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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Dec 08. 2022

어디가 제일 예뻐요?

쌍꺼풀요.

재즈가 잔잔하게 흐르는 와인바에서 그와 마주 앉아 있다.

100일 만난 기념으로 목걸이도 선물 받아 설렘이 샘솟 중이다.

어떤 주제이든  막힘없이 대화가 되던 그였기에 서로의 눈을 한시라도 놓칠세라 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로의 눈이 아련해졌을 무렵 취기가 약간 오른 홍조 띤 얼굴로 물었다.

"나 어디가 제일 예뻐요?"

나를 사랑스럽게(그렇게 느꼈기에 위와 같은 질문을 했으리라) 보고 있던 그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쌍꺼풀요, 쌍꺼풀이 제일 예뻐요"


술이 확 깨었다.


보통은 눈이 예뻐요, 눈망울이 사슴 같아요. 뭐 이런 식상한 말을 하는데 그는 콕 집어 쌍꺼풀이라고 한다.

젠장, 수술이 자연스럽게 잘되긴 했나 보다.




태생이  단추 구멍만 한 눈이었는데 도수 높은 안경 탓에  바늘구멍만 해 눈으로 세상 바라보고 있던 나였다. 다들 대학교를 가면 화장도 하고 한껏 꾸미고 다닌다고 하는데 난 그럴 시간이 없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동기, 선후배들과 술도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은 다른 이의 내면을 봐주는 결이 고은 사람들이라 생각했기에 더 온 맘을 다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인복이 았던 듯싶다.

방학 한두 달 동안  공장 사무실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는  등록금을 내기에 충분했고  학기 중 과외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에 더없이 좋았다. 등록금 마련한다고 일하는  대학생이 기특하다며 방학 때마다 불러주시고 서로 소개해주시는 사장님들,

공장 휴가에 맞춰  방학 MT일정을 짜서 나를 꼭 데리고 여행 가주던 동기들. 그들로 인해 대학 때의 나는 알토란 같은 시간을 보느라  외모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5살이 되었을 때 화장도 제대로 안 하고 늘 안경을 끼고 있는 나를 도저히 못 봐주겠는지, 실행력이 강한 엄마가 나를 성형외과로 데리고 갔다.

큰돈 나가는 일 없고, 그동안 모아둔 돈도 있겠다 싶으셨던 엄마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호박에 줄 그어 수박 만들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살면서 수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터라 무서워서 하기 싫다고 내빼는 나를 질질 끌고 상담실에 앉힌 엄마는  열정적으로 상담한다. 무슨 일을 하든 한번 맘먹은 것은 해내고야 마는 울 엄니.

내가 너무 하기 싫어하니 의사 선생님께서 절개하지 않고 실로 콕 집는 매몰법도 있으니 해보자고 권유하셨다.

'선생님 보시기에도 제 눈이 그리 안쓰러우셨나요?'


내 눈덩이에는 지방이 적어  굳이 절개법을 하지 않고, 매몰법을 해도 쌍꺼풀이 자리 잡을 거라고 했다.

실을 집는 시술이라 해서 별거 없을 줄 알았는데... 부분 마취하고 누워있으니 눈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실이 보였다. 아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아프진 않았지만 두려운 맘에 어찌나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던지 시술 끝나고 나오는데 손등에 손톱자국이 깊게 파였었다.


퉁퉁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으로 집에 오면서 내가 왜 했을까 후회를 했다.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프랑켄슈타인 저리 가라였다.

눈의 부기를 뺀다고 엄마가 생소고기를 올리려고 하는 걸 기겁을 하고 누워서 냉찜질을 했다.


가만히 누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남들도~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정말 남들 모르게 하고 싶었고, 왜 했을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부기가 빠지면서 정말 깜쪽같이 날 때부터 있었던 쌍꺼풀처럼 눈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이들도 긴가민가 할 정도였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시술의 결과임을 알지 못했기에, 남들도 모르게~ 태생 인양 묻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단숨에 쌍꺼풀이 제일 예쁘다고 하는 그에게 어쩔 수 없이 쌍밍아웃( 쌍꺼풀 커밍아웃)을 했다. 오히려 당황해하는 그의 앞에서 얼굴이 붉어져 터질 것 같았지만 혹여 나중에 태어난 아이가 쌍꺼풀이 없으면 의아해할까 봐, 쌍꺼풀은 강한 우성 유전자이거든.



그와 결혼할 것 같은 느낌적 후광에  내 진실은 그렇게  하얗게 드러다. 그날 그 와인바에서.



후일담 : 괜히 말했어. 나도 몰랐던 그의 속 쌍꺼풀로,  태어난 아들에게도 쌍꺼풀이 있다는 사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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