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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Dec 26. 2022

우리들의 축제

괴임돌 이야기

얼핏 잘못 보면 고인돌 같겠지만 정확히 또박또박 읽으면 괴임돌이다.


[괴이다]

기울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안정되도록 아래에 받쳐지다. ‘괴다’의 피동사.

(예스러운 표현으로) 특별히 귀여움과 사랑을 받다.


동사를 명사화시켜 우리 인생의 사랑스러운 괴임돌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에 지은 동아리 이름이었다.

(이름답게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 괴였다)

좋게 말하면 교외 동아리였고, 예외스럽게 말하면 선생님들이 모르는 불량 서클이었다.


내가 이 동아리를 만들 때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전한 취지는 각 학교에서 개최하는 토론회만으로는 토론의 갈증을 해소하기 어려우니 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갖자는 거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 나의 욕구 충족이 있었음을 이제야 고백해 본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도서부 내에서  도서 부장과 총무를 우리 기수에서 뽑았다. 곧 다음 기수가 될 1학년 신입생들을 선발해야 했고, 고3이 된 선배들은 공부에 전념해야 했으므로.

우리 기수에서 가장 영민한 친구가 부장이 되었고, 나는 도서부의 예산을 운영하는 총무가 되었다.


1학년 때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 배운 대로  2학년이 되고 나서는 주체적으로 토론회를 다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각 학교 도서 부장들은 거의 대부분 우등생에, 요즘 말로 치자면 엄친아들이었다.

그런 그들만의 공인된 교외 동아리가 있었다.

매번 거길 다녀오는 부장인 친구가 어찌나 부럽던지.

총무가 절대 참석할 수 없는  동아리라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득 그래, 안되면 내가 만들면 되지!



발동이 걸린 나는 토론회를 다니면서  교외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쉽게 교류할 수 있는 근처 4개의 학교 도서부원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각 학교에서 2명씩 해서 총 9명(우리 학교는 주체자였던 나 빼고 2명을 더했다)

그렇게 만든 동아리가 괴임돌이 되었다.


9명이 모여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회비를 모아 예산을 짰다.

대략의 예산은 거의 먹는 것에 쓰이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무엇이든 규칙을 세워야 했다. 그래야 그럴듯해 보였거든.

토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청소년 회관이나 공공기관을 기웃거리며 작은 공간을 무료 대여했고, 날씨가 좋은 봄가을에는 충렬사에 가서 바닥에 둘러앉아 론했었다.

소원대로 질리도록 론하였고, 짬짬이 여행도 다녔다.

경주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살면서 봐야 할 무덤(왕릉)은 다 고 오기도 했다. 자전거를 잘 타는 친구 2명이 각각 선두와 말미를 지켜 9개의 자전거가 쪼로미 경주시내를 누볐다.

담임선생님이 감독하지 않는  날의 야간 자율학습시간에는 몰래 빠져나와  소극장 연극을 보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만의 괴임돌을, 이 좋은 걸 우리만 누릴 수 없다 하며  각 학교의 도서부에서 은밀하게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기수에서 2명씩 차출하여 괴임돌 2기가 모였고 그 후 7기까지 이어오게 되었다.




이 모임이 오픈된 형태가 아니라 은밀하게 위대하게 아니 조심스러운 우리만의 모임이었던 지라 차출되지 못했던 다른 후배가 알게 되면서 일이 커져버렸다.

(상처 입은 그 후배님을 알지는 못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늘 있습니다)

시작이 나여서 그랬던 건지, 끝맺음도 우리 학교에서 사이 나면서 표면상으로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 후 1기~7기까지 남았고 각 기수에서의 열정적인 몇몇 후배님들에 의해 모임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만난 우리가 드디어 괴임돌의 3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고 후배 연락을 해왔다.

시조새인 나는 꼭 참석해야 한다고.

그들은 오래된 화석중 하나로  빗대어 나를 그리 부르는 거겠지만 난 시조새가 파충류에서 조류의 진화 단계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화석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나 역시 스스로 진화하는 사람이었다고 의미 부여해 본다.



괴임돌은 내 인생의 많은 열점중 하나이다.

그 열점에서 솟아오르는 마그마로 나의 여러 섬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뿜어내는 열기로 마음이 뜻하다.

2023년 6월에 있을 행사가 기대된다.


고정된 위치에서 뜨거운 마그마를 분출하는 곳을 열점(hot spot)이라 한다. 대표적인 예로 하와이 열점에 의한 하와이 열도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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