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요.
재즈가 잔잔하게 흐르는 와인바에서 그와 마주 앉아 있다.
100일 만난 기념으로 목걸이도 선물 받아 설렘이 샘솟는 중이다.
어떤 주제이든 막힘없이 대화가 되던 그였기에 서로의 눈을 한시라도 놓칠세라 입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로의 눈이 아련해졌을 무렵 취기가 약간 오른 홍조 띤 얼굴로 물었다.
"나 어디가 제일 예뻐요?"
나를 사랑스럽게(그렇게 느꼈기에 위와 같은 질문을 했으리라) 보고 있던 그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쌍꺼풀요, 쌍꺼풀이 제일 예뻐요"
술이 확 깨었다.
보통은 눈이 예뻐요, 눈망울이 사슴 같아요. 뭐 이런 식상한 말을 하는데 그는 콕 집어 쌍꺼풀이라고 한다.
젠장, 수술이 자연스럽게 잘되긴 했나 보다.
태생이 단추 구멍만 한 눈이었는데 도수 높은 안경 탓에 바늘구멍만 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나였다. 다들 대학교를 가면 화장도 하고 한껏 꾸미고 다닌다고 하는데 난 그럴 시간이 없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동기, 선후배들과 술도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은 다른 이의 내면을 봐주는 결이 고은 사람들이라 생각했기에 더 온 맘을 다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인복이 많았던 듯싶다.
방학 한두 달 동안 공장 사무실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는 등록금을 내기에 충분했고 학기 중 과외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에 더없이 좋았다. 등록금 마련한다고 일하는 대학생이 기특하다며 방학 때마다 불러주시고 서로 소개해주시는 사장님들,
공장 휴가에 맞춰 방학 MT일정을 짜서 나를 꼭 데리고 여행 가주던 동기들. 그들로 인해 대학 때의 나는 알토란 같은 시간을 보내느라 외모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5살이 되었을 때 화장도 제대로 안 하고 늘 안경을 끼고 있는 나를 도저히 못 봐주겠는지, 실행력이 강한 엄마가 나를 성형외과로 데리고 갔다.
큰돈 나가는 일 없고, 그동안 모아둔 돈도 있겠다 싶으셨던 엄마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호박에 줄 그어 수박 만들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살면서 수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터라 무서워서 하기 싫다고 내빼는 나를 질질 끌고 상담실에 앉힌 엄마는 열정적으로 상담한다. 무슨 일을 하든 한번 맘먹은 것은 해내고야 마는 울 엄니.
내가 너무 하기 싫어하니 의사 선생님께서 절개하지 않고 실로 콕 집는 매몰법도 있으니 해보자고 권유하셨다.
'선생님 보시기에도 제 눈이 그리 안쓰러우셨나요?'
내 눈두덩이에는 지방이 적어 굳이 절개법을 하지 않고, 매몰법을 해도 쌍꺼풀이 자리 잡을 거라고 했다.
실을 집는 시술이라 해서 별거 없을 줄 알았는데... 부분 마취하고 누워있으니 눈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실이 보였다. 아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아프진 않았지만 두려운 맘에 어찌나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던지 시술 끝나고 나오는데 손등에 손톱자국이 깊게 파였었다.
퉁퉁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으로 집에 오면서 내가 왜 했을까 후회를 했다.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프랑켄슈타인 저리 가라였다.
눈의 부기를 뺀다고 엄마가 생소고기를 올리려고 하는 걸 기겁을 하고 누워서 냉찜질을 했다.
가만히 누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남들도~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정말 남들 모르게 하고 싶었고, 왜 했을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부기가 빠지면서 정말 깜쪽같이 날 때부터 있었던 쌍꺼풀처럼 눈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이들도 긴가민가 할 정도였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시술의 결과임을 알지 못했기에, 남들도 모르게~ 태생 인양 묻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단숨에 쌍꺼풀이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그에게 어쩔 수 없이 쌍밍아웃( 쌍꺼풀 커밍아웃)을 했다. 오히려 당황해하는 그의 앞에서 얼굴이 붉어져 터질 것 같았지만 혹여 나중에 태어난 아이가 쌍꺼풀이 없으면 의아해할까 봐, 쌍꺼풀은 강한 우성 유전자이거든.
그와 결혼할 것 같은 느낌적 후광에 내 진실은 그렇게 하얗게 드러났다. 그날 그 와인바에서.
후일담 : 괜히 말했어. 나도 몰랐던 그의 속 쌍꺼풀로, 태어난 아들에게도 쌍꺼풀이 있다는 사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