이었다.     


  '한국의 J여성단체 관광객이 시모노세키에 있는 동안 계속 쇼핑만 해 귀국길에 통관할 때는 짐을 손으로 다룰 수가 없어 '발로 밀어 운반'하는 부인이 있을 정도이다.’     


아사히신문이 던진 불씨에 우리나라 언론이나 매스컴이 불타올랐다. 텔레비전에서는 그들 모두 양손에 한 개씩, 심지어 말 그대로 발로 밀어가며 세 개까지 사온 ‘코끼리표 전기밥솥’을 보여주었다. 사실 더 비싼 물건들도 많았지만 밥통은 부피가 커다 보니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압박감을 주었고 이것은 굶어도 잘 먹은 척 이빨을 쑤시던 우리 한국인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를 냈다.      


당시 대통령은 전두환이었는데 일본발 이 뉴스에 노발대발하며 ‘밥통도 제대로 못 만들어 이런 망신을 당하게 하는 밥통들’이라며 애꿎은 비서관들을 쥐 잡듯 잡았다. 

 그리고 즉시 국가 정책적으로 전기밥솥 개발을 지원, 독려했고 전자 제품 기술을 축적해나가고 있던 우리의 기업도 이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전기밥솥 개발에 나섰다. 한다면 기어이 해내는 근성의 한국인들이 일제 전기밥솥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두꺼운 쇠뚜껑의 압력으로 맛있는 밥을 짓던 우리의 가마솥 문화에 착안하여 전기압력밥솥도 탄생시켰다. 이제 한국의 전기압력밥솥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제품이 되어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광 오면 돌아갈 때 즐겨 사가는 품목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한 지붕 아래 삼대가 같이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낸 어린 시절은 세대별로 전혀 달랐다. 딱 잘라 구분하기 애매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굳이 나누자면 나와 남편은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 시대, 아들과 며느리는 중진국이나 신흥공업국 시대를, 손녀는 선진국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최빈국 시절을 살았던 내 부모님도 여전히 살아계신다.

4대가 모여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뒤죽박죽 돌아다니고 있는 거 같아 흥미롭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우리들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아들과 며느리는 딴나라 이야기 듣는것 처럼 신기해하거나 공감을 하지 못하는 눈빛이 되기도 한다.

세월이 더 지나 내 부모님들이 살았던 쌀이 떨어지고 보리는 나지 않아 굶주렸던 보릿고개 시대를 손녀가 들을만한 나이가 되면  ‘쌀이 없으면 빵이나 피자를 먹지, 왜 꼭 밥을 먹으려 했을까?’라고 갸우뚱대지는 않을까?



 최빈국 시절 나무를 때서 가마솥 밥을 먹던 내 부모님이나, 후진국 시절 연탄불로 스테인리스 솥밥을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편과 나는 누룽지나 눌은밥을 좋아하지만, 중진국 시절 누룽지가 나올 리 없는 전기밥솥의 밥을 먹고 자라난 아들 내외는 누룽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선진국 시대를 살고 있는 손녀가 누룽지와 눌은밥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뚝배기에 열심히 밥을 눌리고 있다. 

조만간 소형 무쇠 가마솥을 살 예정이다. 그래서 손녀에게 가마솥에서 나오는 누룽지가 얼마나 맛있는지 맛보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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