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워킹맘의 소소한 감사

아이는 자랐지만 엄마의 생각은 자라지 않은 모양이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니

어린이집 선생님의 부재중 전화가 남아있다.

무슨 일이지 어쩌나. 다시 전화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별 일 아니겠거니 넘기려는데~

(강심장 워킹맘)

'그냥 넘겨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로 문자까지 온다.


어머님 가은이가 열이 많이 나서
어린이집서 낮잠 자는 것보다는
집이 좋을 것 같은데 할머님 전화가 꺼져있어요.
어쩌면 좋죠?


순간 강심장 회사원 엄마의 강한 심장도 버텨내질 못하고 쿵쾅거린다.


선생님 가은이 괜찮아요?

여전히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어머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회사원 엄마는 다급한 마음에 앞뒤 안 가리고 말을 내뱉어 버린다.


선생님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이것저것 따지고 가릴 처지가 안된다. 직속상관에게 결연한 통보에 가까운 멘트를 하고 차 키를 들고 회사를 나선다. 허락을 구했지만 그 다급한 확고함은 나는 반드시 빨리 다녀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통보에 가까웠다.


이 정도 의지와 투지면 웬만한 상사들은 다 동의를 해주더라. 왜냐하면 이것은 허락이 아닌 결연한 통보이므로.


한참 일할 시간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두통이 시작된다. 사실 회사원 엄마도 며칠 전부터 아프다. 엄마들은 함부로 아플 수도 없는 운명이다. 엄마가 아프면 그것은 혼자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아픈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다른 특별한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자유롭지 못하는 회사원 엄마의 숙명.


회사원 엄마의 남편은 1년 전 외국의 주재원으로 떠났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는 여자 세명이 산다.

시엄마, 5살짜리 슈퍼 파워 꼬맹이, 그녀
(전부 노약자이므로 그들은 그녀가 지켜야 한다)


그녀의 회사가 그렇듯 시엄마도 주 5일 근무를 하신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셔서 일요일 밤에 다시 출근하신다. 거의 최저시급에 가까운 기본급에 상여금과 성과급을 따로 챙겨드린다. 남편의 부재로 주말과 연휴면 회사원 엄마는 다가오는 시간들이 두렵다. 연휴를 마치고 결국 엄마는 병이 났다. 연휴가 끝나기 전 날 그녀의 남편이 묻는다.


은영아 연휴 끝나니 기분이 어때?
오빠, 나 너무 설레여.
드디어 내일이면 회사 가는 거야?


너무 무리했던 연휴 전략이었다.

사단은 처음 끌고 나간 유모차와 함께한 장작 8시간여의 어린이대공원 탐방이었다.

작은 체구의 여자 한 명이 감당하기에는 큰 유모차, 슈퍼파워 16킬로짜리 아가씨, 돗자리, 아가씨의 도시락과 음료수, 간식들 그리고 꾸역꾸역 가지고 간 노트북과 책은 분명 무리였다.


도대체 동물원에서 8시간 동안 뭐했니?


이것은 어린이대공원을 아직 잘 몰라하는 이야기이다. 이상한 마법학교 특별 체험전, 그곳이 마련한 초대형 키즈 놀이시설, 동물과 백설공주가 함께 나오는 연극, 걸어도 걸어도 계속 나오는 드넓은 공원, 맹수 존, 파충류 존, 새 존, 바다 동물 존 등이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 이 곳.


사실 8시간이나 있었던 것은 이 곳이 볼 것도 많았지만 집에 가서 딱히 놀아줄 것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집에 가면 매번 파자마 삼총사, 카봇, 터닝 메카드, 소피아들만 보는데 엄마가 쉬는 연휴라도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낮 잠잘 때 잠시나마 30여분이라도 책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어린이 대공원 한 귀퉁이에서 탄생된 글

[남자에게 고마울 때] 혼자 총 무게 20킬로가 넘는 유모차를 끌며 남편에게 감사한 일들을 기록한 설움 감성 폭발 산문

https://brunch.co.kr/@glamjulie/19

(클릭! 왜냐하면 감성 폭발 산문이니까요)


8시간의 어린이대공원 대장정이 끝난 후 웬만해선 안 아픈 5살 배기 슈퍼파워와 엄마 모두병이 났다. 슈퍼파워는 어린이집을 하루 쉬는 땡땡이가 가능했지만 엄마의 긴 연휴 후 회사 결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창문이 없어 사방이 막힌 절대 산소가 부족한 좁은 회의실에서 회사원 엄마는 자꾸 열이 오른다. 안 좋은 컨디션 탓에 어제저녁 먹은 것까지 채 했다. 회사원 엄마는 그래서 지난 저녁부터 내내 계속 빈 속이다. 친한 친구의 아름다운 자연풍경 사진에 약 사러 가는 길의 빌딩 숲 하늘을 찍어 답한다.


야 풍경 좋아 보인다, 나도 보낸다.
약 사러 가는 풍경이야

KakaoTalk_Photo_2016-10-28-08-28-45_11.jpeg 약사러 가는 빌딩 숲 풍경
KakaoTalk_Photo_2016-10-28-08-28-47_7.jpeg 파란 하늘이 아름다워 뭔가 더 몸이 아픈 것 같더라

사무실에서 다급히 몸만 빠져나와서 아이의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 회사원 엄마는 생각한다.


상사들은 이런 내가 어떨까
아이가 아프니 엄마니 남편이 한국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해줄까
가냘픈데 참 애쓰네
아마 그들의 기억 속에는
그렇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잠시라도 나올 수 있음에
자가용을 타고 직접 운전해 갈 수 있음에
다녀 올 엄두가 날만큼의 회사 가까운 거리에 내가 살고 있는 게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그래도 흔쾌히 허락해주는 직속상관에게
마침 그때 중요한 회의나 보고가 없었음에
이런 일 앞에 그래도 내가 앞뒤 안재고 통보에 가까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악랄한 악덕 상사가 내 상관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저 고맙고 감사한다.


슈퍼파워 꼬맹이는 열이 펄펄 끓으면서도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안 떨어져

회사원 엄마는 평소 절대 잘 안 사주는

슈퍼파워 꼬맹이의 에너지원 젤리와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주고 다시 사무실로 향한다.


그저 지금 이 상황에 감사하고 감사했다.


남편 없이 회사원 엄마로 살다 보니 하도 힘든 일을 많이 겪어 이제는 이상하게 감사하게 된다.


아이가 5살이나 되었건만
회사원 엄마는
여자 엄마는
약하다가 강한 엄마는
아직도 헷갈린다.


이렇게 계속 사는 게 맞는지


둘째는 낳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남편따라 외국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렇게 아빠 없이 애를 혼자 계속 키우는 게 맞는지
애를 시엄마에게 맡기고 내가 계속 일을 하는 게 맞는지
내가 아이를 맡게 잘 키우고 있는 건지
내 몸 하나 편히 뉘이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계속 글을 쓰는 게 맞는지


아이는 자랐지만 엄마의 생각은 자라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아이가 자란 만큼 고민의 종류와 그 무게가 더 자라난 것 같다.


엄마가 되면, 아이의 돌이 지나면, 아이가 말을 하게 되면, 아이가 나와 의사소통이 되면...
그래도 좀 나아질 줄 알았다.

헷갈리는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살고 있음에 감사하기로 한다.


둘째는 없어도 이렇게 건강한 첫 째가 있음에
한국에 없어서 그렇지
타국에라도 그가 있음에
남편은 없지만
시엄마와 애를 함께 키울 수 있음에
애를 맡기고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잘 키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 2일이라도 내가 애를 키우고 있음에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음에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감사한다.

힘들 이유를 찾으면 힘든 이유는 아마도 100만 개쯤

감사할 이유를 찾으면 처음엔 없어도 모든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시간 없다 없다 투덜대도 잠시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손가락이 있음에.
고장 난 컴퓨터 때문에 속상하지만 다시 한 대 살 수 있음에.
모니터를 하도 오래 봐서 두 눈이 시큰거리지만 여전히 이렇게 눈 뜨고 있음에.
산소라고는 없는 꽉 막힌 골방에서 일하지만 출근할 사무실이 있음에.
언제 그랬는지 내 천가방이 찢어졌지만 하나 더 살 수 있는 나의 경제력에.
피곤하지만 따뜻한 커피 호호 불어가며 마실 수 있음에.
아이고 허리야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다곤 하지만 덥고 추운 날씨 영향 안 받는 사무직임에.
무엇보다 오늘보다 미래가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이 내게 있음에

그저 고맙고 감사한다.


힘든 이유를 찾으면 힘들일 투성이

감사한 이유를 찾으면 분명히 감사한 일 투성이


선택은 나의 몫이 아닐까?


아이가 자라듯이, 며칠 안 보면 훌쩍 자란 그녀의 모습에 입이 딱 벌어지듯이

그렇게 엄마의 생각도 자랐으면 좋겠다.

내 생각도 그렇게 모른 듯이 쑥쑥 자라나 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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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작가의 책 <여자는 아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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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glamjulie / 유튜브: 이은영의 글램 토크 / 블로그 http://blog.naver.com/dreamleader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