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장식한 무대 정면에 순백의 테이블보가 덮인 테이블이 있었다. 신랑 신부를 위한 자리였다. 댄스 시간이 끝난 후 딸과 사위는 테이블의 의자에 앉았다.
노래를 준비했다는 mc의 소개와 함께 사돈 내외가 무대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서서 노래할 준비를 하는 사람은 바깥사돈뿐이고 안사돈은 무대 옆쪽에 있는 의자로 가서 걸터앉았다. 반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들은 적 있던 익숙한 가락이었다. 뭐더라? 생각하는데 바깥사돈이 굵직한 바리톤 음성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생각났다. 한 때 좋아한 적 있었던 송창식의 '우리는'이었다. 이제는 가사도 가물대지만 한때는 명곡으로 불렸던 노래였다. 안사돈은 바깥사돈의 독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가 노래의 한 구절이 끝날 무렵 문득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깥사돈을 향해 걸어오면서 화음을 넣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하객들 중 또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무대로 향해 나오며 사돈 내외의 이중창에 목소리를 보탰다.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그리고 뒤이어 또 다른 사람이 노래와 함께 무대로 나오고 또 다른 사람들... 그렇게 하나 둘 남자와 여자들이 무대를 향해 걸어 나왔다.
"기나긴 헛 세월을 기다리려
우리는 만났다
천둥 치는 운명처럼
우리는 만났다
오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만났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연인."
사돈 내외 포함해서 남자 여섯, 여자 여섯 모두 열두 명이었다. 사돈 부부만 하는 노래인 줄 무심히 보다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등장 퍼포먼스와 합창이 놀랍고 신선했다. 전문 가수들의 노래만큼은 될 수 없겠지만 남성 파트 여성 파트까지 나눠져 이루어진 하모니는 어떤 가수들도 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사돈 내외가 축가를 부른다고 했을 때 우리도 그런 준비를 했어야 했나를 잠시 생각했는데 이건 우리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마주 잡은
손끝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기나긴 겨울밤에도 춥지 않은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노래에는 이 날을 위해 그들이 투자했을 노력과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열두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모일 수있는시간을 맞추느라 힘들도 많이 들었을 거고 어떤 곡을 부를 것인지 여러 후보곡들 듣고 고르느라 설왕설래도 있었을 거고 선정된 곡을 연습하기 위해 각자의 바쁜 시간들을 쪼개야 했을 것이다. 어떤 식의 공연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들을 나누었을 거고 무대에서의 동선에 대해서도 많은 연습을 거쳤을 것이다.
곡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래된 노래라 대부분은 가사를 외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제법 긴 가사인데 틀리지 않으려 얼마나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불렀을까.
노래는 어느새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우리는 다 함께 지냈다
생명처럼 소중한 빛을
함께 지녔다
오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다"
그리고 사람들의 팔은 일제히 신랑 신부를 가리켰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연인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새롭게 탄생하는 한 쌍의 부부를 위해 자신들의 시간들을 내준 사람들의 애정과 사돈 내외를 위해 한 마음으로 뭉친 우정들이 뭉클했다.
그들은 미국에 살고 있고 대부분 미국 시민권자들이지만 여전히 한국인이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잊혀가는 인정과 품앗이, 감성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대한민국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한국인들인지 나는 미국 체류기간 동안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이야기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