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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9. 2015

예술혼을 찾아서

꿈꾸는 제주8 <광치기해변-온평포구-표선해비치해변-남원포구> 

  5월의 제주 유채꽃은 만혼의 신부 같다. 해를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면사포를 쓰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신부 같은 꽃. 며칠 더 가면 꽃 색깔이 바래서 노랑에도 얼룩이 질 것 같고, 바람이라도 마냥 몰아치면 꽃들이 무시로 떨어져 빈 대궁만 쓸쓸하게 흔들리고 있을 것 같다. 그런 만혼의 신부를 보려고 성산 광치기 해변에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노란 유채꽃이 관광객들과 주변 풍경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나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 한 컷 하려는데 입장료가 천 원이란다. 체험하는 것도, 전시관 관람하는 것도 아닌데, 겨우 잠깐 밭에 들어가 사진 한 장 찍는데 천 원이라니…. 황금연휴를 맞아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수와 1인당 천 원 하는 입장료를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니 대박이다. 일 년 밭농사 소출과는 견줄 바가 아니다.  씁쓰레한 웃음을 지우며 기억을 떠올려보니 오래전 가족들과 맨 처음 제주를 방문했을 때 이 부근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2월이었지만.

  내수면 둑방길을 걷는 내내 일출봉의 옆모습이 아름답다. 살짝 비틀어 쓴 중절모 같다. 댄디한 사내들이란 중절모 속에 도도함을 감추고 있다. 분화구 하나를 감추고 있는 일출봉도 그에 못지않게 도도한 멋이 느껴진다. 멀리서도 개미들의 행렬처럼 일출봉을 오르는 무리들이 보였다. 아마도 분화구가 있는 정상은 구름 속에 묻혀 있을 것이었다. 맑은 날씨를 기대했으나 김포공항에서부터 안개 때문에 수속이 한 시간이나 지연되지 않았던가. 흐린 배경으로 보이는 일출봉의 모습이 아쉬웠으나, 풀을 뜯고 있는 말을 카메라에 담을 때도, 내수면의 잔잔한 물결과 들녘의 평화로운 모습을 마음에 들일 때도 일출봉의 모습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아름답다. 오름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는 일은 여행자에게는 ‘쉼’이란 말과 동의어다. 땀을 식히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야가 닿는 데까지 마음이 달려간다. 제주 올레길은 대부분 오름을 끼고 있어 어느 코스를 걷던지 눈 아래 펼쳐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식산봉에 오르니 역시나 풍경이 장관이다. 흐리면 흐린 대로 제주의 풍광은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우도와 성산의 마을과 바다와 일출봉이 한 폭으로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지난 1월에 다녀간 이후 네 달여 만에 다시 찾은 제주는 역시나 여기저기 보물 같은 설렘을 감추어두었다. 들도 바다도 오름도 온통 푸름으로 빛나는 축제 속에서 나는 한 마리 자벌레처럼 또 길을 간다.    

   갈아엎은 무밭이 종종 눈에 띄었다. 지난 겨울에는 떨어진 채 나뒹구는 밀감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더니 이번에는 맨몸으로 뒹구는 무들이 내 시선을 쉽사리 놓지 않았다. 상품 가치가 떨어진 것인지, 시세가 폭락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무꽃은 피고, 무들은 뽑혀 뒹굴고, 밭들은 트랙터 바퀴 자국만 남기고 갈아엎어지고, 그것들이 무력시위를 하는 듯이 아픈 존재로 다가왔다. 길을 걸으며 미물들과 만나는 일이나 아픈 존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절로 사람들의 삶과 대비가 된다. 그저 생이 고마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순간들이 햇살을 머리에 인 듯이 따뜻하게 읽혀진다.    

  길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지리산에 비하면 한결 걷기가 편하지만 코스의 길이가 훨씬 더 길다. 뿐만 아니라 숲길을 제외하고 대부분 시멘트 길이나 포장도로다. 지난 1월에 2박 3일 올레길을 걸은 후 족저근막염이 생겨서 두세 시간 걷고 나니 발뒤꿈치가 아파왔다. 잠깐 쉬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하면 통증이 더 심해졌다. 이러다 제주올레를 마무리하지 못할까 걱정이 앞섰다. 이번 일정을 마치면 남은 코스는 3개, 2박 3일이면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거기다 양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해서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사흘을 더 걸어야 하는데 어쩌나. 완주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니 중도에 포기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쉬엄쉬엄 쉬었다 가자 그러면서도 하지만…, 이 접속사가 문제다. 하지만 비싼 돈 들여왔는데, 하지만 시작을 했는데, 하지만 다시 언제 올지 모르는데, 하지만 시간이 없는데…….    


  2코스의 종착지인 온평포구에 이르러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박집 구하기도 힘들었고 일기예보도 최악이었다. 저녁부터 강풍과 더불어 폭우가 쏟아질 거라고 하니 내일은 계획대로 3코스를 걸을 수 있으려나.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리고 민박집에 누운 나는 체념을 했다. 못 가면 바다나 보면서 민박집에서 빈대떡처럼 눌러 있자. 내일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게 최선이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그저 기다리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포기란 때로 여행자에게 축복을 준다. 어떻게 잘 되겠지, 이런 마음이 평정심을 불러와서 꿀잠을 자기도 하는 것이다.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바람은 심하게 불었으나 비는 멎어 있었다. 계획대로 걸을 수 있다니 다행이었다.  지난밤 기름진 식사로 배를 채워서 아침은 거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몇 발짝 떼었는데 맞은 편 담벼락에 양재둘기체와 비슷한 글씨체로 장문이 씌어 있었다. 저게 뭐지? 시선을 확 끌어서 무슨 내용인지 유심히 읽어보았다.     

  ‘딸 셋에 부자 되고, 아들 셋에 집안 거덜나던 그 시절, 열한 살 차가운 물에 들어 동상 키우다가, 열아홉 시댁 들어 시동생 키웠다가, 바다 나간 신랑 걱정, 내 새끼 때끼 걱정, 큰 바람에 지붕 걱정, 한겨울에 무밭 걱정, 걱정에, 걱정에, 그 걱정이 생활되어 버린 인생, 시간이 흐르고 흘러 시절이 바뀌어 내 아들 장성하여 나를 보러 오지만 썩는 무가 아까워 오늘도 해풍에 하영 말려 네게 보낸다.’     

  처음엔 산전수전 다 겪은 할망의 자서전 이련가 했지만 마지막에 이르자 삶의 페이소스가 짙은 한 편의 시로 읽혔다. 기구한 팔자를 타고 나서 얼마나 삶이 신산스러웠을까. 시간을 흐르고 흘렀어도 자신을 보러 오는 장성한 아들도 탐탁지 않고 밭농사도 시원치 않아 썩는 무를 해풍에 말리고 있는 할망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할망의 삶이 한 편의 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 어머니 삶도 단 몇 줄의 시에 적는다면 아마도 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부족하지는 않았을 터. 홀몸으로 자식들 건사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날이 있었다.      

  물속에서 나오자 젖은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머니는 몽돌 위에 앉아 옷자락을 쥐어짰다. 돌이 참 곱구나. 몽돌을 한 주먹씩 쥐어 두 무릎에 올렸으나 자꾸 흘러내렸다. 나는 물기가 없는 돌을 골라 두 다리에 수북이 쌓아 드리고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푸르고 몽돌 구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포근했다. 졸음에 겨운 듯 채취선들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담배 팔러 댕길 때 감시원들한테 쫓겨 저런 배 밑바닥에 숨기도 했어야. 겨울 초입이었는디 홑저고리만 입고 있었다. 어찌나 추운지 덜덜 떨면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으로 기어서 나오는디 삭신이 장작처럼 굳어서 안 펴지더라.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디 그때는 머시 그리 무섭다고 벌벌 떨었는지 모르것다. 몽돌 몇 개가 어머니 무릎에서 흘러내렸다. 해변은 땀이 많이 나는지 연신 파도를 끌어다 식혔다. 민박집 압력솥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자, 배고프구나.

 -졸시 『채취선』 전문-        

  온평포구에서 3코스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내 설레었다. 그것은 내가 제주올레길 중 가장 나중에 찾고 싶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수년 전 보도 매체를 통해 김영갑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의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코스 순서를 바꾸더라도 가장 좋은 시절에 3코스를 걷고 싶었고 오늘에야 비로소 갤러리를 향해 걷기 시작한 것이다. 온평포구를 벗어나 난산을 거쳐 통오름과 독자봉을 지나 김영갑 갤러리에 이르는 길은 지금까지 걸어온 제주올레길 중 단연 으뜸이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내게는 가장 사색적이고 가장 호젓한 길이었다. 물통처럼 움푹 팬 통오름은 가을이면 보랏빛이 가득하다는데 5월에도 마른 풀과 싱싱하게 돋아난 풀들이 아름답게 대비를 이루며 푹신하게 깔려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독자봉에서는 소나무들과 삼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채 해풍에 넘실거리며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묵은 피로를 말끔히 씻고  지난날의 격정을 모두 내려놓고 싶었다. 바람이 불고 는개가 내리면 어떠리.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내가 몇 번씩 헹구어져 하얀 빨래로 널리는 기분이었다.  

   

  삼달리에 이르러 김영갑 갤러리의 주황빛 현판이 보이자 가슴이 뛰었다. 갤러리의 정원에 들어서서 그곳에 그의 뼛가루가 뿌려졌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루게릭병으로 굳어가는 육신으로 일군 나무들이며 돌담이며 오솔길 등 제주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나는 한동안 정원을 서성거리며 가난과 고독과 병마와 싸운 예술가의 영혼을 찾으려 애썼다.     

  그의 사진 작업은 한마디로 수행이었다. 스스로를 외로움의 극한 속에 세워두고 오로지 시간과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얻은 풍경은 곧 그의 영혼이었다. 파노라마 사진 한 장을 보자. 하늘은 먹구름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다. 그 기세가 강해서 금방이라도 굵은 빗방울을 쏟아내려는 순간이다. 작은 나무들과 덤불들이 지평선을 대신하여 하늘과 땅의 화면을 분할하고 앵글 가까이에서는 습지의 억새와 풀들이 바람에 쓰러지며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내고 있다. 두려움과 격정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구름과 이런 바람과 이런 울음을 만나기 위해 외로움 끝에 삼각대를 펼쳐놓았으리라. 다른 곳을 헤매다 마지막에 이곳에 왔을 수도 있고, 몇 번 왔다가 허탕을 치고 비로소 시시각각 변하는 이 순간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인적 하나 없는 들녘에 자신조차 인식의 틀에서 지워버리고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다.   

  

  그는  이야기한다. 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라고. 외로움 속에 며칠이고 자신을 내버려둔단다. 그래도 모자라면 절벽 끝에 차려 자세로 서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정신이 바짝 들어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단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의 고집을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손도, 다리도, 혀도 서서히 굳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그의 사진 속에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외로움과 삶의 비의와 생명의 신비가 경이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삼달리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우고 다시 바다를 향해 걸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이 심정을 절대 모른다.’고 얘기하던 누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작 일흔인데도 불구하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있는 누님, 그 몸으로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신다. 돈 벌자고 하는 일도 아니요, 자식들 먹이고자 하는 일도 아니다. 자식들은 제발 좀 힘들게 그러지 마시고 집에서 편히 쉬라고 하는데 누님은 그게 아니란다. 손끝을 놀리지 않으면 몸이 점점 굳어지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단다. 그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사람들은 허깨비 같은 몸으로 갤러리를 만드는 김영갑 작가에게 제발 몸을 돌보고 미친 짓 좀 하지 말라고 그랬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의 덕택에 먹먹해진 가슴으로 제주의 바다와 바람을 맛보고 있다. 예술가의 영혼은 들불이다. 수없는 사람들에게로 번져가서 소소한 일상과 잡념들을 일시에 태워버린다.    

  물집이 터지기 직전의 새끼발가락을 끌고 표선 해비치 해변에 이르러 몸을 뉘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내 생의 터진 솔기들을 들춰보고 너무도 멀쩡한 내 의식을 헤집어 보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그리고 다음날 패잔병의 행색으로 남원포구까지 걷고 걸었다. 아무런 흥도 없이 그저 가야 하는 길처럼 고통스럽게 걸었다. 몸이 몸 같지 않으니 어느 시인의 시처럼 모든 것이 다 의자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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