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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구멍

by 지초지현

흐흐..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며칠 전부터 아슬아슬하던 엄지발가락 부분이었다.

또각또각 열심히 걷고 있는데 불쑥 엄지발가락이 양말을 뚫고 나오는 느낌, 그 느낌이 맞았다.


겨울이라 유발레깅스(스타킹처럼 발부터해서 입을 수 있는 레깅스를 일컫는 말)에 기모 들어있는 이트한 롱스커트를 챙겨 입었다. 좋아하는 블랙코트 걸치고 커피 사러 가던 길 부쩍 기온이 떨어져 거의 필수품이 된 롱부츠를 신고 있었다.

나름 커리어우먼이야~하며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단골 카페로 가는 길에 고개 들어 파란 하늘을 보며 아~이 차가운 상쾌함~이러고 있던 찰나였다.


바깥온도와 같아진 부츠에 구멍 뚫고 나온 발가락이 계속 닿기 시작하며 온 신경이 그리로 향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아무도 모르는 구멍 난 양말로 순간 쪼글 해지는 마음에 발걸음마저 조신해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여 또각또각이 아닌 조심조심 걸어 되돌아왔다.

얼른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여분의 양말을 덧신었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구멍 난 것은 벗어버리면 되는데 차가운 공기 속에 맨살을 드러내놓을 자신은 없었다.




구멍 난 양말럼 아무도 모르게 혼자 신경 쓰게 되는, 차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혹은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남들은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 구운 오징어처럼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 구멍 난 양말은 결핍었다.

양말은 늘 꿰매 신었고 원비가 없어 발을 동동 거려야 했다.


대학 때는 다음 학기 등록금과 용돈을 벌어 써야 했고 남는 과외비는 엄마에게 드려 그물처럼 뚫려있던 돈 빠져나가는 구멍을 메우는 데 조금 일조를 했다.

엄마가 가끔 하시는 말씀이 내가 대학 간 이후 조금씩 숨통이 틔였다고 한다.



대학 때 친구들이 운전학원을 다니고, 토익학원을 다니고 방학 때 유럽배낭여행을 가고, 때맞춰 어학연수 가는 것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 하며 바라보는 시간조차 사치일 만큼 내 앞길 가기 바빴다.

학기 초에 대학 동기들이 나보고 너 그리 악착같이 돈 벌어서 뭐 하냐?라고 묻기도 했으니 참 열심히 살았네 싶.

나중에는 사정을 알고 나의 스케줄에 맞춰 함께 놀아 준 고마운 동기, 선후배들이 있었다.


얼마 전에 안부전화를 한 선배가 그랬다.

"대학 때 너를 보면 회색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다채로워지고 밝아진 것 같다~ "




나름 조금씩 메워지던 금전적 구멍과 내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던 온기가 나를 생동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좀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던 그즈음, 삶은 나를 또 그냥 놔두지 않았다.

끝난 줄 알았지? 아니거든~ 하듯이.




지난 2년 동안 듣지 말아야 했을 말들과 보지 말아야 했을 눈빛이 대못으로 내 가슴에 쾅쾅 박혀 버렸다.

양말구멍 같은 마음 구멍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피눈물로 마음이 붉게 변해서 나의 다채로움에 검붉은 색하나 추가요.

이제 겨우 지혈을 하고서는 차마 그 못을 뽑아내지 못하고(너무 큰 구멍으로 내 온기가 다 빠져나갈까 봐) 그저 다른 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어쩜 못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냥 솜방망이였을지도 모르잖아.

아님 원래 있던 구멍이 좀 커진 것일지도 몰라.

그래도 분명한 건 상처였다.


큰 바위가 흐르는 물과 바람에 의해 풍화되어 잘게 부스러져 바닷가 백사장 모래알로 반짝이듯이,

내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세월에 풍화되어 모래알처럼 작아지기를 끊임없이 바라본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photo by GG(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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