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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지초지현
Feb 28. 2023
슬픔을 유기하다.
풍선처럼 부풀려지는 슬픔이 터져버릴까 봐 살짝 묶어두었더니 풍선 입구에서 피식 슬며시 빠지는 공기처럼 삐져나온다. 불쑥 눈가를 적시는 눈물로, 끄윽 목흐느낌으로 전해져서 감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급히 휴가를 내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났다.
간단한 옷가지와 읽을 책 몇 권만 챙겼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낯선 환경은 온몸 세포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 긴장감이 이 쓸모없는 슬픔을 이겨주길 바랐다.
나를 홀로 두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는 중요하지 않았다.
발길 닿는 곳에 도착하여 짐을 풀어보니 그래도 아예 낯선 곳은 아니었구나. 여전히 난 누군가의 시선 하나쯤은 있어야 안심이 되는구나 싶었다.
예전 여행에서 만난 분이 계시는, 그분이 새로 터를 잡은 곳에 숙소를 정했다. 지난 여행에서 헤어질 때 꽃을 압착하여 만든 엽서를 주셔서 늘 들꽃을 보면 생각나는 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 하시며 들꽃 가득 피어있는 정원 한 켠의 탁자를 선뜻 내어주셨다.
오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은 탁자에 가져온 책을 올려두고 그 앞의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얼굴 가득 쏟아지는 햇살로 눈가에 삐져나온 눈물을 말렸다.
들꽃이 바람에 날려 보내는 풀내음을 맡으며 차오르는 흐느낌을 꾹 눌렀다.
한참 오후의 정원 속에 있다가 감았던 눈을 떠 책을 읽으려고 하니 갑자기 강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오히려 시야가 어두워졌다.
책은 나중에 읽자 싶어 덮어 두고는 주위를 둘러보니 그 작은 꽃들에게도 부지런히 벌들이 날아들고 온갖 곤충들이 작은 생태계를 누비고 있었다.
내 팔을 기어 다니는, 그런데 느끼지 못한 이름 모를 작은 벌레와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까만 개미를 보니 그곳에서 나는 바위 같은 큰 무생물이 되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 작은 생물들은 나의 작은 몸짓에도 나가떨어지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시간을 정지시킬 수도 있겠다 싶어 가만히 조심스럽게 그 생물들을 떼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라오는 슬픔으로 어떤 종류의 음식도 잘 넘어가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날은 배가 고파졌다.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숙소주인에게 근처 마트를 여쭤보니 시골이라 나가려면 한참이라고 한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셔서 밥을 좀 해서 먹으려고 한다 하니 쌀과 몇 가지 반찬을 챙겨주셨다.
장은 내일 날이 밝으면 나갔다오라고 하시며 삶은 감자까지 챙겨주신다.
그러고 보니 주위는 어스름하게 갖가지 색들이 사라질 준비를 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서 먹고 소화시킬 겸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사이 어두워진 정원은 한참을 응시해야만 명암이 뚜렷해졌다.
어두워진 내 마음도 그리 가만히 봐주어야 했나 보다.
시골이라 그런지 빛공해가 없어서 주위는 완전히 먹물처럼 까맸다. 까맣게 펼쳐진 풍경과 맞닿아 있는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아~!
그렇게 하얗고 촘촘하게 쏟아질듯한 별들이 내 머리 위에 가득 차있었다니. 바로 위에 있는 듯, 곧 내 주위를 에워싸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동안 꾹꾹 눌러 새어 나오지 못하게 했던 슬픔이 물기 가득 품은 채 속수무책으로 흘러나왔다.
얼굴이며 옷이며 발아래며 떨어지는 물기를 그냥 두고 하염없이 하늘 위 별을 쳐다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 반짝 더 반짝 빛날 수 있는 거구나. 밤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았구나. 너도 언제나 그곳에 있었구나.
다음날 아침, 목에 가득 차 있던 것이 반짝 터져 수많은 별들과 함께 지평선아래로 내려간 듯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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