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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Jun 26. 2017

우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강화나들길 <볼음도>

  섬이란, 아무 때나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무작정 가려다 여객터미널에서 낭패를 보고 만다. 인터넷으로 미리 배표 예매를 해야 하고, 미리 숙소 예약을 해둬야 한다. 그만큼 여행지로 각광 받는 곳이다. 젊은 시절 내가 동경했던 섬에 대한 고독한 이미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섬이 그립다. 섬에서는 아직까지 문명에 찌들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이 환경에 순응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런 연유 때문에 주말이면 그 많은 도시 사람들이 섬을 찾아 꾸역꾸역 떠나는 것일 게다. 먹거리를 담은 커다란 박스와 보따리들이 의아스럽지만 말이다.   

  

  어느 섬이나 선착장에 내리는 순간 그리고 나를 싣고 왔던 배가 멀어지는 광경을 보고나서야 내가 섬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익숙한 장소로부터의 단절, 그것은 또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일이며 그 경험 속에서 색다른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힐링이다. 그게 즐거움이든 외로움이든 각박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장소로 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한가로이 바닷가를 거닐거나, 해송 그늘에 몸을 뉘이거나, 평상에 앉아 완두콩을 까는 노인들을 바라보거나 모두 나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황해도 연백군과 5.5킬로미터 떨어진 서해 최북단 섬인 볼음도에 나를 두고 배가 멀어져갔다. 함께 들어온 사람들은 승용차나 픽업 차량을 타고 구멍으로 숨어드는 뻘게처럼 뿔뿔이 자취를 감추고 나와 아내만 남았다. 혹시나 도반들이 있을까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고 왔지만 길꾼들이 많지 않아서 길이나 제대로 열려 있을까 걱정도 됐다. 갈림길에서 ‘강화나들길 13코스’란 이정표 하나가 나를 불러 세우고 왼쪽 해안으로 길을 인도했다. 볼음도를 한 바퀴 휘돌아 오는 길. 오후 2시까지는 도착해야 배를 타고 다시 강화도로 나갈 수 있을 테니 다소 바쁜 걸음일 것이다.      

  바다는 여전히 무수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수평선이건, 갯바위이건, 해풍에 찢긴 꽃이건 말을 건네면 갑자기 살아나는 것이다. 물엄곶 쪽으로 접어드는데 돌무더기 위의 죽은 나무 몇 그루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회생이 불가능한 것인지 모르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자세가 브레이크댄스를 하는 아이들 같았다. 구불구불 허공에 길을 내며 생을 갈구하던 저 손가락들이 스러질 듯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또렷한 것보다 희미해져가는 것 또는 사라져가는 것들에게 애착이 더 간다. 그것이 만들어낸 그림자들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시에 이렇게 쓴 기억이 난다.     


  꽃잎 한 장 없는 허공에 가만히 떠 있고 싶을 때 

  사람들은 그림자로 흔들린다.     

  해안들은 모두 이어져 있지만 작은 경계로 이름들이 다르다. 볼음도만 해도 소곶을 사이에 두고 조개골해수욕장, 영뜰해수욕장으로 해안이 달리 불린다. 두 곳 모두 편의시설은 빈약하지만 성수기를 맞이하면 이곳도 여느 곳 못지않게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아이들이 놀기에 적당하다. 거기다 천연기념물인 갯벌에서 동죽이나 백합을 캐는 일도 심심치 않을 것이다. 해안의 바위들도 기묘한 생김새다. 채석강 같은 시루떡 바위가 있는가 하면 거대한 나무뿌리 화석 같은 바위도 있다. 유구한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며 해변을 걷는 일이 비움과 채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알 수 없으나 이 순간만큼은 내가 그림자로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영뜰해수욕장에 이르러 바다로 드나든 흔적들을 보았다. 단단하게 다져진 길, 썰물일 때 저 먼 바다까지 경운기나 트랙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본다. 점점 수평선은 멀어지고 갯벌은 황폐화되고 있다. 해안에 밀려오는 부유물뿐만 아니라 어족 자원의 씨가 마르고 있으니 우리 후손들의 바다는 어떨지 캄캄해진다.      


  몇 년 전에 소무의도에서 동료들과 배낚시를 한 적이 있다. 드넓은 바다를 누비며 용하다는 선장이 데려다준 포인트에 주낙을 던졌으나 한나절 동안 겨우 손바닥보다 작은 고기 서너 마리를 잡고서는 실망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고기가 없다고 했다. 사정이야 소무의도 뿐만 아니라 연안은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섬사람들이다. 점점 희미해지는 수평선 앞에서 시름에 겨워 술잔을 기울인들 어디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영뜰해수욕장의 광대한 갯벌을 뒤로하고 해송 그늘에 온몸을 적시며 서도 은행나무를 향해 걸었다. 요옥산 산길이 너무 깊었다. 길은 있으되 사람의 흔적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겁이 났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유실 지뢰나 폭발물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읽고 온 터였다. 그렇다고 가던 길을 바꿀 수도 없는 산길이니 앞으로 전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나는 나의 민낯을 본다. 대범한 척, 낙천적인 척, 달관한 척 살고 있지만 생사 앞에서는 두려움에 질린 몸뚱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누구든 그러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우 숲을 빠져나와 천연기념물인 800년 된 은행나무 아래 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벤치에 걸터앉아 저수지와 은행나무와 아담한 마을을 번갈아보며 도시락을 먹었다. 맛이 달았다. 땀을 흘리고 먹는 밥이란 맛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걸 존재의 양식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너무 현학적일까.     

  봉화산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큰길을 따라 곧장 마을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뜸했다. 이 시간이면 점심을 마치고 사람들이 그늘 속에 묻혀 있거나 오래된 여인숙 간판처럼 낮잠에 빠질 시간이었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공중에서 고기를 말리고 고요한 일상을 지휘하는 것이다. 

  섬이란, 나의 시선과 나의 목소리와 나의 생각들을 한없이 느린 곳으로 걸어가게 하는 마법을 가졌다. 우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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