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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Feb 23. 2023

니트가 좋다

옷 욕심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비싼 옷을 마구잡이로 사지는 못하는 작은 쇼핑손을 가졌다.

그래서 나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고르고, 어쩌다 꽂히는 스타일이 있으면 여러 벌 사놓는다.

그렇게 어느 해 겨울에는 만 원대의 니트 스커트를 색깔별로 쟁여놓기도 하고, 어느 해 여름에는 치마바지를 종류대로 사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초대사량이 적어지 탓에  점점 살이 찌면서 옷에  몸이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은 작아져서 들어가지 않는 치마바지를 다이어트 자극제로 두고 옷장문을 열 때마다 다짐한다.

'살 빼서 입자~!'

그렇게 다짐한 지 벌써 5년이 넘어간다. 괜찮다.  입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겨울에 입는 보드라운 니트류를 좋아한다.

니트는 추운 바깥온도를 막아주며 내 체온을 감싸 아 따뜻함을  유지시켜 준다.

올해 장만한 니트는 몸에 붙지도, 그렇다고 벌키 하지도 않는 적당한 품으로 굴곡 사라진 나의 상반신을 보완해 준다.


여러 가지 옷을 사도 손이 가는 몇 벌만 주야장천 입다 보니 헤지는 속도가 빠르고 보풀이 생겨 금방 못 입게 되어 아쉬워하게 된다.

이번 니트가 그랬다. 나름 거금을 주고 산 니트였는데  보풀제조기처럼 겨드랑이가 닿는 곳,  안전벨트가 지나가는 곳   어김없이 보풀이 포스스 커져갔다.

전체적으로 보풀화가 되어버린 니트를 보며 버릴까 하다가  큰맘 먹고 보풀제거기를 샀다. 옷을 버릴 요량으로

열심히 힘을 주어 제초 아니 제풀(보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요즘 기술이 좋아져서 인지 보풀제거기의 업그레이드 성능으로 니트는 다시 태어났다.

오~감사합니다. 올 겨울은 너끈히, 내년에도 함께 할 수 있겠다 싶다.




어릴 때는 옷처럼 사람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내 몸에 맞는 옷처럼 내 마음과 맞는 사람들 위주로 만나 보 관계에서도 보풀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손으로 떼려면 잘 떼어지지 않는, 잘못 잡아당기면 더 심해지는 보풀 같은 감정들.

좋아하는 사람과의 가까운 거리에서 생긴 보풀은 그나마 사랑스러운 솜털 같도 해서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다.

보풀제거기로 가볍게 제거해서 다시 입고 싶은 니트에 생긴 감정처럼 말이다.



그러나 유독 같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이 있다.

얼핏 보면 매우 단정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만 아는 삐죽 보푸라기가 있다. 지저분해서 나중에는 손이 가지 않는 보풀 생긴 옷처럼 자주 마찰이 생기는 관계에서는 삐죽 미운 보푸라기가 너무 커서  늘 기분이 가라앉게 되었다.

보풀제거기처럼 사람사이의 불편한 감정보풀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없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간의 거리를 두어 더 이상 마찰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게 다다.

보풀을 제거하기 위해 어설프게 손대었다가 풀리는 실끝처럼 관계가 흩어질까, 혹은 큰 구멍이 나서 찬바람이 쌩쌩 지나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니트 같은 사람이 좋다. 보풀이 생겨도.

나도 어쩜 보풀 잘 생기는 얇은 니트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군가에게는 따뜻하고, 누군가에게는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는 그런 니트.

재질 좋지 않아 조금만 입어도 보풀 생기는 옷은 사지 않듯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 내 속에서 피어나는 보풀도 줄여나가 봐야겠다.


오늘도 니트원피스를 입는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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