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이끄는 대로
여자는 뭐죠?
완성된 남자
남과 여 = 사랑이 이끄는 대로
"뭐가 제일 좋아요? 음악 빼고."
그 날 만나 연인이 된 여자는 첫눈에 반한 세계적인 작곡가 앙투안에게 묻는다. 이 둘은 막 사랑을 나누었고 여전히 침대 안에서 벗은 몸으로 묻고 대답한다.
나요 나 자신. 난 나 자신을 제일 사랑해요.
사랑은 나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는 유일한 순간이에요.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이유죠.
-영화 <사랑이 이끄는 대로> 앙투안의 대사
남자 주인공 앙투안은 결혼보다 더 좋다는 ‘연애'를 하는 중이다. 매력적인 외모에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동시에 작곡가, 예술가이다. 그는 영화 <줄리엣 앤 로미오> OST를 만들기 위해 인도로 떠나고 초청받은 대사관에서 옆자리의 한 여성을 마난다. 그녀는 안나다. 프랑스 대사의 아내. '둘은 분명 사랑에 빠질 거야'라고 난 생각했지만 프랑스 영화답게 쉴 새 없이 시공간이 파괴된 채 극을 끌고 나간다.
늦은 밤 조용한 남자 주인공 앙투안의 호텔에 노트 소리가 들린다
똑똑 똑똑
(저럴 줄 알았어. 안나네. 한밤에 앙투안의 호텔 방에 찾아왔네.)
이런 생각을 하며 보고 있노라니 그건 앙투안의 꿈이었다.
앙투안과 안나는 함께 살아있는 성녀 ‘아마’를 만나러 간 순례 길에 오른다. 아마를 만난 밤 결국 둘은 사랑을 나누며 하룻밤을 보낸다. 이때 앙투안의 애인이 호텔로 갑작스레 찾아오는데 손에는 총이 들려있다. (큰일 났네. 쏘려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는 방아쇠를 당긴다. 큰 총소리에 깜짝 놀라 인상을 지푸리는 그 찰나 아뿔싸 또 꿈인 허구의 장면이었다. 이번에는 안나의 꿈이었다.
이 영화 자꾸 이럴래!
몇 번 속고 나니 슬슬 속은 기분에 약간의 분노가 밀려왔다.
프랑스 영화는 느린 영화다. 한 사람의 감정을 지루할 정도로 길게 충분히 끌고 갔다. 그 지루함은 처음 본 프랑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급하지도 박진감 넘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잘 짜인 딱 떨어지는 완성품이 아닌 듯 느리게 느리게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간격과 여백의 장치들이 마련된 기분이었다.
볼수록 신묘한 매력의 소유자 안나가 앙투안에게 묻는다.
여자는 뭐죠?
앙투안이 대답한다.
완성된 남자
앙투안의 대답처럼 여자는 정말 완성된 남자일까? 여자로서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흔히 여자가 더욱 성숙했다고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단지 존재의 외로움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그나마 완성의 정도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존재의 외로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 만이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내가 외로운 것은 사실 상대방 때문이 아니다. 원래 존재는 외로운 것이다. 하지만 자꾸 자신 존재 자체 외로움의 원인을 상대에서 찾으려 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말의 시작은 문제 발생의 복선과도 같다.
힌트들
자기 변했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처음이랑 다르잖아.
더 나아가 자신의 외로움의 원인을 아예 애꿎은 상대방 때문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이제 관계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존재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사람은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어떤 모습이 되라고 강요하지도,
내가 만든 실망감에 안에 그를 가두지도 않는다.
그저 상대를 그 자체로 온전히 감사하고 사랑한다.
존재의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자유롭기에.
외로움의 원인을 상대로부터 찾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상대가 변했다고 예전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자기 평생 변하지 마,
나 오빠 믿어 알지?
이 말에는 숨겨진 의미가 한 가지 더 있다.
'난 너를 믿어' = ‘날 절대 배신하지 마’ = 즉 나는 네가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것은 이미 내가 온전히 믿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오늘 밤이 가고 내일 해가 뜰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저 오늘 밤이 가고 내일 해가 뜰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여름이 가고 곧 겨울이 올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다.
정말 믿는다면 사랑한다면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랑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그러니 주어지는 장면들을 즐기는 게 나아요
-<사랑이 이끄는 대로>, 안나의 대사
이 영화 <사랑이 이끄는 대로>의 원제목은 <Un + Une> 즉 <남과 여>이다. 감독인 끌로드 를르슈가 1966년에 연출했던 <남과 여>와 제목이 같다. 그는 이번 영화가 속편은 아니지만 50년 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진한 말을 남겼다.
남과 여는 무엇일까?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이 이끄는 대로>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프리허그의 원조로 알려진 사랑의 신 아마의 존재이다. 그녀는 단순 영화 속 인물이 아니다. 30여 년간 3천3백만 명의 사람들을 직접 안아주며 사랑을 전하는 인도의 성녀로 배우가 아닌 그녀가 직접 이 영화에 출연했다. 사랑의 신 아마가 쉬지 않고 하루 15시간 이상 사람들을 안아주는 장면은 단연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괜히 눈물이 나고 괜히 뭔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사전 정보가 없었음에도 그녀는 예사로운 사람이 아닌 듯 보였다. 편안한 미소 존재 자체의 에너지. 하지만 사랑으로 사람들을 안아주는 그 장면은 평온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슬펐다.
그녀의 삶은 어떤 것일까? 인도에서 마더 테레사 이상으로 추앙받는 성인으로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들도 그녀의 품에서 위로와 사랑을 받지만 사랑의 신 아마에게 사랑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한없이 안아주는 평온한 장면의 배경 음악은 선율은 이상하리만큼 슬픈 곡이었다.
아무것도 다를 게 없는 그런 무채색의 날
아마의 자애로운 미소에 겹쳐진 슬픈 음악은 나를 멈춰 세운다.
그리고 가만히 내게 묻는다.
은영,
너 슬픈 배경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건 아니야?
미지근한 거짓말을 하며 미지근한 미소를 지은채,
혹시 오늘 그런 하루는 아니었나? 나는 집에 돌아오는 퇴근길 가끔 이 영화의 음악들을 듣곤 한다. 사랑의 신 아마, 그녀의 미소, 그리고 겹쳐지는 슬픈 음악.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사랑의 신 아마가 내게 프라이빗하게 묻는다.
나 또한 매우 프라이빗 하게 대꾸한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간다.
이 영화로 당신도 사랑의 신 아마를
당신의 프라이빗 속으로 데려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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