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초지현 Feb 02. 2023

이오야~은지야~보고 싶다.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

아! 하고 섬광이 튀는 순간, 아주 사소한 그 순간,

그 섬광이 환한 불빛으로 우리의 앞길을 비춰준다.



나는 가끔 4차원 같다는 소리를 는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차에 이름을 부르며 다니니 옆에 있던 선생님이 이럴 때 보면 4차원 같아요~라고 하셨다.


사실 남들처럼 지낼 수 없었던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에 맞는 방식대로 살아오기도 했고, 남들이 퇴근해서 쉬는 시간에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선택했기에 나만의 홀로 아리랑이 필요했다.

차 안에서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마시기,

바다가 보이는 곳 주차해 두고 멍 때리기,

시간 여유가 있으면 차 안에서 의자를 한껏 뒤로 젖혀 누워서 잠시 졸기.

우울할 땐 신나는 노래 따라 부르며 드라이브하기.

이렇게 차 안에서 먹고 자고 즐기고 했던 나는 차가 제일 친한 친구 같았다.

그래서 늘 차에 이름을 붙였다.



중고차가 아닌 온전히 나만의 새 차를 처음 구입했을 때, 번호판이 나오기 전의 스포티지가 집 앞에 세워져 있는데 어찌나 반짝이던지!

보자마자 나의 은빛 나는 스포티지라고 해서 은지라는 이름을 붙주었다.

매일 출근길에 "은지야~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나 데이트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그가 미는 선물 중에 이건  거예요~하며 음악 CD를 따로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라떼는 말이야~ 차마다 cd플레이어가 있었다)

이때 번쩍 섬광이 튀었다. 이 남자다!

은지 선물까지 챙겨준 거면 게임오버.

그렇게 그와 함께 걸어가는 길 위 환한 빛이 비쳤다.




주위 친구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운전면허증은 성인이 되었다는 첫 번째 통과의례를 타내는 증명서 같았다.

대학 때 그 통과의례를 할 수 없었던 나는 정말 필요 시점이 되어서야 운전학원을 갈 수 있었다.


대학졸업 후 가게 된 장으로써의 학원은 집에서 먼 거리에 있었다. 고등부 수업을 하고 있었던 지라 늘 마치는 시간이 밤 12시를 넘다.(그 당시에는 학원 영업시간에 제한이 없었.)

늘 밤늦게 택시 타고 퇴근하는 것이 안쓰럽고 불안했던지 하루는 원장님께서 부르셨다.

원래 출근시간이 2시이지만 수업시 시간은 5시이니, 수업에 지장이 없는 5시 이전까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출근 전에 운전을 배 오라고 하셨다.


원장님의 배려로 곧바로 운전학원을 등록한 후 필기와 실기를 바로 패스하였다.

한 번에 다 붙었다고 축하를 여기저기서 하는데,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축하까지 받느냐 싶었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어린 동생 같았나 보다. 나는 그 당시 교무실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내가 지금도 주차하나는 끝내주게 한다.  다 선생님들의 연수 덕분이었다. 수업 마치면 우르르 몰려 해운대, 송정바닷가로 자신의 차로 운전해 가게 하고, 늦은 밤 텅 빈 주차장에서 끊임없이 주차연습을 시켜주셨다.



도로연수까지 일사천리로 끝내고 나니 이번에는 실장님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중고차 매매 시장을 섭렵하여 언제,어디에  박아도 표 나지 않는 폐차 직전의 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알아봐 주셨다.   차의 번호가 25로 시작하여 첫 차의 이름은 이오였다.(목성의 수많은 위성 중에 이오가 있다 : 고로 나의 위성이라는 의미도 곁들여)

이오는 출퇴근뿐만 아니라 한 번씩 번외로 선생님들의 밤마실에 동행하며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가 운명했다.(오래된 중고차라 유지비가 더 들었던, 나에겐 도도했던 그녀)




이오는 처음 운전하는 묘미를  알려준 나의 첫사랑이었고,

은지는 배우자를 점지해 준 반려차(반려동물을 태우는 차 말고! 내 곁에 있어준 차라는 의미)였다.

지금은 내 곁에 쏘하가 있지만 여전히 예전의 그들이 그립다.  시간들도 함께.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 아는 구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