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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 첫날(2-3)

13, 할빠와 손녀의 두 번째 여행(24, 3,22~3, 26 베트남)

by 숨터

16:50 출발하는 대한 항공을 타고 현지시간 20:50 도착. 예정 시간에서 별로 늦지 않게 푸꾸옥에 도착했다. 5시간 반이 걸렸는데 비행기가 익숙지 않은 사랑이에게는 다소 힘들었을 것이다. 예약한 빈펄리조트행 버스를 안내하는 베트남인이 푸꾸옥 공항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만이 아니었다. 빈펄리조트 픽업 버스를 신청한 사람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우리는 빈퍼리조트 스파였는데 빈펄리조트는 다양한 이름으로 여러 곳에 있디는건 나중에 알았다.

기다리라는 말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을 뿐 나만큼 영어가 짧은 베트남 직원과는 소통이 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어 막연했다. 앉을 곳 하나 없는 길에 서서 말이다. 각기 다른 비행기로 오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 눈치로 알았는데 운이 나쁘게도 우리는 가장 먼저 도착한 비행기 탑승자였다.

너무 더웠다. 화장실에 가서 한국에서 입고 온 두꺼운 옷을 여름옷으로 바꿔 입으니 좀 살 거 같았다. 사랑이에겐 다리 아프니 여행 캐리어 위에 앉으라고 했는데 쑥스러운지 처음엔 거부하더니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니 결국 앉았다.

베트남과의 시차는 2시간이니 한국시간으로는 그럭저럭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5시간반을 묶여 있다가 길에서 기다리는 건 어른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잠잘 시간도 한참 지났고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아 배도 고플 텐데 사랑이는 인내심을 보여주며 잘 참아내고 있었다. 아동식을 시켜주었어야 했는데 시간을 놓쳐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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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옆의 바다



긴 시간을 견뎌낸 후 마침내 픽업버스를 탈 수 있었다. 대형버스였는데 거의 다 찼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중간중간 여행자들이 내렸다. 우리는 제일 마지막에 내렸다. 우리 가족뿐이었다.

로비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니 예약된 숙소 키를 주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다른 동이라며 내부 이동수단인 툭툭이도 불러 주었다. 빈펄리조트는 워낙 넓어 내부 이동도 툭툭이를 탄다는 정보는 미리 파악하고 온 터였다.

툭툭이 기사가 내려주는 동으로 들어가니 넓은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 현지 시간으로 12시가 넘었으니 그들도 쉬어야겠지, 이해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럼에도 억지로 참고 있는 사랑이가 안쓰러웠고 빨리 방에 들어가 재우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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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이 우리가 묵은 숙소


그런데 문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찾아간 우리들의 방 앞에서 벌어졌다. 분명히 방 호수는 맞는데 열쇠로 열리지가 않는 것이다. 몇 번이나 꽂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지만 아무도 없어서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사랑이는 두려움에 울먹댔다. 문을 열고자 다시 시도하는데 방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이미 그 방에는 다른 투숙객이 있었다!

자고 있다가 갑자기 문을 열려는 불청객 때문에 깨어난 그들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들도 한국인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한밤중에 문을 열고자 했던 우리를 경계하여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우리는 문밖에서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문이 열리더니 젊은 여자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남편이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본관 로비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해주실래요. 이쪽 로비에는 아무도 없어요."

여자의 말을 전해들은 남자가 내선 전화기를 들었는지 방 안에서 유창한 영어로 전화를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남자가 나왔다.

"영어를 잘 알아듣질 못하네요. 간신히 내용은 전했어요. 사람을 보내줄 테니 기다리래요."

우리는 로비로 내려가 마냥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어디로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지 못하고 미아처럼 서있자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랑이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달래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사람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러다 바에서 한 남자를 발견했다. 남편의 영어는 소용이 없었다. 영어를 전혀 알아듣질 못하는 그에게는 만국 공통어 손짓 발짓 몸짓이 나았다. 그는 안간힘을 쓰는 우리들을 보며 멍하니 있더니 어느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말없이 가버렸기에 그가 우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거라고 생각한 우리는 당황했다.



하지만 잠시 후 로비의 카운터로 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 방은 직원들이 머무는 곳이었고 바의 남자는 우리말을 이해했고 도움을 준 것이었다. 카운터의 여자는 매우 친절했지만 남편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딴 소리만 했다. 남편이 삼성 갤럭시 폰을 내밀어 말을 하자 그녀도 자신의 삼성 갤럭시 폰을 꺼냈다. 우리는 삼성 갤럭시 폰의 통역 앱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내 이해한 그녀는 명단을 꺼냈다. 나도 봤지만 베트남 어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명단과 컴퓨터를 보며 수작업과 동시에 인터넷 작업을 병행했다. 그런데 얼마나 느린지 빨리빨리의 한국인의 눈에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말만 통하면 내가 일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 오늘 투숙하는 거로 예약된 방들 중 아직 투숙객이 들어가 있지 않는 방을 살펴보고 그 방들 중 우리 예약 번호와 맞춰보면 되잖아! 컴퓨터 뒀다 어디에 쓸래!'

그녀는 그 대조작업을 매우 어려워했다. 헷갈려하며 몇 번이나 다시 반복하였다. 지치고 답답해서 죽기 직전에 마침내 그녀는 우리 방을 찾아냈다. 키를 잘못 준 방의 옆이었다! 자다가 불려나왔을 텐데 그 힘든(?) 작업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성의를 다해준 그녀가 고마웠다.

참고로 말하면 본동에서 보내주겠다던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면 우린 로비에서 밤을 새웠을 것이다.

한국 시간 3시, 현지시간 1시 넘어서 간신히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의 짜증과 불쾌함이 한순간에 다 사라져 버렸다. 큼직한 더블베드 두 개에 엑스트라 배드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그러고도 넉넉한 여유가 있을 만큼 방은 컸고 창밖으로는 넓디넓은 수영장이 보였다. 가로등이 밝혀주는 수영장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푸꾸옥의 첫날, 아니 둘째 날이 배고픔과, 기다림과 지침과 졸림과 얼마간의 짜증과 함께 시작되었다.



20240324_094237.jpg 빈원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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