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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3. 2015

가슴이 환한 풍경 속으로

지리산 연가4  <덕산-위태-하동호-삼화실>

  막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 

  개구리들이 울었습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울음소리가 잦아들더니 그것도 잠깐, 목청 큰 놈이 울어대자 일제히 합창을 합니다. 울음소리 꽃이 피었습니다. 귀를 파고들지 않는 울음도 있습니다. 손에 닿을 듯 내려온 반달과 별빛들 속에서 울음이 빛납니다. 가슴을 환하게 적시는 밤 풍경이란 시간을 멈추게 합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낮에 보았던 사물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실루엣만 남아 나를 묵상으로 이끕니다.     

  혈전이 덕지덕지 뭉친 

  6월의 황금연휴 고속도로를 달려와 산청의 원지에 나를 풀어놓았습니다. 고삐가 사라졌습니다. 채찍도 보이지 않습니다. 입맛에 대한 선입견은 있으나 추어탕 한 그릇에 이국의 맛을 느낍니다. 아, 이 맛은 젊은 날 홀로 여행하다 진주에서 만났던 생소함이 아니던가. 새벽부터 설친 부지런함에 대한 보상이 달갑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끊어진 길을 다시 잇는다는 설렘이 시외버스를 덜컹거리게 합니다. 산천재에서 내려 남명을 다시 생각합니다. 역사와 문화와 인간의 끝없는 상생에 대하여.  

  

  휘돌아나가는 덕천강을 따라 

  한 부부가 앞에서 걷고 있고, 내 뒤에서 또 한 부부가 걸어오고 있습니다. 길벗들입니다. 저들도 고삐가 없는 셈입니다. 등을 떠민 이가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이 길에 볕이 따갑기는 하나 풍요로운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지리산 골을 따라 흘러내린 물과 마을을 만나는 길. 남원, 함양, 산청을 거쳐 하동으로 이어집니다. 하동이라니 머잖아 구례일 것입니다. 중태안내소에 이르러 공정여행 실천을 위한 서명을 했습니다. 이곳의 공정여행이란 농작물에 손끝 하나 대지 않는 일입니다. 고사리와 죽순과 매실 때문에 아내와 즐거운 말싸움을 몇 라운드 했습니다.    

  길가에 접시꽃이 만개한 

  유점마을의 빨랫줄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한평생 가장이라는 멍에를 지고 가는 이가 있습니다. 희생으로 점철된 아내도 있습니다. 그리고 철 모르는 어린 자식들과 어쩌면 거동이 불편한 노모가 있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 살던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생의 근원이자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수구초심이랄까. 때로는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아픈 마음을 적셔줍니다. 밥상 앞에 둘러앉은 식구들을 떠올리며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돌아가고픈 곳이고 돌아가야 할 곳입니다. 해체되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한없이 슬퍼집니다. 나의 가족은 지금 안녕한지 행복한지.     


  갈치재에 이르러 숨을 고르며

  등짐을 짊어지고 산청, 함양으로 넘어 다니던 장사치들을 생각했습니다. 협곡을 대신한 왕래. 신산한 시절이었겠습니다. 심산유곡에서 청량음료 같은 왕대 숲을 만났습니다. 쭉쭉 뻗은 기상이 선비를 닮았습니다. 일생에 한번 꽃을 피우고 죽는다는 대나무, 그 푸른 칸칸의 열차를 타고 가면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죽순들이 탑신처럼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아내가 욕심을 부립니다. 몸이 불편한 누님이 해마다 보내주신 죽순을 맛있게 먹어본 탓입니다. 간이 알맞게 밴 생선매운탕 속 죽순의 식감을 상기시켜줍니다. 맛을 아는 자만이 맛을 탐내는 것이랍니다. 거를 건 다 거르고 요지만 남은 문장 같은 대숲. 대쪽 같은 기개란 말이 달리 생겨났겠습니까.      

  우동발 같은 밤꽃들이 지천입니다.

  저들은 눈을 뜨고 떨어집니다. 할 일 다 했다는 듯. 저런 사랑법을 어디서 배웠을까요. 애잔한 풍경입니다. 매실 나무들의 세력도 보통이 아닙니다. 하동호에 이르러 주먹밥을 꺼내 먹습니다. 골을 따라 가면 청학동이 있다는데 거기는 아직 먼 곳입니다. 느린 호흡이 필요하나 나는 아직 숨이 가쁜 편입니다. 행복한 걷기 혹은 예술로서의 걷기에 이르기는 한참이나 멀었습니다. 사물과 자연현상을 바라보는 일에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칩니다. 놓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호기심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나 내가 여전히 잊고 사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할 일 다 했노라고    

 우동발 같은 밤꽃들이 

 두 눈 부릅뜨고 

 떨어진다    

 백야를 걸어

 간곡함에 이른 사람처럼    

 온몸을 투신하는 

 저런 사랑법을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다    

  -졸시「밤꽃」전문-    


  생각해보니 

  나의 길 걷기 이력이 꽤 있습니다. 아랫집 아저씨를 따라 오일장 구경 가던 아홉 살의 삼십 리 길, 여자애들 좇아 부흥회에 가던 열다섯 살 시오리 길, 구례에서 하동까지 무전여행으로 걸었던 저녁 무렵의 신작로, 그리고 폭우와 천둥 속에서 걸었던 스무 살 치기 어린 오십 리 밤길. 길의 매혹을 알지 못했으나 나는 이미 길에 취했나 봅니다.      

  평촌마을과 화월마을 벚꽃 터널을 지나 

  횡천강 징검다리를 건너서 살가운 풍경을 만납니다.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송사리들과 물빛들이 지친 심신을 맑게 닦아줍니다. 우연한 장소들이 보여주는 즐거움은 큽니다. 유심히 바라보면 모든 것들이 새롭고 매력적입니다. 그걸 알아차리는 능력이 곧 풍요로움입니다. 천수답에 논물이 들어가는 걸 농부의 마음으로 한동안 바라봅니다. 흙들이 검습니다. 저런 흙빛이 모든 부모의 가슴속에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잉태하고 기르면서 나타나는 빛깔. 노모도 지금 저런 빛깔일 텐데, 천수답 같습니다.     

  묵묵히 인생길을 걷다 보면

  돌부리에 넘어지고 크고 작은 웅덩이에 빠지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세월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습니다. 나의 발걸음도 멈추지 않습니다. 벌써 몇 고개를 넘어왔으나 여전히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운무가 피어오르는 계곡과 몇 겹의 그늘, 생명과 평화가 공존하는 이곳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나 행복한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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