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깜박 두고 나간 날

하필 오늘이 내 생일.

내겐 아주 이상한 습성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침 알람을 4시 반, 4시 40분, 4시 50분

혹시 이때 못 일어날 것을 대비해

또 5시, 5시 10분, 5시 20분 이렇게 맞춰 놓는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이상하다 표현하는 것은

바로 내가 알람을 맞춰 놓은 시간에

절대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마음은 결연하다
분명 내 의지는 충만하다 못해 넘쳐흐른다
하지만 결코 그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선 딱 지각을 모면할 만큼 딱 그 촉박한 시간에 눈을 번쩍 뜬다.


오늘도 실패다.


스스로가 자초한 이 바보 같은 상황에

애꿎은 머리를 쥐어박으며

심장마비 직전의 놀란 가슴으로 후다닥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물론 이렇게 많은 알람을 맞춰놓고

아예 못 일어날 정도로 내가 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분명 첫 번째 알람에 반응한다.

그렇게 4시 반에 나는 눈을 뜬다.

즉시 방의 불을 가장 환하게 밝힌다.

그리고선 안전히 10분 단위로 맞춘 나머지 알람들을 믿으며 다시 잠을 자버린다.

사단은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5분만 10분만 더...

그렇게 4시 40분의 다음 알람이 울렸을 때

나는 다시 핸드폰을 켠다.

그 즉시 알람을 끈다.

그리고 세팅되어 있는 나머지 4개의 알람들도 모조리 꺼 버린다.


그 순간 나는 잠이라는 인간의 엄청난 본능에 압도되어 버린다
그 원초적 본능에 저항하기엔 난 너무도 취해 있다
온통 잠 기운에 비틀거린다


그렇게 해도 뜨지 않은 4시 반

아직 어두워야 할 그 방에 불을 활짝 켜고

핸드폰을 이불에 파묻어 기절시킨다.

그렇게 내내 불편하게 잠을 잔다.


이럴 거면 왜 알람 맞추니?


그러게.

정말 나는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이토록 새벽에 일어나려는 데는 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벽은 직장인에게 허락된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니까.

새벽은 나만 나를 단도리 잘 하면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까.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내게 공짜로 주어지는

이 시간을 지키고 싶다.
이 새벽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 실패다.


특히 릴레이로 맞춰놓은 알람들과 극심하게 치열한 사투를 버린 날은

나도 모르게 그만 이불로 핸드폰을 질식시켜 버린다.

가끔은 핸드폰 질식 도구로 폭신한 배게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저지른 날이면 핸드폰은 내게 반드시 복수한다.


버스 문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앗, 핸드폰 두고 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난 지각이다.

올라탄 발이 무거워 차마 안 떨어지지만 나머지 한 발을 마저 조용히 버스에 싣는다.

유난히도 오늘 알람과의 전투를 치열했다.

그 녀석은 나를 깨우려고 안감힘을 다 썼고

나는 아주 깊숙이 핸드폰을 이불속에 파묻어 버렸다.


그렇게
오늘은 핸드폰 깜박 두고 나간 날
그런데 하필 오늘이 내 생일


아뿔싸.

이건 정말 아니잖아!


지각을 불사하고서라

집에 다시 돌아가지 않은 것은

내겐 카톡 PC버전이 설치된 노트북이 있기 때문.


낮 시간을 그렇게 버티고

저녁 시간은 컴퓨터 없이 보냈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컴컴한 이불속에서 여전히 다소 삐져있는 핸드폰과 화해를 시도해 본다.

저녁 시간 확인을 못했을 뿐인데

카톡이 70개나 와 있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수많은 생일 축하 메시지들과

한 번도 풍요롭지 못했었던 카톡 선물함의 터질듯한 케이크와 커피들.


늦은 밤 텅 빈 방에서

눈가에 어떤 액체 종류의 것이 잠시 맺혔다 금세 사라졌다.


너무 시간이 늦어 한 명 한 명 고맙다는 인사를 못해요.
내일 아침에 출근하는 버스에서 모두에게 꼭 인사할게요.
이 커피 다 마시려면 더 글 많이 써야겠어요.
이 케이크 다 먹으면 아마 살찔 것 같아요.


행복은 별 거 없다.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의 접합점.

그것이 행복이다.


사랑해서 행복하다.

사랑받아 행복하다.


서른 넘어 이렇게 생일 축하받으니

외롭지 않아 좋다.


사랑해서 행복하다
사랑받아 행복하다


글램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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