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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Mar 23. 2022

코로나에 걸렸다 (5)

 

유니콘 옷 입고 침대에서 뛰기


코로나 이야기는 네버 엔딩인가? 

코로나 이야기 4번째를 끝낸 지 겨우 보름이 지났는데 5번째 코로나 이야기를 이어가게 될 줄 몰랐다.

자가격리 해제 후 보름이 지난 나는 또 자가격리가 아닌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웃프게도 이번엔 내가 걸린 게 아니라 한 집에 사는 남편과 아들 내외가 다 걸려서이다.  시작은 남편에게서부터였는데 이틀 만에 아들 내외에게도 증상이 나타났고 양성 판정을 받았다. 피차 양성 환자가 된 그들은 서로를 피할 필요가 없게 됐다. 서로 접촉하고 집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대신 음성인 나는 그들을 피해 방안에 콕 처박혀 숨어있게 됐다. 민주국가는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혼자 방콕을 하고, 안 걸려도 혼자 방콕 신세인 나는 무슨 팔자인지..... 



 

 위로가 되는 건 나만 정상이 아니라는 거다. 손녀도 음성이다. 손녀가 걸리지 않은 건 참으로 다행이긴 한데 조금은 신기하다.

한 집에서 사는 식구들이 다 걸려도 내가 감염되지 않은 건 이해가 된다. 사십일 전 3차까지 백신을 맞았고 보름 전에는 무증상으로 코로나까지 치른 뒤여서 내겐 아직 항체가 살아있을 테니까. 그런데 손녀는 백신도 맞은 적 없다.  증상을 보이는 날까지 제 부모와 같이 자고 먹고 놀고 뽀뽀도 하며 살 부대끼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온 식구가 돌아가며 코로나에 걸려도 손녀는 여전히 건강하다. 작년에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그런 적 있었다. 손녀와 같이 밥을 먹은 아이의 부모가 양성 판정이 나고 그 아이도 양성이 되어 어린이집이 폐쇄되었다. 그 아이와 같이 밥을 먹은 밀접접촉자 손녀도 14일 자가격리를 했다. 하지만 손녀는 끝까지 건강했다. 

코로나에 슈퍼 면역항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 있는데 혹시 손녀가 그런 사람들에게 해당이 되는 건 아닐까? 은근히 기대해본다.


손녀가 작년에 만든 게임, 넘겨서 글자가 나오면 지고 그림이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는데  무당벌레가 나오면 딱밤 맞기 벌칙이 있다나.



 나는 무증상으로 쉽게 넘어갔는데 남편과 아들 내외는 콧물과 인후통, 두통, 오한 등 전형적인 코로나 증상을 다 보였다.  혹시 싶어 손녀도 신속항원검사를 했는데 역시 음성이었다. 

남편이 양성인걸 알고 맞이했던 토, 일요일은 외가로 피난 보내 아이 이모와 같이 자고 돌아왔다. 이어 제 부모도 양성이 되자 그 이후부터 손녀는 내 작업실 좁은 방에서 나와 같이 모든 생활을 한다. 

 아들 내외는 재택근무를 하지만 힘들어 하고, 외출도 못하고 몸도 편치 않은 남편은 텔레비전 앞에 종일 누워있다. 저러다 등에 뿌리가 내리지 않을까 싶다.

식구들이 모두 삼식이가 되었다. 나는 열심히 시장 보고 끼니를 챙겨 먹인다. 하지만 세 사람은 식탁에서 사이좋게 밥을 먹는데 나는 그들에게 끼지 못하고 하녀처럼 싱크대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며 혼자 먹는다.  방에 들고 들어가는 게 귀찮아 대충 먹자니 무수리가 따로 없다. 

.  

 저녁은 넉넉하게 준비해 놓고 뒷 일은 며느리에게 맡기고 외식을 했다. 손녀 때문이다.

예전에는 가족 중 확진자가 나오면 식구들 모두 무조건 14일 격리로 발이 묶여 버렸지만 3월부터 바뀐 법으로 음성이면 일상생활을 모두 할 수가 있게 됐다. 성인 중 바깥 활동이 가능한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같은 음성인 손녀의 케어는 전적으로 내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아이를 픽업해서 나는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고 바깥에서 좀 놀다 저녁을 사 먹고 오기로 했다.  집밥파인 나는 외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에서 밥을 먹는 양성 환자들과 아이를 같은 식탁에 앉지 않게 하려니 매일 외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외식을 잘 안 하니 동네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아이 식성에 맞는 식당을 찾아다니려니 그것도 힘들었다. 더 문제는 아이가 밖에서 먹기 싫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게 유치원에서 공부하고 놀고 지쳐 돌아온 아이에게 또 놀자라든지, 이른 저녁을 먹자든지하는게 달가울 리 없었다. 

 첫날은 안 가겠다고 뻗대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가서 피자를 사먹이고, 다음 날은 가기 싫다고 눈물까지 찔끔대는 아이를 아예 둘러업고 중국집을 찾아가 짜장면을 사줬다. 등에 업혀서 안 갈래요, 가기 싫어요. 하며 눈물 찔끔대는 아이를 보면 사정 모르는 사람은 아이를 유괴하나 싶었을 거 같다. 

간신히 중국집에 데려다 놓아도 좋아하던 짜장면을 억지로 포크로 깨작대더니 이내 내려놓았다. 그리고 앙증맞은 손가락 두개를 펴들고 내게 흥정을 했다.

"할머니 시키는대로 두 번 밖에서 밥먹었으니 이제부터 두 번 집에서 먹어야 해요."

그래서 외식은 두 번으로 끝내고 집에서 손녀 밥을 따로해서 방 안에서 먹였다. 어거지로 밖에서 저녁을 먹는게 힘들지 다른 건 쉬웠다.  목욕시키고 내 방에 갇혀 둘이서 꽁냥꽁냥 대다 일인용 침대에 옹색하게 누워 같이 잠드는 날들.... 나름 재미있었다.

손녀는 말귀를 잘 알아듣고 눈치가 빠른 편이라 논리적으로 상황 설명을 하면 쉽게 이해를 하고 따라준다. 내 방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것도 잘 이해해 좁은 방안에 놀 수있을만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나는 손녀가 만들어 내는 이상한 게임들을 하고 끝말잇기(손녀는 끝말잇기 선수이다!), 스무고개를 하고 책을 읽고, 숨은 그림책을 들여다보며 같이 숨은 그림도 찾고, 공부도 하고, 침대에서 뛰기도 하고, 일인용 침대에  같이 누웠다. 불을 끄고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의 이야기를 해주니 유치원에서 다 들은 이야기라며 시큰둥해 하더니 내가 맞게 하나 안 하나 감시하다 고쳐주기까지 한다.



유치원에 보내기 전 매일 아침마다 자가 키트로 검사했다. 아들 내외는 혹시라도 손녀 때문에 유치원이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며 매우 신경을 썼다. 키트에 음성인 걸 확인하고서야 유치원에 보냈다. 며칠 째 매일 아침마다 코를 쑤시니 아이는 힘들어했다. 하지만  '좀 덜 아프게 해 줘요.' 정도만 말할 뿐 큰 저항 없이 코를 내밀고  잘 참아냈다.

그리고 해맑게 웃었다.

"야, 오늘은 덜 아팠어요."

내 컴퓨터도 유튜브를 즐기는 손녀에게 빼앗겼다.  나는 마우스를 조작하는 손녀 옆에서 뜨개질을 시작했다. 제 자리에 앉아 시간 때우기에는 이만한 게 없다.




그렇게 나는 또 자가격리를 한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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