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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Jan 04. 2023

널 추앙해

삶을 대하는 자세

나만의 룰같은 것이었다.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이 시작되면 반드시 첫 번째 공연을 보고 난 뒤  맨 마지막날 하는 소위 막공을 챙겨본다.  첫 공과 막공을  챙겨보는 것은 그 공연을 위해 몇 달을 노력한 배우들에 대한 나만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이었다.


첫 공 때는 배우들의 설렘과 아직 합이 조금은 어색한 연기가 앳되어 보인다.

그러나 관객을 앞에 두고 여러 상황들과 익숙한 극 전개로 회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연기는 무르익어간다.

그리하여 막공 때는 달고 맛난 사과처럼 농익은  연기를 보여준다.



보통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면 다들 별 거부감 없이 간다.

그러나 연극을 보러 가자고 하면 2배 이상의 관람비가 부담스러운 건지, 내용이 어렵다고 생각하는지 다들 마뜩하지 않게 대답을 한다.

매번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로맨스 코미디 연극이나 소극장 뮤지컬을 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면 혼자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바로 눈앞에서 배우의 섬세한 표정변화, 숨소리, 체취까지 느낄 수 있어 연극이야말로 진짜 재밌는데 하며 얼중얼.




부산에는  가마골이라는 유서 깊은 소극장이 남포동에 있었다.(지금은 조은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물론 부산 곳곳에 작은 소극장이 많이 있었지만 다양하게 연극이 매번 올려지는 곳이 가마골 소극장이었다.

20대 후반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늘 혼자 연극을 보러 오는데 첫 공과 막공을 챙겨보니 가마골 기획실 직원들 눈에 띈 모양이다. 아니면 늘 혼자 와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그래서 말을 건네고 챙겨주시더니 심지어 같이 밥을 먹고 술도 마시게 되었다.

사무실 직원도 아닌데 가마골 대표님, 이사님과 다 아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 당시 아이디가 <숲 속의 빈터>라 늘 대표님이 빈터야~~라고 부르셨다.

직원 중에 나와 동갑이었던 분이 계셨다. 그분이 나를 더 살갑게 챙겨주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가마골을 밥 먹듯 드나들던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 대학교 입학 후 연락이 오면 그들을 데리고 연극을 보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이 보러 가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갔을 테지만 그들 중 연극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분명 있었으니 나처럼 행복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 당시 성균관대 연기과 학생들이 부산 가마골에 하는 인기 레퍼토리 [서툰 사람들]이나 [쌍생], [천국과 지옥]의 배우들로 참여했다.

그때 눈앞에서 본 배우중 다 알만한 분 작년에 히트 친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기정역을 한 이엘 배우다.

이병헌과 결혼한 이민정도 학생시절 [서툰 사람들]을 연기하러 부산에 왔었.


오래전 눈앞에서 봤던 배우들이 주연, 조연이나 단역으로 티브이에 보이면 왜 그리 반갑던지.

다들 각자 자리에서 그렇게 잘 살아오고 있구나 싶었다.



<나무위키 발췌>




한참 카페활동도 열심히 하고 연극도 자주 보러 다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무대에 보이지 않는 배우들 생기고, 좋아했던 배우들이 독립해서 나가기도 했다.  나를 챙겨주던 기획실 직원이 그만두었을 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줄어들었고 그 후 나는 서울 공연으로 눈을 돌렸다.



렇게 관객의 입장에서 순수했던 열정은 이후 미투운동이 한창일 무렵 썩어 문드러진 그곳 연극계의 민낯을 마주했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이  그렇게 한참 지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30대가 되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져 비싼 뮤지컬 공연도 첫 공과 막공을 챙겨 볼 수 있 되면서 서울 공연까지 보러 다니는 열정으로 서울에 자리 잡은 친구들을 그때 많이 만났다.

시간만 나면 서울로 나들이 갔던 그 자유로움!

교회에서 십일조 하듯이 크리스천이 아닌 내가 버는 돈의 일부분을 드비전을 통해 사회에 기부할 수 있다는 것도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매력이었다.

렇게 나의 30대 무르익 지금의 40대가 되었다.


남들보다 한 늦게 육아의 세계 들어와 몸이 따라와 주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늘 여유롭게 아이 성장을 바로 옆에서 켜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충만한 나의 지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힘듦을 버티게 하고 바로 서있을 수 있게 하는 시간들을 추앙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와의 시간을 깊게 추앙하며 2023년을 맞이해 본다.



photo by GG(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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