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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빈터
당신의 가면
나만 몰랐던
by
지초지현
Dec 19. 2022
실장님께서 상담실로 부르신다.
"안샘~내가 진짜 고민하다가 얘기하는 건데.. 다른 사람들이 웃으면서 얘기하는 거 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요"
내가 너무 순진하게도 사람들을 잘 믿어서 동생 같아 걱정되는 마음에서 해주는 얘기라고 한다.
선생님들 중 한 명이 오랜 시간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온 동네방네 다 말하고 다녀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같은 과목을 맡고 있어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던 선생님이었다.
자기주장이 강했지만 호탕하게 잘 웃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웨딩촬영 때 와서 도와줄 수 있냐는 그녀의 부탁에 흔쾌히 가서 사진도 찍어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었다.
웨딩촬영 후 그 선생님 남편 되실 분이 나에 대한 호의를 표하자 이상한 논리로 나를 깍아내리더라는 말을 다른 과 선생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그걸 왜 굳이 다른 선생님에게 얘기했는지..)
다 시간이 지나 들은 이야기라 그 당시에는 따져 물을 수도 없었고, 주위에서 걱정할 정도로 내가 그리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러구보니 고등학교 때도 늘 농담조로 말하는 친구에게 얘기할 때 꼭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려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던 것 보면 난 사람의 의중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면이 있나 보다.
웃는 모습 뒤에 다른 모습이 감춰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 뒤로는 개인적인 고민이나 치부 같은 것은 말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친한 오래된 지인들과 술을 마시게 되면 휘발되는 알콜성분과 함께 흘러나오는 건 막을 수가 없었지만.
사회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한 거리감이 생길 즈음 새로운 사고 전환
이
필요했다. 언제까지나 겉돌며 지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무대의 배우들이 진한 화장을 하고 그 인물의 가면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듯 사회생활 속 관계에서도 뮤지컬 무대를 대입해본다.
우선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모두 뮤지컬 배우이다
라고 생각하면 좀 근사해
지
지 않는가.
서로의 인생 무대를 왔다 갔다 하는,
누군가의 무대에서는 기꺼이 조연이나 단역, 혹은 무대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의 무대에서는 내가 주인공
이
다
. 내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독보적인 주연으로 내 이야기를 잘 만들어가면 되는 거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주연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며.
이제는 한발 물러나 그들의 얇은 가면 같은 모습을 인정한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여러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굳이 남을 해하지 않는다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지금 나는 브런치 작가라는 가면으로 글을 쓰고 있다.
올해 획득한 가장 멋진 아이템이다.
앞으로는
브
런치 가면처럼, 쓰면
오
히려 근사한, 그런 가면을 여러 개
만들
며 살아가고 싶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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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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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피는 영지버섯이라는 뜻의 지초 지를 쓰는 지현입니다. 여러해살이풀인 지초처럼 늘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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