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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3. 2015

봄봄

 지리산연가7 <오미-방광, 노고단>

  봄의 길목이다. 나무들이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매화는 벌써 부끄러운 듯 하얀 속살을 내밀고, 산수유 한 그루도 성급하게 노란 꽃술을 내밀고 있다. 다음 주부터 광양 매화축제가 시작되고 그 다음 주부터 구례 산수유축제가 시작된다고 하니 봄이 어김없이 오는 것일 게다. 마음껏 써버리고 하는 일 없이 흘려버려도 다시 리필해주는 봄이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한 푼의 대가도 없이, 차용증 한 장 없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우주의 무한한 혜택이 있다니 인간으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잘 된 하사마을 앞 들판에도 훈풍이 불어온다. 머잖아 아지랑이가 아롱거리고 파랗게 풀물이 들어올 것이다.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올라 소실점 속으로 사라진다. 저수지의 물은 반짝이고 갈대들이 연약한 허리를 굽실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밭갈이가 한창이다. 트랙터 한 대가 타원형의 트랙을 그리며 흙을 일구고 있다. 마른 흙과 붉은 속흙의 색깔이 선명하게 나뉜다. 옛것과 새것 같은 저 빛깔 속에는 눈보라가 있고 부르튼 입술이 있을 터. 갈아엎기 전의 마른 흙이 다시 속흙이 되는 동안 계절은 바뀔 것이다. 축축한 흙 한 줌을 들고 나는 이 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나.    


  시집을 내려고 시를 정리하다 보니 유달리 봄에 쓴 시들이 많았다. ‘봄꽃 피는 산을 오르며’, ‘다시 봄에 설레다’, ‘연두의 무리’, ‘이달의 신간’ 등. 봄은 내 앞섶을 열어젖힌다. 우중충한 색깔을 벗겨내고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무장해제시킨다. 따사로운 햇볕이 좋고, 만물이 생동하는 느낌이 좋다. 사람이며 꽃이며 나무들이며 보는 것마다 눈이 즐겁다. 그런 날이면 먼 곳에 있는 늙어가는 벗들도 그립고 삶이 아무런 조건 없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여생이 있다는 것에 감격하고 이 봄날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몸서리친다.    

  곳곳에 혹독한 겨울의 흔적이 널려 있다. 부러진 나뭇가지, 고집스럽게 응달을 움켜쥔 흙더미, 끝이 노랗게 말라버린 마늘... 나는 연지(蓮池)에서 무수히 꺾인 욕망을 보았다. 물속에서도 채 썩지 않은 여름날의 실루엣을 보았다. 어느 시인은 사라진 손바닥이라고 썼지만 사라진 여름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봄은 오는 것, 벌써 쑥을 캐고 있는 아낙이 있었다. 마른 풀숲을 들여다보니 정말 거기에서 파릇파릇 쑥이 돋아나오고 있다. 멀리 구례읍까지 달려가고 있는 황량한 들판에도 푸른 여름이 있었을 것이고 황금빛 가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겨울은 나고 봄이 오는 것이다.    


  지리산은 물이 풍부하다. 둘레길을 걷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어디를 가든 계곡이 있고 인공수로가 있어서 맑은 물이 흐른다. 그만큼 수량이 풍부하다는 것은 지리산의 품이 깊고 넓다는 까닭이리라. 아프리카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 오미에서 방광 가는 길에도 여전히 시원스럽게 흘러가는 물을 만나 발이 더 가뿐해진다. 숲을 끼고 돌거나 들길을 걷거나 마음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레 흘러간다.    

  하사, 상사 마을을 지나 지리산 탐방 안내소가 있는 황전마을에 이르렀다. 화엄사 입구다. 식당과 숙박업소들이 많다. 몇 해 전 이곳에 와서 하룻밤 지내려다 비싼 숙박료 때문에 그냥 지나친 적이 있어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다. 길을 꺾으니 짓다만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이제는 먹거리 중심의 관광은 지나간 듯싶다. 힐링의 시대에 맞게 조용하고 담백하고 여운이 깊은 장소를 찾는 것이 대세다. 이곳 또한 한 때의 영화가 있었던 곳이나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뒤틀린 소나무들의 품새가 그윽하다. 아름답다. 저 길을 돌아 봄이 왔을 것이고 저 길을 돌아 겨울이 왔을 것이다. 미을에 내려서니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눈에 띈다. 온통 낙서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일어설 것이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그리고 수많은 이름들.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오죽하면 유서 깊은 문화재에다도 이름을 새길까. 하기야 낙서는 우리만의 일은 아닌 듯싶다. 언젠가 보도된 것을 보면 로마의 콜로세움에 낙서를 하다 붙잡힌 외국인이 있었단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도 모래밭에 그리운 이름을 쓰고 숫눈을 밟으며 한 여자를 새겼던 적이 있다.   

   방광에서 산동을 거쳐 남원 주천에 이르는 코스는 산수유가 필 때 가장 아름다운 길, 그 길은 2주 후로 미뤄두고 노고단에 올랐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오르자 잔설들이 보이더니 성삼재에 이르러 빙하 같은 길이 나타났다. 세상에나 봄이라고 믿었건만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길은 여전히 겨울을, 그것도 무지막지한 겨울을 품고 있었다. 지난해 겨울 한라산에 오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희열에 찼던가. 봄빛을 받으며 눈길을 걷는 기분이란 오묘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아직 지리산 종주를 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올랐던 적이 있다. 여름이라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그러나 그 차고 맑은 계곡물의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았던 운해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오늘도 그런 기대를 안고 노고단에 올랐으나 칼바람이 불었다. 잔설 뒤로 반야봉과 중봉, 천왕봉이 아스라이 멀었다. 언제 저곳에 이를 것인가. 과연 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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