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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Jan 05. 2017

해에게서 중년에게로

해파랑길1<오륙도해맞이공원~미포~대변항>

오륙도 해맞이공원 계단 난간에 기대서서 여명의 바다를 바라본다. 또 새해라니,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일 테고 흰머리와 주름이 더 늘어나는 것일 게다. 해마다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일이지만 마음이 착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근간에는 ‘소실’이라는 낱말이 가슴에 가장 와 닿는다. 거울 앞에 알몸을 두고 보면 나는 나로부터 낯설다. 오래된 기억으로부터 더 멀어진다. 거울 속에 선 가녀린 육신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홀로그램은 아니겠지만 어느 날 문득 그것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근심하게 된다.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살아가면서 바라는 것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은 ‘소실’되어 가는 것들을 더 채우고픈 욕망일 게다.

  조금씩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바다에는 고기잡이배들이 떠 있다. 해맞이 유람선 한 척도 오륙도를 선회하더니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간다. 저 어디쯤 괄약근이 힘을 쓰고 있는 것인지 바다는 한껏 상기되어 있다. 마치 변비를 앓고 있는 것처럼. 수평선 위에 손가락 한 마디 두께의 구름 띠가 좌우로 길게 늘어선다. 허탈해하는 순간, 수평선과 구름 띠 사이에서 민머리가 살짝 보이더니 홍시보다 더 붉은 해를 허공에 낳기 시작한다. 밤새 잉태한 새해를 리필해주는 순간이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날아오른다. 합장을 한다.      

  “새해에는 건강하고, 행복하고, 더 좋은 시 많이 쓰세요.” 아내의 따뜻한 덕담이 귓가를 스친다.  


  결혼 33주년 기념 세리머니를 제대로 했다. 우연찮게 만난 일출은 더러 있었지만 작정하고 간 날 해맞이를 본적은 처음이었다. 영속적인 시간 위에서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는 것도,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루하루가 삶의 전쟁인 사람들에겐 별반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니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새해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념일을 기념한다. 그것은 후회가 많은 어제를 버리고 오늘과 내일은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일 것이다. 가슴 속으로 환하게 뻗어오는 햇살이 나와 바다와 허공을 아우른다. 물아일체. 이런 순간이 좋다. 해맞이 명당을 찾아 유목민처럼 이동해온 타인들에게도 그러할 터.


  해와 파란 바다를 보고 걷는다는 해파랑길 1,2구간 첫머리를 해맞이로 시작했으니 대단한 행운이라고 해야겠다. 아침도 거르고 부랴부랴 서두른 대가치고는 평생 남을만한 선물이었다. 이기대 해안 산책로를 거쳐 광안리와 해운대까지의 오늘 하루 일정이 해맞이 여흥으로 가벼울 것임에 분명했다. 여기저기 숱하게 걸었던 길처럼 설렘이 있고, 내가 내 삶을 돌아볼 여백이 있으리라. 

  부산!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가출해서 방황하던 십대 시절, ‘개금’이라는 곳에서 두세 달 정도 일한 적이 있었다. 판잣집들이 더러 있고, 연탄을 가득 실은 리어카가 땀을 뻘뻘 흘리던 가파른 언덕길. 그곳 언저리에 구두 굽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서 시다 노릇을 했다. 말이 공장이지 허접스런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다. 숙련공 밑에서 목재를 나르고, 깎은 굽을 상자에 넣고, 허드렛일을 하며 매일 소음과 톱밥 속에서 살았다. 점심시간이면 톱밥을 털고 언덕에 앉아 낮은 지붕들을 바라보곤 했다. 지붕너머 망망한 바다를 떠올리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이미 퇴학을 당했고 나는 더 이상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서 마음속에서는 늘 소용돌이가 일었다. 덩치가 큰 동년배 서너 명이 함께 일했지만 나는 겉돌았다. 가끔씩 그들이 내게 싸움을 걸었지만 나는 씨름으로 그들을 톱밥 속에 눕히곤 했다.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소용돌이 때문이라고 믿는다. 쉬는 날엔 바다에 나가 항구를 걷거나 하릴없이 앉아있다 돌아왔다. 원양어선을 타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다시 일으켜 책상머리로 돌아가게 한 것은 부산 앞바다였다. 바다가 나를 달래고 어우르고 등을 떠밀었다. 


  그런 바다를 끼고 걷는다는 것은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워지고 너그러워진다는 것이다. 앙금이 다 가라앉아 맑아진다는 것이다. 

  광안리해변의 백사장이 곱다. 모래사장의 넓은 품도 그렇거니와 극세사 같은 모래알이 참으로 부드럽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곳 광안리와 해운대에 수십 만 인파가 몰리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근접성이 좋고 백사장이 넓을 뿐 아니라 물이 맑아 풍광이 좋은 이곳을 피서객들이 마다할 리 없다. 그 파란 바다 위에 우뚝 선 광안대교와 마린시티의 위세가 당당하다. 이국적이다. 불꽃축제가 열리는 밤이면 얼마나 화려하고 멋질까. 그러나 어쩐지 나의 바다는 아닌 듯하다. 초분이 있던 청산도 슬로길이 갑자기 떠오른 건 무엇 때문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늘에 떠 있는 연들이 다정하다. 바람 부는 날이면 묏등에서 연을 날리곤 했던 어린 시절 또한 다정하게 감겨온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나는 왜 그때가 그리운가. 누군가 내 어깨를 치며

  “정신 차려!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그 시절이 왜 그리워?” 

  따지듯이 나무라겠지만 나는 그냥 그립다. 퇴행이라고 흉을 보아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의 내 자양분 모든 것이 그때 그 시절에서 우러나온 것이니 평생을 두고 마르지 않을 눈물샘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꼬리를 치는 연처럼 흥겨워지는 것이다. 

 

 둘째 날 아침, 잘못 들어선 길을 바로 잡아 달맞이공원 전망대에 이르니 해운대와 동백섬과 광안대교, 그리고 오륙도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아득하다. 수수만년 파도가 깎아 세운 바위들과 낭떠러지들을 옆구리에 끼고 저 길을 걸어왔다는 것. 33년을 동고동락했다는 것, 그리고도 또 살아갈 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달맞이 길에서 숲에 배인 달빛에 적시며 고요히 걷는다. 파도소리가 살갑게 안겨든다. 무거운 발자국을 고이 받아주는 흙길과 가끔씩 정수리에 떨어지는 새소리들. 

  머잖아 수백 개의 파라솔 꽃이 피고, 수십 만 인파가 몰려서 취흥에 젖을 해운대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해에게서 중년에게로 당신이 건너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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