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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Mar 03. 2022

코로나에 걸렸다!(3)

 두려워하던 일이 터진 건가!

며느리가 머리가 아프고 목구멍이 따끔따끔하다고 했다. 전형적인 코로나 증상이 아닌가. 아들과 며느리는 즉시 자가진단키트를 꺼냈다. 결과를 확인한 며느리의 얼굴이 굳었다. 분명하진 않지만 흐릿한 줄 하나가 더 보이는 듯했다. 아들의 진단키트는 인지 아닌지 애매했다. 

며느리는 증상까지 고려해서 보면 아무래도 코로나가 의심스러웠다. 

가슴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그렇게 조심했는데 결국 집안에 코로나를 퍼트리고 말았나 보구나! 

다행스럽게도 남편과 손녀는 분명한 한 줄이었다. 하지만 손녀가 위험했다. 나를 시작으로 제 부모까지 확진되었다면 손녀를 빨리 분리시켜야 했다.  남편은 음성이지만 아이 돌보는 데 워낙 서툴어 손녀를 맡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할아버지와  같이 자라는 말에 손녀가 질색을 하며 거부했다. 

"싫어! 엄마, 아빠랑 잘거야!"

확진자가 된 제 부모와 나와 같이 있는 집안, 감염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며느리가 친정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안사돈도 자신도 감염되었을지 몰라서 아이를 맡기 조심스럽다고 했다.  어제 예식장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했다. 임신 중인 딸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난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돌아다닐지도 모를 우리 집에 그대로 두기도 겁이 나고. 

만일 나 때문에 손녀까지 감염되면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 거 같았다. 근래 신문지상에서 심심찮게 봤던 코로나에 걸린 영유아 사망사고들이 눈앞에 어른댔다. 입 안에서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



"할머니, 아직도 다리가 아파요?"

아이에게는 코로나라고 하지 않았다. 다리가 아파서 같이 못 놀고 방 안에만 있어야 한다고 말해 두었더니 아이는 노상 내 다리를 걱정했다. 늘 같이 놀아주던 내가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으니 아이는 매우 심심해하고 슬그머니 방문 열고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할머니 방에 들어 오면 안 돼."

"들어 가는 거 아니에요."

 내가 몸을 뒤로 물러서자 아이가 항변했다.

"보여주려고요. 할머니, 이렇게 조심조심 다니면 되잖아요."

방 밖 멀찌감치 서서 아이가 콩콩 깨끔발을 짚으며, 혹은 절룩대는 흉내를 보여주었다.

 어른들의 애타는 심정은 모르고 여전히 해맑고 천진하게 애교를 부리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저 애를 어떡하나. 아이를 보낼 안전한 곳이 이렇게도 없다니.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니 애만 탔다. 아이는 다른 때처럼 제 부모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제 부모와 놀고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점은 집 안에서도 모두 다 마스크를 꼈다는 점이고 아들 내외는 잠을 자면서도 마스크를 꼈다는 거뿐이었다. 제 부모를 대신해줄 수 있는 내 상태가 이러니 아이를 제 부모와 떼 놓을 방법이 없었다. 

아직은 음성이지만 부모와 잠든 밤사이 감염이 되지나 않을까. 초조하고 불안했다.

  


 내 방에서 혼자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우리 집에서 1호 환자가 될 줄도 몰랐지만 우리 집에 코로나를 퍼트릴 원흉이 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외출도 하지 않고 특별한 일 아니면 만남도 조심하며 지냈던 내가 말이다. 

 얼마나 조심했는데. 엉덩이 굳은 살 생길 만큼 방 안에만 처박혀 있었는데.  방 밖을 나갈 땐 반드시 마스크를 끼고 비닐장갑을 끼고 만졌는데. 내가 밟은 길마다 소독 스프레이를 뿌렸는데. 무엇보다 증상도 없었는데. 

그래도 바이러스는 지 맘대로 설치고 돌아다녔단 말인가?

며느리는 언제 감염되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며느리가 너무 착해서였던 거 같다. 내 밥은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나한테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며느리는 식판에 먹음직스럽고 깔끔한 음식을 차려 내 방에 들여 밀어주고, 내 그릇은 손대지 말라고 해도 고무장갑을 끼고 있으니 상관없다며 기어이 내 그릇도 씻었다. 내가 했듯이 뜨거운 물에 소독을 하기는 했지만.

내게 사식을 넣어 주러 들어올 때 내 방안에 돌고 있던 나의 바이러스와 며느리가 접촉된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부부인 아들이야 당연히 며느리에게 감염되었을 거고. 틈만 나면 슬그머니 내 옆으로 오던 아이가 아직 음성인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늦어도 한참 늦은 후회로 밤새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장례식장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더라도 마스크를 벗지 말고 자리에 앉지도 말고 얼른 니왔어야 했는데, 라는 근원적인 거부터.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A가 확진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밀접접촉자인 나는 즉시 집을 나가 모텔에라도 갔어야 했었는데. 그땐 이미 늦긴 했을 거 같지만 보건소에서 확진 연락을 받았을 때 그때라도 생활치료센터로 나가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라는.

아침에 아들 식구들은 보건소로 향했다. 예전에는 무료였던 pcr 비용이 이제는 유료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확진자 가족과 60세 이상은 여전히 무료였다. 

돌아온 손녀가 해맑게 웃으며 자랑했다.

"할머니, 이번에는 코, 덜 아프게 해 줬어요."

저 천진하고 예쁜 웃음을 영원히 지켜주고 싶은데.

내가 망친 게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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