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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Apr 16. 2018

소백산엔 사과나무가 많다

소백산 자락길1 : 선비길~구곡길~달밭길

  소백산엔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었다 

  푸른 사과 한 알, 들어 올리는 일도 

  절 한 채 세우는 일이다 

  막 들어 올린 산, 금세 품이 헐렁하다     

  나무는 한 알 사과마다 

  편종 하나 달려는 것인데 

  종마다 귀 밝은 소리 하나 달려는 것인데   

       - 김승해 「소백산엔 사과나무가 많다」 중에서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 시가 당선됐다. 나는 한창 문청이던 시절이었으니 시 한편에 담긴 지명도 허투루 보지 않았고,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크던 때였다. 영주 부석사에 처음 다녀온 것은 아마 이 시를 읽은 후였을 것이다.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절 한 채 들어 있고, 사과 한 알마다 편종 하나 달려 있는 그곳을 찾아 소백산 기슭을 어슬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때마침 사과는 붉게 익어가고 눈길이 가는 곳마다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서 풍경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과를 볼 때마다 귀 밝은 소리보다는 입안에 새콤하게 고이는 과즙의 유혹이 더 컸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어느 농장에 들려 사과 한 박스를 사서 중고 프라이드의 작은 트렁크에 싣고 왔었다. 그래선지 소백산은 내게 늘 능금 빛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다시 장거리 트레킹을 시작하며 소백산 자락길을 먼저 선택한 것도 어찌 보면 마음에 남아 있는 그 능금 빛이 나를 이끈 까닭일 것이다.    

 

열두 자락으로 이어진 소백산 자락길의 첫길은 소수서원에서 삼가주차장까지 12.6㎞.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 무난한 거리인데 그 거리를 다시 선비길, 구곡길, 달밭길로 구분해 놓았다. 안내서에는 선비들이 한양에서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번쯤 지나쳤을 법한 이곳이 아직도 까마득한 숲길이고 보드라운 흙길로 보존되어 있단다. 연두의 향연이 펼쳐지는 봄날인데 그런 길이 있다니, 일요일 이른 아침에 충동적으로 고속도로를 내달릴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수서원의 우람한 소나무 숲길과 분분이 휘날리는 벚꽃이 한 폭의 풍경으로 어우러져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름다움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아무리 멋진 풍광도 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궤짝 속에 버려진 허접한 그림에 불과하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빛들, 그 빛에 의해 오묘하게 빛나는 사물들을 바라보면 닫혀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열리며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밥 먹고, 일하고, 잠자는 일상 속에서 “아, 좋다.”와 같은 감탄사가 언제 저절로 튀어나오겠는가.      

  들머리에 접어들어 몇 걸음 옮기자마자 무연히 사과 밭이 나타났다. 나는 개화가 막 시작된 사과 꽃에 앵글을 들이댔다.

  “어머, 나는 사과 꽃 처음 보네.”

  아내가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아내의 입에서 흘러나온 ‘처음’이라는 말이 아주 생경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처음 본 것이 있다는 사실, 앞으로도 그런 게 아직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처음’을 위해서 아내는 며칠 전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나는 ‘처음’을 위해서 동백이 지는 매물도 둘레길을 홀로 걷고 왔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처음’의 순간들.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처음’이었던 모든 ‘처음’들이 어제를 만들었고 또 내일을 만드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처음’처럼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처음’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밥상 같은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선비걸음으로 꽃이 피고 새순이 돋는 나무들과 함께 걷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지난 번 아내 없이 걸었던 매물도에서의 외로움 같은 것이 없으니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순흥 향교를 지나면서부터 삼괴정까지 걷는 길은 농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자두 꽃이 만발해 있고 사과 꽃들은 금세 벙글어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잘 손질되어 있는 사과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거기서 얻는 사과 한 알의 귀함이 안쓰럽게 다가왔다. 어디 사과뿐이겠는가. 어떤 농작물도 땀으로 기르지 않은 것이 없으니 내 돈을 주고 사먹어도 늘 감사해야 할 일이다.     

  배점분교 자락길 탐방 지원센터에 이르니 대절버스 한 대가 한 무리의 길꾼들을 내려놓는다. 자락길을 걷든 비로봉에 오르던 한 동안 동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리지어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활력을 얻기도 하지만 쉼터에서 주고받는 술잔 때문에 대부분 실망을 한다. 그러나 그건 나의 생각이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즐거운 일일 것이다. 함께 어울려 걷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함께 땀을 흘린다는 것. 나는 그런 산행을 해본지 오래 됐다. 벗들이 멀리 있는 까닭이기도 하겠거니와 내가 원하지 않는 탓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고자 무리할 일도 없고, 침묵이 불편해서 먼저 화제를 꺼낼 필요도 없어서 좋다. 굳이 뭘 얻자고 하는 것은 아니나 호젓한 산행은 나를 나에게 돌려주어서 좋다.     

  배점리에서 초암사에 이르는 계곡을 죽계구곡이라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계곡의 노래 소리 같은 물소리에 심취하여 각 계곡마다 걸맞는 이름을 지어주며 죽계구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구곡길이란 그래서 죽계구곡에서 따온 말일 것이다. 구곡길 주도로는 도로 포장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지만 계곡 탐방길이 열려 있어 다행이었다. 엊그제 비가 온 때문에 계곡의 수량이 풍부하여 물소리에도 생기가 넘쳤다. 길고 긴 아홉 계곡을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맑고 시원한 물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한 방울이 없어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잡아둘 수 없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흘러가버리는 소중한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 순간을 붙잡으려고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나가는 큰딸이 어떨 땐 무모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론 ‘여기 그리고 지금의 삶’을 살고자 하는 딸의 신념을 응원하고 싶을 때가 많다.     

  초암사에서 달밭재까지의 구간이 소백산 첫 자락길의 백미였다. 풍덩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맑은 계곡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숲길은 발자국을 보드랍게 감쌌다. 걷는 내내 마음이 평온했다. 길도 가파르지 않아서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와 비슷한 감흥이 일었다. 이런 순간을 맞이하자고 산중에 들고 숲길을 걷는 것이다. 깊은 산중에 덩그러니 집 한 채 짓고 사는 이들의 마음을 어찌 알까만 그래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자연 속에 묻혀 자연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나도 가끔은 그런 생활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어떤 필요성도 그리고 실행에 옮길만한 용기가 없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 그들에 대해 경외감이 들 때가 있다. 캄캄하고 아득한 밤을 홀로 보낸다는 것,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고독감을 홀로 이겨낸다는 것. 그들을 그곳에서 홀로 살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정말 궁금하기도 한 것이다. 소백산 산중 빈 집에 핀 목련을 보고 있자니 ‘삶이란 대체 무얼까’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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