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태현 May 06. 2018

민들레 홀씨 되어

소백산 자락길2 : 학교길~승지길~방천길

  5월 연휴 중 날씨 좋은 하루를 택해서 희방사역까지 내달렸다. 연두가 기세 좋게 타오르는 오월의 산들은 품새가 넓어지고 시야가 한층 높아진다. 바람이 불어오나 연두가 묻어오는 바람은 그 빛깔이 먼저 온 마음을 채운다. 이런 날에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다. 봄이다 싶으면 금세 여름이 와 있다. 그런 까닭에 봄이 가기 전에 모든 주말을 길 위에서 보내고 싶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워진다. 그 사정이란 게 무엇인가. 컨디션이 안 좋고, 날씨가 안 좋고, 집안 일이 있고, 예식장에 가야하고……. 그것들이 내 삶의 행복을 좌우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토를 달고 나오는 그 사정들 앞에서 걷기 여행이 자주 뒤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봄은 붙잡을 새도 없이 지나가고 내년 봄이 또 약속처럼 오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날씨 체크를 하고서야 부랴부랴 집을 나선 것이다.    

  희방사역에서 삼가리 야영장까지 택시를 탔다. 대중교통이 빈번하지 않고 연계되는 노선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지불해야 할 대가였다. 삼가리에 내려 2자락 들머리에 서니 아차, 배낭에 든 게 사과 하나, 물 한 병이다. 지난번에도 계획 없이 왔다가 허기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간식거리를 더 챙기고자 삼가리 구판장에 들어갔다. 주인이 없어 되돌아 나오다 마침 밭일 갔다 오는 안주인을 만나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진열장에서 초코바와 양갱을 챙겨드는데 선반 위의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아기들 사진이었다. 손주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방이 좁아서 그곳에 놓아둔 것이란다. 

  “손주들, 예쁘시죠?” 

  안주인은 그저 웃기만 했다.

  “자식들은 할미가 손주들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모르지요?”

  역시나 웃기만 했다.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동의로 받아들였다. 그렇다. 손주들은 정말 예쁘다. 나의 피를 물려받은 혈육이라서 그렇다. 어딘가 나를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고 나서도 우월한 유전자 하나쯤 간직하여 대대로 물려줄 이가 바로 손주들이다.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의 할미들이 내 손주가 아니어도 어린 아이들을 예뻐하는 것으로 보자면 인간의 본성 말고는 대체할 만한 이유가 없다. 샛노란 민들레와 민들레 홀씨가 함께 피어있는 걸 보고 있으면 할미와 손주처럼 정겹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그러 하건데 어찌 손주들이 예쁘지 않겠는가.     

  삼가리 야영장에서 시작된 길은 도로를 따라가다가 금계호수에 이르러서야 데크 때문에 걷기가 수월해졌다. 전망 좋은 곳에 서니 지나온 길 쪽으로 소백산 비로봉이 떡 버티고 있었다. 이곳은 연두의 불결이 거센데 소백산은 아직 연두의 기운이 미치지 못하고 갈색 옷을 입고 있었다. 유월이나 되어야 철쭉이 만개할 것이고 고산목도 푸른 잎을 달게 될 것이다.   


  오래 전에 아내와 둘이서 소백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희방사에서 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희방사 계곡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험했던지 연화봉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말았다. 산행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던 때라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그러나 능선에 피어 있던 아름다운 철쭉 군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라산의 철쭉과 더불어 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풍경이다. 앞으로 소백산 자락길을 걸으면서 비로봉에 오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시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산이 깊지 않은데 계류가 시원스럽게 흘러가고 노송이 어우러져 제법 운치가 있는 곳에 금선정이 있었다. 풍광 좋은 곳에 정자 하나 올리고 풍류를 일삼았던 옛 선비들을 생각하면 그들보다 먹고 살기에 바빴던 백성들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사는 시절도 다를 바 없다. 호화스런 별장이 그렇고, 고급 룸살롱이 그렇고, 그들만의 파티가 그렇다. 빵 한 조각 때문에 죄인이 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상인데 말이다. 풍기군수 송징계가 금선정 아래 절벽에 새겨 놓았다는 ‘금선대’라는 글자를 보고 있자니 나에게는 그것이 왜 보잘 것 없는 낙서로 보여지는 것인가.    

  십승지가 있단다. 전국에서 3재 즉, 전란, 질병, 기근을 피하기 좋은 10곳인데 그 중 금계촌이 으뜸이란다. 돌과 바람이 없어야 하고 죽령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에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수려한 산세는 없지만 넓은 들을 가진 배산임수의 지형 때문에 살기 좋은 고장은 분명한 모양이었다. 삼가리에 올 때 택시 기사님이 금계바위를 가리키며 거기에 얽힌 전설이며 십승지 이야기를 대략 해주었다. 금계호수를 지나면서는 이렇게 큰 저수지가 여섯 개나 된다고 자랑 삼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는 곳마다 물이 풍부했다. 물이 많으니 농사짓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었다. 또한 조선 중종 때 주세붕이 인삼 재배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이 지역으로 지목해서 채취한 산삼 종자로 인삼을 처음 재배한 시파지도 바로 이곳이란다. 풍기 인삼의 약효가 뛰어난 것도 우연히 아닐 것이다.     

  첫 자락길인 소수서원에서부터 삼가 야영장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희방사역까지 가는 곳마다 사과밭이었다. 앞으로도 지천에 사과밭일 것이다. 그 사이 사과 꽃이 지고 벌써 조그만 열매들이 맺혀 있었다. 저것들이 자라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광경을 떠올리면 금세 마음이 풍성해진다. 죽령 사과, 풍기 사과, 영주 사과 할 것 없이 맛이 일품이다. 높은 해발고도와 토질 때문이리라. 지난 번 풍기에 다녀갈 때 사과 한 궤짝을 사들고 갔었다. 매일 아침 후식 삼아서 사과를 한 알씩 먹는데 그동안 먹었던 다른 지역의 사과들보다 맛이 뛰어났다. 우선 껍질이 두껍지 않아서 좋고 아삭거리는 식감도 좋다. 거기다 맛이 달다. 아마도 나는 소백산에서 나는 사과를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것 같다.     

  공사 중인 길을 가다 예정된 길에서 벗어나 한동안 도로를 따라 걸었다. 시원한 맞바람을 맞으며 노래를 부르며 가는 길, 길을 놓쳤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끝없이 이어진 길 어디를 가든 만나는 것들이 있고,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 내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벗어났던 길을 다시 만났을 때의 작은 즐거움 같은 것, 길을 걸으며 그런 것들이 좋다. 풍기온천 지구를 벗어나 좌우로 늘어선 사과 밭을 사열하며 희방사역까지 민들레 홀씨가 되어 그렇게 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백산엔 사과나무가 많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