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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4. 2015

벌레 먹은 저녁을 위하여

꿈꾸는  제주3 <월평마을-대평포구=화순금모래해변-모슬포>

  요즘 통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그대의 메일을 읽는 순간 살을 베고 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동질감이랄까. 2박 3일의 제주 올레길 여정을 정리하며 내가 소비한 물질이 과연 시 한편보다 나은 값어치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빈손으로 돌아온 것만 같아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흔적을 남기며 어느 순간 와 줄지 모르는 섬광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해안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파도가 있고, 바람이 있고, 마을이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가 여백입니다. 나는 여백을 만나기 위해 이런 길을 걷는 셈입니다. 길을 걸으며 여백에 무엇이든 지우고 새로 씁니다. 생고무 같은 흰 구름 한 덩이면 깨끗하게 닦이는 여백입니다. 나의 가족사도 몇 번씩 지워지고 나의 부끄러움도 몇 번씩 덧칠됐다 지워집니다. 여백을 통해 나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나의 가장 아픈 곳을 찾아냅니다. 그냥 걸으며 개념 없이 썼다 지우는 일만 반복합니다. 넓은 여백에서 태어난 사유가 올곧다는 걸 그대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대나 나나 시 쓰는 일이 이 여백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상에 치여 여백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맙니다. 정말 절망적인 일입니다.   

  

  여백을 떠올리며 걷는 길이었으나

  월평마을에서 오후 4시를 넘겨 시작한 길이 늦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대평포구에 이르렀습니다. 마을을 보쌈 하려는 듯 해무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숙소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습니다. 징검다리 연휴라 그런지 펜션마다 사람이 꽉 찼습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서 담벼락에 붙은 민박집 글씨를 보고 겨우 방을 구했습니다. 그나마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캄캄한 마을길을 걸어 해무에 거의 먹혀버린 포구로 내려왔습니다. 비스듬하게 기운 돌탁자가 있고 플라스틱 의자가 있는 천막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달그락거리는 내 숟가락 소리를 바다가 다 듣고 있었습니다.  


  ‘티벳 풍경’이란 게스트하우스를 

  아침에 발견하고 너무 아쉬웠습니다. 내가 묵은 민박집 바로 앞이었습니다. 펄럭이는 오색 깃발과 큰 수레바퀴, 마당에 심은 작은 꽃들과 다양한 소품들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내 버킷리스트에도 올라 있는 그곳을 언제 가게 될지 모르지만 ‘티벳’이란 낱말만 보아도 ‘오체투지’, ‘차마고도’, ‘설산’ 이란 말들이 떠올라 입안이 새콤달콤해졌습니다. 그리고는 9박 10일 일정으로 홀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있는 작은 딸이 생각났습니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내가 그렇게 가르친 기억도 없는데 그저 대견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홀로 40여 일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마쳤으니 이번 여행은 그리 걱정스럽지는 않았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나를 닮아서 그렇다는 아내의 말이 싫지 않았는데 한편으론 마음이 조금 어두워졌습니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는 시간들, 누가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길어 올려야 하는 시간들, 그 시간을 갈고 닦아서 내 삶의 유용한 질료를 만들어야 하는 인간의 숙명 같은 것들.   

  아침 식사를 해결할 만한 곳이 없어 

  컵라면을 먹고 다시 길을 시작했습니다. 대평포구에서 화순금모래해변까지 9코스입니다.  원시림이 자생하는 안덕계곡을 오르는 길이니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할 길입니다. 바닷가 절벽인 박수기정에 이르러 와이드스크린에 비친 풍광에 넋을 잃었습니다. 자연의 숨결은 부드러우면서도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자연의 위대함에 인간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집니다. 울창한 상록수림의 향기가 폐부에까지 미쳐 들숨과 날숨이 저절로 깊어집니다. 해안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숲의 향기, 햇빛이 들지 않을 만큼 빽빽한 숲길을 오르다 몇 걸음 벗어나면 갑자기 나타나는 초지 같은 것들이 나를 달뜨게 하였습니다. 몰질, 볼레낭 길, 자귀나무 숲길, 이런 정감 있는 낱말들을 흥얼거리며 바다에서 재재거릴 푸른 도마뱀이 되었습니다. 중산간에서 만난 푸짐한 말똥 무더기를 건너뛰며, 보랏빛 엉겅퀴에 앵글을 들이대며, 이 땅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덕스럽고 쾌활한 큰 딸아이가 전화로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힘들지 않으시냐고 걱정 반, 부러움 반이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다시 들으면 후자에 악센트가 있는 목소리입니다. 가정을 가졌기에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늘 부푼 풍선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새삼 광주에 계시는 어머님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광주에 내려가서 어머님을 뵙고 청산도에 다녀오려던 계획을 제주 올레길로  급선회한 탓에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자식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도리가 있으나 그보다 내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결과입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자식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 어머님이 아시면 무척  섭섭해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다. 부모란 아무런 대가 없이 화수분 같은 사랑을 평생 베풀고 사는 유일한 분이 아닙니까.     


  어머니와 아내를 생각하면서도

  나는 시 쓰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친구가 뉴욕을 다녀온 후로 부모도 처자식도 모두 잊고 오로지 그림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나는 지금 어떤 결기로 시를 쓰고 있는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대가 보고 있는 최근 나의 시 작업은 내 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의 풍경 속에서 삶을 변주해 나가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조직화된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문화적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작은 일상과 사물은 우리 삶을 재조명하는 단서가 됩니다. 이러한 단서는 생의 풍경을 깊이 관조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두운 기억이나 상실 또는 소멸에 관한 것이라도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시가 전통으로의 회귀나 복고적 양식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지만 새로움이란 무기로 타자와의 불통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시적 지향입니다. 수많은 논의가 되어 왔지만 결론적으로 시는 현실적인 감각과 정서로 우리들의 삶의 중심을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창조한 상상의 세계는 흥미롭고 새로울 수 있으나 그것이 삶에서 유리된다면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겠지요. 내가 생각하는 서정의 미래는 전통을 바탕으로 삶의 애환을 현실적인 시각과 감각으로 새롭게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어렵습니다. 아직까지 시론이 정립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정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변의 모래가 보드랍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모래 해변이랍니다. 따갑게 달구어진 모래를 밟으며 걸었습니다. 잠시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손과 발을 담갔습니다. 초록바다라는 동요를 흥얼거렸습니다. 등대지기, 섬집 아기, 바닷가에서… 섬마을 학교 빈 교실에서 풍금을 치며 불렀던 노래들이 아련하게 들려왔습니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의 목적지는 어디 일까요. 바로 앞에 보이는 용머리 해안일까요. 아니며 하멜이 스페르웨르 호를 타고 온 표류해온 송악산 저기 일까요

  마침 송악산에 이르러 예정에 없던 마라도행 유람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배를 타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물살이 느껴지는 지느러미를 가질 수 없지만 꼭 그런 심정입니다. 배를 타면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바다의 빛깔과 촉감과 내음까지 모두 향유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까닭입니다. 그렇게 바다를 달려 국토의 최남단이라는 상징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가면 내 손을 덥석 잡아 줄 누군가가 있을 것만 같았는데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카트가 먼저 반겼습니다. 서로 원조라고 우겨대는 짜장면 집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도대체 바다에서 짜장면을 시킨 분은 누구일까요?  마라도 한 바퀴를 휘 돌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한반도의 동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우거진 갈대와 등대 하나만 있었으면 좋았을 섬.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이야말로 천혜의 유산이란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마라도를 끝으로 하루 일정을 끝냈으면 좋으련만 돌올하게 솟은 송악산에 올랐습니다. 방목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여백에 내 마음을 세웠습니다. 붉은 흙이 아직도 부스러지며 흘러내리는 것 같은 분화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득하고 깊었습니다. 우묵한 눈망울 같다고나 할까요. 송악산이 만신창이인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송악산 허리에는 일제가 포진지로 만든 검은 구멍들이 즐비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도 이곳과 섯알 오름에서였다고 하니 부근의 알뜨르 비행장과 더불어 전쟁의 상흔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몸이 지치고 힘들어 역사적 현장을 무덤덤하게 지나쳤습니다. 모슬포까지 가다 그만 오금이 당겨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무려 25킬로미터나 걸었으니 한계에 노출된 적이 없는 내 종아리와 관절들이 일제히 파업을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식의 무모함이라니....그러고도 다음 날 11코스를 향해 또 욕심을 부렸습니다. 중도에서 그만 둘 길을 말입니다.     


 피가 맑아서 편지를 쓴다

 미안하다 당신의 방에 어울리는

 바다와 꽃과 돌담길을 두고 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리필이 안 돼서

 어디서든 훔쳐오고 싶어진다

 열다섯 살 무채색 같은 

 당신의 극락강역*도 건드렸다

 매일 눈을 뜨고 살지만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잊고 지낸다

 그래선지 내 살을 비비면

 빗방울 냄새가 난다

 분화구를 들여다보고 돌아와

 나는 오래도록 눈이 시리고

 당신의 처방인양

 완만한 저녁의 능선 위에서

 푸른 여백을 뜯어먹고 있다     

 * 김연종 시인의 시집    

  -졸시 「시인에게」 전문-    

  벌레 먹은 저녁들이 많습니다. 온전한 저녁을 갖고 싶지만 저절로 시들기도 하고 내가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하루가 참으로 먼 길입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도 참으로 먼 길입니다. 산다는 것도 참으로 먼 길입니다. 기념으로 저녁을 먹고, 기념으로 길을 걷고, 기념으로 글을 씁니다. 기념으로 잠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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