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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5. 2015

내 바다에 바람이 불었어라

꿈꾸는 제주6  <용수포구-저지마을-한림항-고내포구>

  여행지에서 여행자가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낯섦입니다. 평소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며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난 것들과의 마주침. 돌담이며, 바다, 꽃, 냄새, 지명, 음식……. 이런 대상들이 낯설게 다가와 즐거움이 되고 때로는 시적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될 거야. -어린 왕자 중에서-”      

  이런 글귀를 가슴에 담아둔 이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게스트하우스의 기다란 나무의자에 적힌 이 글귀가 일 년만의 제주 올레길 여정을 축복해주었습니다. 길을 떠나자고 작정하고 나면 온몸에 설렘이 열꽃처럼 핍니다. 행여 피치 못한 일이 생겨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도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약해뒀다 몸이 아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네가 오는 오후 4시를 위해 나는 3시부터 안절부절 기다리지만 너를 만나면 어디에 갈까, 무얼 할까, 무얼 먹을까 생각하느라 행복해지기 시작합니다. 기다림이 얼마나 값지고 사랑스럽고 간직하고 싶은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항에서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풍랑주의보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해안 쪽에서 만개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다행이라면 용수포구에서 시작한 코스가 중산간 저지마을로 방향을 틀어서 맞바람은 피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발이 쏟아질 듯 흐렸으나 멈출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구불구불 낮게 울을 친 검은 돌담들이 정겹고 시야는 가릴 것이 없어 무한하게 뻗쳐나갔습니다. 거기에 영원한 길벗이 곁에 있으니 짤그랑짤그랑 워낭소리가 절로 울립니다. 곁에서 울리는 워낭소리는 더 맑고 경쾌해서 바람의 깃을 물고 날아가고 돌담을 뛰어넘기도 합니다. 급기야는 저수지에 풍덩 빠져버립니다. 감귤 농장을 지나가면서는 아예 감귤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릅니다. 이 겨울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치자면 눈 덮인 한라산을 배경으로 선 감귤나무일 것입니다. 노랗게 익은 감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 밭에서는 탄성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낙과들 앞에서 나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병충해 때문인가, 아니면 일손이 없어 그대로 방치한 것인가, 아니면 귤 값이 폭락했다더니 작정하고 버린 것인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습니다. 거세지는 날씨도 날씨려니와 중산간의 농로와 숲에서는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낙과는 나를 슬프게 합니다. 꽃을 피우고 하나의 열매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격정의 시간들을 보낸 것입니까. 저런 아픔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이려니 생각하니 그 앞에 선 내가 겸허해집니다.    

  눈보라가 쳤습니다. 여물대로 여문 바람이 매섭게 몰아댔습니다. 몇 개의 작은 숲길을 걸어 고사리 숲길에 들어서니 숲 냄새가 그윽했습니다. 바람은 잦아들었으나 조도가 더 낮아져서 을씨년스럽다는 생각,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습한 기운을 빨리 벗어나려는데 숲의 끄트머리에 조그만 쉼터가 있었습니다.  ‘고사리 숲 쉼팡’ 마을 청년들이 올레꾼들을 위해 마련한 무인 쉼터입니다. 차를 마실 수 있게 가스레인지와 주전자, 물과 차를 준비해두고 감귤도 한 상자 놓아두었습니다. 이런 베풂이라니. 감귤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습니다. 새콤달콤한 맛이 피로를 싹 가시게 합니다. 예기치 않은 장소와 후의를 받은 어떤 올레꾼들이 감사의 쪽지를 꽂아놓았습니다. 어떤 이는 아예 천 원짜리 두 장을 압정으로 눌러놓았습니다. 바람에 팔랑거리는 그것이 차 한 잔의 가치를 계산해 놓은 것은 아닐 터였습니다. 고마움, 감사, 감동, 그런 말들을 대신하여 지갑에서 주저 없이 뽑아 든 것이겠지요. 사실 차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세계 7대 경관이라고 하지만 폭포 와 동굴, 오름과 유채꽃만으로 그걸 대신할 수 없습니다. 관광지로서의 품격을 잃은 곳이 대부분입니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전통적인 모습을 오래 간직하면 좋으련만 개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중국인들이 여의도의  몇십 배나 되는 땅을 사들였다니 그 또한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삶의 이력이 드러난 마을과 돌담길과 사람들의 베풂이 곳곳에 남아있어 여행자들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저지오름에 오르자 흐린 제주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람은 오름을 통째로 뽑아들 것처럼 달려들었으나 의외로 풍경은 고요했습니다. 비닐하우스들과 기하학적인 모양의 밭들이 기묘한 형상을 자아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력이 가득한 밭이지만 전체적인 색조는 어둡고 가라앉아 있습니다. 몇 개의 오름이 뾰루지처럼 돋아있습니다. 이곳에 수많은 화산이 있었다니 때로 역사적인 사실은 모두 거짓처럼 들립니다. 내가 살아보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시절도, 제주 4․3 사건이나 동란도 모두 나와 무관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저 어디쯤 동족상잔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수십 개나 있었을 것입니다. 눈물과 한숨과 분노가 뒤섞인 밤을 어떻게 보냈다는 걸까요. 그런 밤이 지나면 또 아침이 오고 끼니를 위해 무거운 몸뚱이를 던졌을 것입니다. 저지분화구를 보고 있자니 아득해졌습니다. 숲을 헤치고 아래로 아래로 걸어 내려가면 시뻘건 용암이 들끓고 있는 지구의 중심에 가 닿겠지요. 살아올 이도 없겠지만 다시 이 화산이 분출한다면 역시나 살아남을 이도 없을 것입니다. 날씨만 맑았다면 시린 하늘 멀리 하얗게 눈이 덮인 한라산이 보일 것이고 뒤돌아보면 비양도가 한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저지마을 민박에서 혼곤한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2015년 새해 아침입니다. 서설이 내렸고 나무들은 여전히 울부짖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카톡으로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제주는 오늘도 풍랑주의보가 발효 중이고 대설주의보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뜰라나 모르겠다고 걱정입니다. 그러나 제주는 제주입니다. 웬만해선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답니다. 한라산이라면 모를까 중산간이나 해안은 괜찮을 듯싶었습니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하늘은 변덕스러웠습니다. 눈보라가 치다가 언제였나 싶게 파란 하늘을 슬쩍 보여주다 다시 검은 구름을 드리웠습니다. 그래도 새해인데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새해 아침을 서귀포 쪽에서 맞을까 궁리도 해보았으나 일출을 보기 위해 무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의식이 내게는 별다를 게 없습니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고 있다면 어제는 오늘과 같고 오늘은 내일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없지만 이 순간만은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걷기라는 고전적인 방식을 통해 내 삶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인식은 충만한 행복에 닿아있다고 자신에게 말해줍니다. 그런 생각 때문은 아니지만 발바닥이 푹신하게 잠기는 소낭숲길에서 아내의 입술을 훔쳤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짧은 순간 전율이 두툼하게 입은 옷을 뚫고 내 몸에서 아내의 몸으로 옮겨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내는 내 입술이 더 따뜻하다고 했습니다. 새해 선물치고는 돈 한 푼 안 들인 것이니 일거양득입니다. 나이를 잠깐 망각해도 좋은 때가 가끔 있습니다.     

  해안에 가까워지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습니다. 투사처럼 한발 한발 전진했습니다. 선인장 자생지를 지나 기어이 월령포구에 닿았습니다. 바다는 미쳐있었습니다. 누가 심해의 분노를 깨우기라도 한 듯이 집채 같은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서 부서졌습니다. 시리고 맑은 에메랄드 빛깔들이 허연 이빨에 찢기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 파도들이 진도 팽목항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아직 돌아가지 못한 혼령들이 여전히 잘 먹고 잘 사는 뭍을 끌고 들어가려는 몸짓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기척이 없습니다. 바다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드라이브하는 차량들만 가끔 지나칠 뿐 미친 바다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습니다.     

  비양도를 내내 눈에 담고 걸었습니다. 제주 화산섬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섬. 조금씩 옆으로 돌아앉는 모습이 살가웠습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 같은 섬이 둥실 떠서 망망대해로 사라지려는 시선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금능 해변과 협재 해변의 고운 모래와 바다 빛깔과 잘 어울렸습니다. 갈매기들이 웃통을 다 벗어부치고 풍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기류에 몸을 싣고 유유히 바람을 즐기는 모습이 흡사 도인 같았습니다.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군무를 펼치며 날아올랐습니다. 저들에게도 먹이가 아니라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날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일까요. 갈매기의 비상 사이로 하늘이 말갛게 개이기도 했습니다.  

   

   한림항에는 수십 척의 배들이 피항해 있었습니다. 선원들 때문인지 모텔이 꽉 차서 어렵게 방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곤곤한 밤을 보냈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아침을 때우고 사흘 째 길을 나섰습니다. 무리하지 않는다고 하루 한 코스만 걸었으나 다리가 무거웠습니다. 한림에서 납읍리의 중산간을 지나 다시 고내포구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습니다. 나를 이끄는 길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면 벌써 그 길은 생명력을 잃고 맙니다. 인공으로 다져진 길은 아무리 잘 만들어놓아도 감흥이 없게 마련입니다. 특히나 데크를 깔아놓은 길이랄지 계단을 만들어 놓은 길은 사람 냄새가 나서 쉽게 질리고 맙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제주의 돌담길에는 정착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어 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투박한 손으로 돌덩이를 캐서 한 개 한 개 쌓아 올렸을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겨워집니다.     


  영새성물을 지나 사장밭 가는 길에 중무장한 채 나물을 수확하고 있는 할망들을 만났습니다. 주의보 속에서도 일을 나오신 분들입니다. 손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작업을 하고 있으나 정물처럼 고요했습니다. 궁금해서 무슨 나물이냐고 물었으나 바람에 묻혀 이름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그 나물 이름을 알아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이 또한 여행자의 분별없는 행동입니다. 돌담 가장자리에 장작불이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001년 아름다운 학교 대상을 받았다는 납읍초등학교. 인조잔디운동장에 아담한 단층 건물이 마음에 들어찹니다. 내 직업이 그런지라 어딜 가든 학교에 가면 정감이 앞섭니다. 보지 않아도 교실 내부가 훤히 그려지고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다 보입니다. 이처럼 자그맣고 평화로운 곳이라면 거기에 둥지를 틀고 싶어집니다. 그런 까닭에 섬 근무를 희망했고 내 교직의 첫발도 섬에서 시작했습니다. 나는 외롭고 싶은 젊은이였습니다. 그때 시를 온몸으로 밀고 나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쯤은 근사한 시 몇 편을 남겼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2년 만에 자청해서 그 고독한 감옥을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대 혁명과 같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으니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요. 교문 앞에 난대림이 있었습니다. 금상공원이라고 하는데 후박나무, 종자기 나무, 담팔수 등 난대림이 빼곡했습니다. 한 바퀴 돌고 나오니 바람에 찢긴 몸이 다 꿰매진 듯 말끔해졌습니다. 납읍리 경로당 앞에서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났습니다. 노란 벽에 벽화를 그려놓은 것인데 우연의 일치겠지만 용수포구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주인공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내면이 순수한 아이. 세상을 살아가며 문득 그가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시장에서, 꽃들이 만개한 길 위에서……. 그 그리움은 내 삶의 자양분이며 내 열정을 지필 불씨이기도 합니다. 내 바다에 바람이 불고 어린 왕자가 함께 돌담길과 숲길과 자갈길과 해안길을 걸었습니다. 짤그랑거리는 워낭소리를 고내포구에 두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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