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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9. 2015

여전히 꿈이라 부르는 것들

꿈꾸는 제주7 <고내포구-광령1리-산지천마당-조천만세탑>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린다. 질척거리는 건 마음이다. 풍경은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 있다. 어떤 날, 어디에서, 무엇을 보건 마음이 가 닿지 않으면 그저 죽은 사물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번 무인카페에 두고 온 워낭을 챙겨 든다. 그 사이 녹이나 슬지 않았는지 들여다보니 반짝거리며 빛난다. 빗속에서 워낭을 흔들어본다.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가는 빗줄기를 가르고 포구에 정박한 배들의 고물에서 부서진다. 영광, 진국, 대성, 백재…. 아버지거나 아들이거나 아니면 바람이거나 꿈이 가득 담긴 이름들의 배들이 출렁거린다. 서로 비벼대는 저것들을 유희라고 말할까 울음이라고 말할까. 하늘은 잔뜩 흐리고 무심한 듯 돌아보니   

  애월이다. 

  애월에선 취한 밤도 문장이라고 쓴 시인이 있다. 그런 문장을 읽으며 팽나무 아래서 백 년 동안 술잔을 기울이고 나면 사랑이 비루해진단다. 비루한 사랑이라니. 우리들의 사랑 또한 비루하지 않던가. 나를 꺾어 바치고, 내 살을 온전히 다 발라주고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니던가. 맨 처음 도톰한 입술을 달싹여 ‘애월’이라고 부른 사람이 그이라면 사랑이 비루해도 좋겠다. 먹빛처럼 까만 바다에서 젖은 달빛을 건져 올리고는 젖은 소매를 쥐어짜던 그 사람. 그를 생각하면 달빛과 달빛이 겹쳐지는 어금니같이 아려오는 검은 문장, 애월이라고 노래한 시인은 지금 물가에 앉아서 짐승처럼 달의 문장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애월에선 

  달이 떠서 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져서는 안 될 것 같다. 사랑하는 이의 소식을 기다리며 달의 뒤편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버릇을 가진 시인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서 수없이 끊어진 그리움의 발자국을 읽는다. 제 몸의 마려움을 밀어내며 먼 곳에서 우는 파도에 안기는가 하면, 몸을 비비며 울어대는 뱃전에 기대 있다. 먼 곳에서 달려오는 달빛이 물을 만나 가장 아름다운 문자가 되는 걸 지켜보며 가장 깊이 기록되는 달의 문장을 읽을 수 없어 괴로운 시인. 그가 애월에서 초름한 꽃만 보아도 시린 마음을 달래고 있다.  

  

  애월이란

  잘 익은 무화과 같다. 해안도로를 걷자니 마음이 시려오고 시가 간절해진다. 여전히 꿈이라 부르는 것들, 목적지도 방향도 없이 막무가내 내 마음을 끌고 가는 것들. 어느 날은 문득 안겼다 금방 토라져서 사라지는 것들, 불러도 귀를 막아버린 듯 대답이 없는 것들. 민첩하고 영리한 사냥꾼 기질이 없는 나는 시 앞에서 여전히 작아진다. 몇 길 물 속에 빠진 달빛을 건져 올리려는 것처럼 아득해진다. 시가 상처에서 피는 꽃이라면 아직 나는 너무 말짱하다. 해조류가 밀려오는 해안이 오래도록 마음을 잡아둔다. 눈발이 날리는 어느 작은 포구에 당신이 있었다.     


 오름에서 걸어 내려온 나는 

 능선마다 바다를 걸어두었습니다     

 비가 오는 수요일은 어두워서 

 파도를 방에 들이고 

 늙은 화가처럼 앉아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유리병에 가득 담아가는 달빛에 

 오래도록 붙잡혀 있자니 

 당신의 바다는 아주 멀었습니다     

 해조류가 밀려드는 해안처럼  

 그렇게 사랑이 밀물져왔을까요 

 묵은 감정을 꺼내 

 푸른 물이 들어 날아오를 때까지 바라봅니다     

 당신이 걸어오던 어느 포구의 저녁처럼 

 작은 배들은 울어대고 

 잘 익은 무화과 같은 이곳에서 

 몸을 숙여

 바다 너머의 바다를 불러봅니다     

 무수한 변성기들이 다 지나가고 

 덧칠한 그림처럼

 어느덧 당신을 묻어버리고 삽니다     

    -졸시「애월」전문-    


  제주의 서북부 해안을 꼼꼼하게 읽는다. 애월에서 조천까지 대략 55킬로미터. 올레길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물들이는 쪽빛 바다를 따라가다 중산간 쪽으로 몸을 비틀어 다시 해안 쪽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흘이니 하루에 예닐곱 시간 정도 걷기로 한다. 빗속에서도 바다는 짙푸르고 여전히 매혹적이다. 그런 바다를 애인처럼 끼고 걷거나 바라보는 일은 호사스럽다. 해안도로변에 즐비한 카페와 음식점과 펜션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느슨하고 단조로운 삶들은 이곳에 와서 갑자기 팽창하고 오감의 세포들이 두근두근 살아난다.      

 

  구엄리 소금 빌레. 평평하고 넓은 바위에 바닷물을 담아 소금을 만든 곳이다. 그 넓이가  천오백여 평에 달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돌소금은 넓적하고 굵을 뿐 아니라, 맛과 색깔이 뛰어나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해안가에서 용천수를 발견하고 놀라듯이 삶의 흔적들이 내 무지를 깨뜨린다. 갯벌이 아닌 바위에서 소금을 구하다니. 생각해보지 못한 사소한 일들이 내 의식에 밑줄을 친다. 현무암을 쌓아 올린 제주의 전통 등대인 도댓불은 또 어떤가. 해질 무렵 뱃일 나가는 어부들이 생선 기름을 이용해 불을 밝히고 아침에 돌아오면 그 불을 껐다고 한다. 혹여 비바람에 그 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했을까. 칠흑 같은 바다에서 생사의 경계를 오갔을 그들을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진다.     


  애월 해안도로를 벗어나 수산봉을 향해 걷는다. 정자에 그녀들이 있다. 수수한 중년의 여인들. 둘이서 제주올레를 완주하고 있는 중이란다.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운 사이니 이렇듯 마음이 맞아 길을 걷는 것일 것이고,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함께 나누고 있으니 둘도 없는 사이가 될 터였다. 나는 그런 동성의 친구들을 보면 한없이 부러워진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 온지 벌써 이십여 년, 희로애락을  함께할 친구가 그립다. 냄새나는 속내를 맑은 눈빛으로 씻어주고 닦아줄 친구, 며칠이고 안 보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나는 친구. 그런 친구와 히말라야든 아마존이든 마음 내키는 곳으로 영원히 여행하고 싶다.   

   

  제주도는 역사의 보고다. 이쯤 와서 내가 걸어왔던 길을 생각해보니 강정해안도, 알뜨르 비행장도, 하멜의 기념탑도, 해안의 연대들과 근대사의 아픔이 남아 있는 장소들도 너무 쉽게 지나친 일이 후회가 된다. 사전에 충분한 공부를 하고 역사적인 장소들과 마주했다면 그 의미가 훨씬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고려시대 삼별초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항몽 유적지에 이르렀다. 시험을 위해 역사를 달달 외웠던 일이 역시나 부끄럽다. 과거를 떠올리면 머리가 잘 작동되지 않는 사실이 의아스럽다. 역사는 현장에서 제대로 익혀야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진도를 근거지로 항전하던 삼별초군이 이곳에 토성을 구축하고 여몽 연합군에 항전했으나 결국 전멸하고 말았다. 제주도에서 최후까지 항전한 2년 6개월의 자취가 바로 항파두성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토성에 올라 새파란 토끼풀을 짓밟으며 셔터를 눌러댄다. 비감에 젖은 눈빛을 찾을 수 없고 적을 향해 돌진하는 최후의 함성을 들을 수도 없다. 슬픈 일이다.    

   둘째 날 다행히 비가 멎었다. 우의를 벗으니 훨씬 가볍다. 옛 선비들이 달빛 아래 풍류를 즐겼다는 외도 월대를 지나 이호테우 해변에 이르는 길. 비행기들이 자주 날아오른다. 제주공항이 지척이다. 시내에 가깝지만 호젓한 해안. 모래알은 부드럽고 촉촉이 젖어 있다. 어느 여름날에는 이곳에 피서객들이 몰려들어 바위섬에 몰려든 물범들 같겠다. 협재 해변이나 금능 해변, 남쪽으로는 화순 금모래 해변과 중문 해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트로이의 목마를 연상케 하는 등대 두 개가 인상적이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다. 부부와 초등학생 아들, 한 가족이 그 등대를 바라보며 걷고 있다. 뒤에서 보고 있자니 걷는 모양새가 수시로 바뀐다. 셋이서 횡대로 나란히 걷다가, 아버지와 아들이 앞장서서 걷으면 어머니는 뒤처져 걷는다. 아들이 노란 경계석 위로 올라가서 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가면 어머니는 가까이 뒤따른다. 셋이서 종대로 걷다가, 어머니가 아들의 어깨를 감싸고 가는 걸 뒤에서 아버지가 바라보며 걷는다. 셋이서 만드는 걸음의 변주가 다채롭다. 함께 가는 길이지만 언제나 같은 방식이 아니다. 의도한 일도 의식한 일도 아니지만 한 장의 그림 속에서 가족의 본질을 읽는다.     

  나의 걸음도 그럴 것이다. 대부분 내가 앞장서서 걷는 것 같지만 아내와 함께 나란히 걷기도 했을 것이고 어떨 땐 아내가 앞장서서 걸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온전하게 바라보는 곳이 같을 수도 있고 서로 다를 수도 있다. 그러니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마음은 어떻겠는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는지, 지금 당신은 어떤 상태인지 그걸 따지고 들면 이미 걷기는 길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함께 가는 길이지만 몸도 마음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제주의 머리라는 도두봉 정상에 올라 바다를 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도화지와 물감과 붓을 떠올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과 장쾌한 바다 빛깔. 파도소리마저 푸르게 빛난다. 지금까지 해안을 걸으며 보아왔던 바다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한 폭의 수려한 그림으로 떠 있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바람처럼 달리면 목포에 이를 것이고 좀 더 내륙으로 달리면 어머니가 계시는 광주에 이를 것이다. 어머니가 지금보다 더 젊었을 적에 누님을 대동해서 꼭 한 번 제주에 오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일이 후회스럽다. 어머니도 누님도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살고 있으니 뵐 때마다 그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맛있는 갈치조림을 두고도 어머니 생각보다 자식 생각이 먼저 드는 게 부모 마음이란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지금 알았던 걸 그때 알았다면 내 삶은 지금쯤 어떤 향기를 품고 있을까.      

  용두암에서 해삼 한 접시로 갈무리했던 수년 전 조문 길의 추억을 더듬으며 목관아지를 지난다. 호젓함은 사라졌지만 제주 시내를 통과하며 역시나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다. 제주 최대 시장인 동문재래시장. 활기에 찬 시장은 나를 늘 들뜨게 한다. 상인이거나 관광객이거나 눈빛이 반짝거린다. 예로부터 길은 여기에 머무르고 여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고단한 삶도, 다가올 삶도 모두 아우르며 하나의 고리로 이어준다. 회 한 접시에서 짙푸른 바다 향을 맡는다. 쉽게 휘발이 되는 향기, 그래서 늘 그리움으로 남는 향기. 물이랑을 타고 넘는 기분으로 나의 오후는 넘실거린다. 과거로부터 돌아와 막 지은 따뜻한 밥을 먹듯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제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여행자에게 축복이다. 밝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사라 오름에 오른다. 운동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사는 부근에 이런 오름과 바다가 있다면 여가 시간이 얼나마 행복할까. 이들 또한 무병장수를 꿈꿀 터. 여전히 꿈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우리의 삶은 지탱하고 있다.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어쩌면 바다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시내의 전경이 아름답다. 꽤나 숨이 깊던 곶자왈에 다녀온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 곳의 냄새와 그곳의 감촉과 그곳의 중얼거림 같은 것들. 벌써 애월도 지워지고 없다. 모든 것들이 내 눈밖에 벗어나면 알맹이만 남고 껍질은 사라진다. 참 많이 걸었구나, 아파오던 뒤꿈치에 위로처럼 파도가 닿는다.  

  

  사라봉을 거쳐 별도봉을 오르내리자 돌담들만 남은 텅 빈 땅이다. 이곳이 바로 4.3 사건 당시 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곤을동 마을 터란다. 가슴이 저려온다.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온 마을이 불타고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뿔뿔이 흩어졌던 아픈 역사가 이곳에 또 있다.     


  무거운 발걸음을 바다에 씻어내고 다시 길을 걸는다. 유일하게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원당봉의 불탑사 오 층 석탑. 보물의 자태를 눈에 담고 신촌 옛길을 따라 조천으로 향한다. 바다색이 시비코지에서 닭모루에 이르는 동안 더욱 짙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이런 곳을 찾아 나는 또 걷고 걷는다. 바다는 바다일 뿐 그러나 나는 모든 바다를 묶어서 ‘환희’라 부르겠다. 살아온 날은 분명 살아가는 날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조천 만세동산에 이르자 어느새 물무늬가 손바닥에 아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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