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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Apr 04. 2018

휘파람새 울고 동백이 지니

매물도

   나를 홀리는 말 중의 하나가 ‘예술’이란 말이다. 예술엔 자성이 있고 나는 그 자성에 이끌려 크고 작은 선택을 하곤 한다. 물론 후회한 적도 있지만 그 후회가 오래가는 것도 아니고 예술이니까 그러겠지 하면 쉽게 잊히곤 한다. 예술이란 미명 아래 얼마큼의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것은 예술에 대한 동경심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일 테고, 예술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통영 매물도 트레킹을 계획하고 민박집을 검색하다 단번에 결정한 곳이 ‘섬 예술가의 집’이란 곳이었다. 추가 정보를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섬에서 예술을 하다니. ‘섬’이란 말과 ‘예술’이란 말이 어우러져 마법처럼 나를 환상의 섬으로 데리고 갔다. 통영에 몇 번 다녀왔지만 베스트셀러 같은 매물도를 늘 비켜가기만 했기에 감회가 달랐다. 거기다 오랜만에 도반이 없는 혼자만의 여행이었으니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할 수 밖에.      


  숙제를 해치우듯이 소매물도 등대섬을 다녀와 매물도 대항마을 민박집을 찾았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나를 허술한 방으로 안내하더니 창문을 와락 젖혔다. 사각의 틀 안에서 바다가 튀어나왔다. 여객선에서 줄곧 바라보고 온 바다지만 프레임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바다는 또 다른 청량감이 있었다. 나는 창턱에 팔을 얹고 앉아서 한동안 바다를 응시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바다. 점으로 박혀 있거나 길게 띠를 이룬 섬들이 누군가 들려주는 나지막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네가 마음을 줄 곳이 없다면 나에게 주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그 예술과 예술가를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조그만 방에는 허투루 개켜놓은 이불만 있을 뿐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신발을 고쳐 신고 나가려다 내가 찾던 예술과 예술가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 예술은 다름 아닌 풍란과 다육식물과 분재 몇 그루였고 예술가는 민박집 할아버지였다. 왜 예술가의 집이냐고 묻자 힘이 들어간 눈짓으로 아기자기한 화분들이 가득한 작은 화단을 가리켰다. 잠깐 실망감이 일었지만 소소하게 살고 있는 일상을 예술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할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하기로 했다. 누구라도 할아버지의 자긍심을 예술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물 무렵 어슬렁거리며 민박집 주변을 맴돌았다.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 초상을 그린 벽화며 수줍게 핀 수선화 몇 송이, 낚싯바늘을 이용해서 매단 풍경과 비뚤어진 가로등, 그리고 함부로 물려있는 빨래집게나 밭으로 내려가는 허접한 사다리와 고양이와의 눈 맞춤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좋았다. 인적이 없는 호젓한 길에서 만나는 것들은 제지할 틈도 없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내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 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시적인 발화가 되고, 기억으로 각인되는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나는 저물 무렵을 좋아한다. 안과 밖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모든 사물들의 모서리를 지우는 시간. 누가 소유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모든 사물들이 원형으로 되돌아간다.    

   ‘꼬돌개 사람들 이야기’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매물도의 초기 정착민들이 살았던 곳인데 오랜 흉년으로 모두 고꾸라졌다고 해서 ‘꼬돌개’가 되었단다. 힘들게 삶을 일구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장군봉에서 흘러내린 비탈이 가팔랐다. 천수답의 흔적들도 보이고 허물어진 집터들도 보였다. 민박집 노부부도 물과 농토가 부족한 이곳에 정착해서 살았을 것이다. 생명력으로 치자면 예술에 버금가는 것이다.  

  

  아침을 먹고 매물도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항마을에서 장군봉을 거쳐 당금마을 선착장까지 이어진 길. 대략 서너 시간 정도라니 안성맞춤이었다. 부지런한 이들은 벌써 장군봉을 다녀오는지 바짓가랑이가 젖어 있었다. 길은 호젓하고 바다는 여전히 아늑하여 내 숨소리가 내 귓전에 들려왔다. 그것은 소매물도와 매물도를 걷는 내내 눈에 밟히던 동백의 침묵에 닿아 있었다. 뚝뚝 떨어진 붉은 동백꽃들이 줄창 나를 따라오며 말을 건네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가 나와 동행하고 있었지만 그 슬픔을 내 가슴에 담을 수가 없었다. 감성이 그만큼 말라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등대섬 전망대에 오르니 소매물도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등대섬에 가려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정작 그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했는데 매물도에서 소매물도의 진수를 맛본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몇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더욱 더 애틋하고 사랑스런 것처럼 풍경 또한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버릇처럼 뒤돌아본다. 뒤에도 내가 보지 못한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장군봉에 오르는 동안 몇 번이고 소매물도를 뒤돌아보았다.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과 해식애들이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냈다.  

  

  휘파람새가 울었다. 새는 보이지 않고 새소리만 들렸다. 새소리가 바다 빛깔처럼 투명했다. 새는 울음만 들려주고 투명한 상태로 어느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 것이었다. 휘파람새가 울 때마다 공기가 그 가락을 옮겨 적느라 파르르 떨렸다. 섬에서 듣는 휘파람새소리가 유난히 선명한 것은 지는 동백 때문이리라. 나는 겨우내 뻑뻑해진 나의 창을 열고 바다와 동백과 휘파람새를 들였다. 그곳은 또 다른 제주의 오름이었고, 홍콩 드래곤스 백 트레일의 섹오피크 가는 길이었다. 휘파람새 울고 동백이 지니 나는 비로소 봄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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