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오야~은지야~보고 싶다.

by 지초지현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

아! 하고 섬광이 튀는 순간, 아주 사소한 그 순간,

그 섬광이 환한 불빛으로 우리의 앞길을 비춰준다.



나는 가끔 4차원 같다는 소리를 는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차에 이름을 부르며 다니니 옆에 있던 선생님이 이럴 때 보면 4차원 같아요~라고 하셨다.


사실 남들처럼 지낼 수 없었던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에 맞는 방식대로 살아오기도 했고, 남들이 퇴근해서 쉬는 시간에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선택했기에 나만의 홀로 아리랑이 필요했다.

차 안에서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라떼 마시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주차해 두고 멍 때리기,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차 안에서 의자를 한껏 뒤로 젖혀고 누워서 잠시 졸기.

우울할 땐 신나는 노래 따라 부르며 드라이브하기.

이렇게 차 안에서 먹고 자고 즐기고 했던 나는 차가 제일 친한 친구 같았다.

그래서 늘 차에 이름을 붙였다.



중고차가 아닌 온전히 나만의 새 차를 처음 구입했을 때, 번호판이 나오기도 전의 스포티지가 집 앞에 세워져 있는데 어찌나 반짝이던지!

보자마자 나의 은빛 나는 스포티지라고 해서 은지라는 이름을 붙주었다.

매일 출근길에 "은지야~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나 데이트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그가 내미는 선물 중에 이건 지 거예요~하며 음악 CD를 따로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라떼는 말이야~ 차마다 cd플레이어가 있었다)

이때 번쩍 섬광이 튀었다. 이 남자다!

은지 선물까지 챙겨준 거면 게임오버.

그렇게 그와 함께 걸어가는 길 위로 환한 빛이 비쳤다.




주위 친구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운전면허증은 성인이 되었다는 첫 번째 통과의례를 타내는 증명서 같았다.

대학 때 그 통과의례를 할 수 없었던 나는 정말 필요 시점이 되어서야 운전학원을 갈 수 있었다.


대학졸업 후 가게 된 장으로써의 학원은 집에서 먼 거리에 있었다. 고등부 수업을 하고 있었던 지라 늘 마치는 시간이 밤 12시를 넘겼다.(그 당시에는 학원 영업시간에 제한이 없었.)

늘 밤늦게 택시 타고 퇴근하는 것이 안쓰럽고 불안했던지 하루는 원장님께서 부르셨다.

원래 출근시간이 2시이지만 수업시 시간은 5시이니, 수업에 지장이 없는 5시 이전까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출근 전에 운전을 배워 오라고 하셨다.


원장님의 배려로 곧바로 운전학원을 등록한 후 필기와 실기를 바로 패스하였다.

한 번에 다 붙었다고 축하를 여기저기서 하는데,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축하까지 받느냐 싶었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어린 동생 같았나 보다. 나는 그 당시 교무실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내가 지금도 주차하나는 끝내주게 한다. 다 선생님들의 연수 덕분이었다. 수업 마치면 우르르 몰려 해운대, 송정바닷가로 자신들의 차로 운전해 가게 하고, 늦은 밤 텅 빈 주차장에서 끊임없이 주차연습을 시켜주셨다.



도로연수까지 일사천리로 끝내고 나니 이번에는 실장님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중고차 매매 시장을 섭렵하여 언제,어디에 박아도 표 나지 않는 폐차 직전의 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알아봐 주셨다. 차의 번호가 25로 시작하여 첫 차의 이름은 이오였다.(목성의 수많은 위성 중에 이오가 있다 : 고로 나의 위성이라는 의미도 곁들여)

이오는 출퇴근뿐만 아니라 한 번씩 번외로 선생님들의 밤마실에 동행하며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가 운명했다.(오래된 중고차라 유지비가 더 들었던, 나에겐 도도했던 그녀)




이오는 처음 운전하는 묘미를 알려준 나의 첫사랑이었고,

은지는 배우자를 점지해 준 반려차(반려동물을 태우는 차 말고! 내 곁에 있어준 차라는 의미)였다.

지금은 내 곁에 쏘하가 있지만 여전히 예전의 그들이 그립다. 시간들도 함께.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만 아는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