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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4. 2015

바다의 자장

꿈꾸는 제주1 <우도>

  체증이 가신 가슴으로 만나는 바다는 얼마나 무량한가. 한 입씩 베어 먹어도 전혀 자국이 없는 하늘은 또한 얼마나 무량한가. 달고, 깊고, 아득한 바다를 앞에 두고 나는 옷을 벗는다. 알몸에서 푸른 지느러미가 돋는다. 첨벙, 바다에 뛰어들어 애타게 그리웠던 파도와 부드러운 물살을 느낀다.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며 심해의 시간을 깨운다.     


  우도.    


  바다의 자장이 강렬하다. 바다와 길과 집들, 우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바람꽃으로 화들짝 피고 만다. 돌아보니 성산도 바람이다.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에게서 자유의 냄새를 느낀다. 형체도 없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들. 나는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우도봉에 오른다. 파도는 뭍에 오르고 싶어 영원히 손을 내밀고, 갈매기는 날아오르나 머무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강렬한 자장에 이끌려 바다의 시원을 찾아 오른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의 너머, 당신의 너머, 우리가 힘겹게 걸어온 고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시각각 바다의 표정과 색깔은 변하고 여생의 페이지들은 빠르게 넘어간다. 꼼꼼히 따져 읽고 싶은가. 그런 마음은 아랑곳없이 손에 침도 묻히지 않고 페이지들을 척척 넘겨버리는 바람들. 쥐어보니 남은 페이지들이 얄팍하다. 넘긴 페이지들을 다시 들추어본다. 참 많은 얼룩들이구나.    


  검멀레 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걷는다. 햇살들이 자잘하게 부서져 내리는 밭은 판화 속 세상이다. 비슷하나 다른 무늬들은 시선을 오래 잡아둔다. 온통 검은 멍이 든 바위들 역시 다른 자세로 앉아있다. 먼 바다에서 실려 오는 구름 냄새에 불안해진다. 우도의 가장자리 어디쯤 휘돌아가는 바람에 문득 빗방울이 비친다. 저녁에는 바닷가 민박에서 한바탕 비의 리듬을 들을 수 있겠다.    

  

  할망의 굽은 등에 가득 얹힌 미역, 미끈하지만 멍에다. 누구나 가지고 살아야 하는 육체의 또 다른 이름. 끊임없이 벗어던지려고 하나 멍에를 내려놓는 순간 생의 마감임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즐길 것.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미래는 뒹굴 것.    


  비양도 입구, ‘샤워 가능함’이란 팻말 하나가 나의 걸음을 붙잡는다. ‘해와 달과 섬’이란 근사한 이름도 한몫을 한다. 이곳은 무법천지다.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는 해와 달과 섬, 나는 별채에 들었다 밤바다 앞에 앉는다.    

  그리하여 나는 아득해진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있다. 누구도 보여주지 않는 마음을 그리움이라고 한다. 나는 스무 살에 그리움을 알았고, 지금도 그 그리움을 못 잊는다. 잊을만하면 가까이서 당기는 바다의 자장이 그리움까지 끌어들인다. 포구에서 달그릇에 담긴 전복죽을 먹으며 이 또한 먼 훗날의 그리움이란 걸 안다. 이런 맛은 여전한 끌림이다.   

  

  섬을 

  뭍으로 끌어내려는 문장을 

  누가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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