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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3. 2015

자연으로 가는 길

 지리산연가8 <주천-산동-방광>

  구례 산동 산수유 축제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미 양평이나 이천의 산수유 꽃은 섭렵했지만 그건 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그곳에 다녀와서 쓴 시의 제목이 ‘산수유 꽃을 보려거든’이었는데 그 시로 운 좋게 한국교육신문 신춘문예(교원문학상)에  당선됐으니 산수유 꽃은 내게 행운의 꽃이기도 합니다. 남녘에서 시작되는 봄을 먼저 맞이하는 것은 조급증보다 설렘의 감정입니다. 앉아서 오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마중을 나간다고나 할까요? 경기도에서 전라도까지 저녁 버스를 타고 내려온 것이니 마중치곤 꽤나 먼 길입니다. 한편으론 뿌듯합니다. 이번 여정을 마치면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기 때문입니다. 아쉬움도 동반하겠지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걸었던 길이나 놓치고만 아름다운 풍경들, 어떤 계절에 왔으면 참 좋겠다 싶던 후회를 남겨두어야 하니까요. 처음부터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리라 작정을 한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낯선 길에 홀려 드디어 환형의 고리를 다 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을 이 봄날 산수유 꽃그늘에서 맞고 싶었습니다. 주천 지리산안내센터를 지나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산수유 꽃이 반겼습니다. 원천초등학교 담장은 아예 산수유로 도배를 했습니다. 눈을 두는 곳마다 몽롱한 노란 구름들이 뭉실뭉실 금방이라도 피어오를 듯했습니다. 때 맞춰 왔다는 안도감에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습니다. 구례와 남원을 가르는 밤재를 오르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어떤 이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구간은 최악이라는 불만투성이 글을 올렸습니다. 숲길이 아니라는 등, 성의가 없다는 등, 너무 힘들었다는 거겠지요. 정작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무엇 때문에 걷고 있는지 모르는 까닭이겠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본 경험을 말하자면 지루하게 이어지는 임도도 있고, 낙엽이 깔린 푹신한 숲길도 있었습니다. 평탄한 길이야 논밭이나 마을에 흔하지만, 가파르고 딱딱한 길도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고요한 고샅길과 곤곤한 삶의 냄새가 밴 길도 있었습니다. 편한 길만 좇아 걷자고 했다면 아예 이런 길 위에 서지 말았어야 했겠지요.   

  

  ‘자연으로 가는 길’이란 구례군의 슬로건입니다. 구례에는 빼어난 풍광과 함께 청정한 지역이 많다고 홍보하는 것이겠지요. 자연의 품에 안기려면 구례로 오라고 찌들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연으로 가는 길’에서 모든 삶은 자연에서부터 비롯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생각합니다. 문명의 세계에 수많은 길이 있으나 그 시원을 찾아가면 반드시 자연에 이를 거란 확신이 서기도 합니다. 결국 자연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밤재에 올라 계척마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쭉쭉 뻗은 편백나무들의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자 허파꽈리에 피톤치드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옷을 벗고 풍욕이나 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백나무 숲이 건강에 좋다는 소문은 편백나무들을 귀한 몸으로 만들었습니다. 가구도 그렇고, 사우나도 그렇고, 심지어는 베개까지 편백나무가 점령했습니다. 광주 부근 장성에 유명한 편백나무 숲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님을 모시고 꼭 가 보려든 계획을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두려는 창살처럼 단단하고 빽빽한 편백나무 숲에 오래 갇혀 있었습니다.      


  계척마을에 들어서자 산수유 꽃이 온 마을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저것들이 피느라 근질근질, 소곤소곤, 알콩달콩 했을 텐데 곁에 사는 사람들은 잠이나 제대로 이룰 수 있었을까요? 뒤척뒤척 옛날 일도 생각났을 것이고, 막걸리 한 잔에 고개를 넘어가던 육자배기 한 가락도 떠올랐을 것이고, 객지에 나가 있는 아이들 생각도 났겠지요. 그뿐이겠어요? 속절없이 늘어가는 흰머리며 예전 같지 않은 몸을 공손하게 받아들이느라 잠을 이룰 수 없었겠지요. 그곳에서 천여 년 전 중국 산동성에 사는 처녀가 시집올 때 가지고 와서 심었다는 산수유시목을 보았습니다. 천년이라니요. 그 유구한 세월을 받치고 선 나무라니요. 그 자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뿌리를 내렸겠지요. 아직도 세력이 왕성한 시목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고지순함이 그윽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번 운리 단속사지의 정당매를 보고 안타까웠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보존을 잘해준 손길이 참 고맙습니다. 시목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눈으로 쓸어내려자 노란 물감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현천마을은 가관이었습니다. 작은 저수지를 마당처럼 깔고 가부좌를 튼 마을과 노란 풍선을 든 산수유들이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놓았습니다. 사진작가들은 삼각대를 펼쳐놓고 그 풍광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나도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마을이 범선 한 척처럼 둥실둥실 떠가고 있습니다. 물그림자는 어떻고요. 시스루처럼 고혹적이었습니다. 탁본을 해 두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벽에 걸어두고 늘그막에 바라보고 있으면 늙음도 불현 듯 아름다울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제라고 하더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주천에서부터 눈에 띄던 산수유 꽃이 계척, 현천을 거쳐 탑동, 상위, 하위 등 가는 곳마다 불이 붙었을 겁니다. 산동면소재지에 이르자 축제가 열리는 지리산온천단지까지 가기 위해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축제는 가히 열광적입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축제가 열리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지역만 하더라도 3월 초에 광양 매화축제가 열리고 구례 산수유축제 그리고 섬진강 벚꽃축제가 열립니다. 지자체마다 경쟁하듯이 개최하고 있는 축제의 허실이야 굳이 들춰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일입니다. 자연을 즐기려면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축제장에는 의례 술과 노래와 자극적인 볼거리들로 가득합니다. 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는 걸 보니 산수유 꽃들도 참 힘들겠다 싶어 안타까웠습니다.  

   

  지리산온천단지 초입에 있는 탑동마을에 이르러 숙박을 하려던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마땅한 잠자리가 없었습니다. 축제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예약을 못한 나의 불찰이었습니다. 족저근막염이 도저 더 이상 가기 힘들었으나 무리를 해서 난동마을까지 걸었습니다. 가야 했습니다. 길고 긴 임도를 걸어 구리재에 이르니 허기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난동마을 쪽에서 길꾼들이 떼를 지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관광차로 부려놓은 그들은 한바탕 휘젓고 가는 바람 같습니다. 나도 쉬운 방법을 택한다면 저들 무리에 섞여 다니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호젓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구례에서 숙박을 한 뒤 다시 난동마을로 가서 마지막 코스를 걸었습니다. 어제보다 황사가 더 심하고 바람이 차갑게 불었습니다. 어제 하루라도 좋은 날씨를 만나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매화도 한창이었습니다. 산수유 꽃과 매화를 번갈아 만나며 눈이 호강을 했습니다. 지리산 남악사당이 이 마을 북쪽에 있었다고 해서 이름을 얻은 당동마을을 지나갔습니다. 최근 화가들이 많이 이주해와 ‘화가마을’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남향의 양지바른 터에 모던한 집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페와 갤러리도 있었습니다. 욕심 부릴 일은 아니지만 길을 걸으며 정말 마음에 드는 집들을 만나곤 합니다. 나도 저런 집에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주 들었습니다. 방광마을에 이르러 기나긴 길의 끝에 섰습니다.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컸습니다. 해냈다는 뿌듯한 느낌보다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마도 또 다른 낯선 길을 찾아 헤맬 테니까요.    

   배낭을 메고 처음으로 지리산 둘레길에 섰을 때는 가을이었습니다. 하늘이 얼마나 파랗던지 눈이 시렸습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길인 오늘은 꿀벌처럼 산수유 꽃을 따라 주천에서 방광마을까지 날았습니다. 줄줄 흐르는 꿀을 어디에 담아둘지 모르겠습니다.      

  한 그루 나무를 사랑하는 일도, 미물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도, 푸른 하늘 아래 서 있는 일도 모두 자연으로 가는 길입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도,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도 모두 자연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나는 비로소 자연으로 가는 길을 조금은 알듯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마을을 만나고, 역사와 문화를 만나 삶의 의미를 보듬는 길. 어느 곳에서는 사람이 그리워 하염없이 동구 밖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만났고, 산수유 그늘 아래 누렁이 황소가 지극히 평화롭게 밭을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녀리고 작지만 끈질기게 살아가는 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한한 우주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길 위에서 나를 만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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