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라 소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iara 라라 Nov 15. 2023

열네 살에 만난 핑키

- 라라 소소 4

중학교 일 학년, 열네 살은 삶의 무게를 실감하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하고 싶은 데로만 하고 지내던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스스로 일어서야 하고 행동에 책임도 져야 하는 그런 나이이다. 어린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 의젓한 느낌의 단어인 청소년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며, 학생이라는 호칭에도 익숙해져야만 하는 시기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좋다고 소문이 난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집 주소를 그 학교로 배정이 잘 되는 곳으로 옮겨놓는 일이 불법이지만 흔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오빠와 나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주소를 옮겨 놓았는데, 사실 나보다는 오빠를 보내려는 게 더 컸을 것이다. 오빠는 듬직하고 공부도 잘하고 멋진 학생이었다. 좋다고 여겨지는 학교에서 괜찮다고 여겨지는 교육을 받고 보다 나은 사람으로 자라도록 혹은 알아주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부모님은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첫째는 그렇게 부모님의 기대를 받는다. 나는 비실대고 뭐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오빠가 신생 학교에 배정을 받은 것이다. 신생 학교는 학교가 안정을 찾는 동안에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높아, 우수 학생들의 부모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오빠는 그 학교에 잘 다녔다. 사람은 변하지 않더라. 우수하게 다녔다. 그리고 몇 년 후, 부모님이 오빠의 입학을 원했던 학교에는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오빠의 고등학교 입학 때문에 주소지를 계속 그곳에 놓아둔 혜택을 내가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게 누구에게 향하는 혜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좋아했지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사립중학교에 들어갔고, 선생님들은 굉장히 엄격했으며, 같은 재단의 사립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대다수였다는 사실은 나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초등학교에서 아주 먼 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 나는 아는 친구가 단 한 명뿐이었다. 부모님도 서로 알고 있는 그 친구와 함께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남자였고 그 당시 남학생과 여학생은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으며 친하더라도 겉으로는 친해 보이지 않게 행동하는 게 당연시 여겨지는 추세였다. 여자 중학생의 눈에는 남자 중학생이 너무나도 바보 같이 보였기 때문에 함께 놀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2학년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다. 통상 날라리라고 불리는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물론 선배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더 많았고 같은 학년 남학생들은 머슴처럼 데리고 다니며 여학생과 남학생의 금기를 깨는 행동을 했다. 사귀는 사이도 생겨났고 엄한 규율을 적용하는 학교이니만큼 그런 날라리들을 색출하는데 학교는 혈안이 되었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


중학교 일 학년, 열네 살의 나는 외로웠다.


친구 사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 인줄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첫 짝이 중요한데 내 첫 짝은 이미 초등학교 때 어울리던 친한 무리가 같은 반에 여럿 있는 아이였고, 노는 축에 속하는 아이여서 나 같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짝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에 차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거의 안녕, 인사 한마디 정도만 하지 않았을까. 나는 점심시간에도 혼자였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식당이 있어서 급식을 먹었는데, 중학교에서는 도시락이라고 해서 왠지 두근거리기도 하고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먹으려고 기대한 건 아니었다.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반찬을 나누어 먹으며 하하 호호 웃으면서 수다도 떨면서 먹는 점심 도시락을 상상했었다. 나의 상상은 책 속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장면이었나 보다. 나는 밥을 혼자 먹었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 주신 도시락을 다 먹을 수도 없었다. 밥 먹는 속도가 느려서 더 그랬다. 먹고 싶지 않았고 혼자서 밥을 먹는 게 부끄러웠다. 슬펐다. 외로웠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건 내 짝의 위엄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쭈굴 하게 학교에 다니면서 초등학교가 많이 그리웠다.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엄마에게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은 도시락은 밖에다 버리고 집에 들어갔다. 담임 선생님은 딱딱한 사람이었다. 기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중학교는 나에게 너무나도 낯설었다.


핑키가 집에 왔다.


핑키의 엄마는 클린이다. 클린은 엄마의 친구 집에서 사는 요크셔테리어다. 아주 작은 클린이 더 작은 아기를 낳았는데 집에서 두 마리를 다 기를 수가 없어서 아직 아기인 핑키를 입양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엄마는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어서 조르고 졸랐는데 엄마는 단 한 번도 호감을 표현한 적이 없다. 그래서 믿어지지 않았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핑키를 데리고 오면서 오빠와 나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강아지 목욕시키기, 사료주기, 똥오줌 치우기, 놀아주기, 산책시키기, 모두 잊지 말고 해야 한다고. 물론 다 하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하나도 걱정하지 말라고. 뭔들 못 하겠는가.


엄마가 핑키를 집에 데리고 왔는데 아기 강아지는 눈이 똥그랗고 굉장히 크고 까맸다.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코는 맨질맨질 습기가 가득했다. 아직 아기여서 검은 털이 더 많았다. 안녕, 핑키야. 반가워, 잘살아 보자. 핑키는 똑똑한 강아지다. 대소변을 며칠 만에 가렸다. 화장실이 어떤 공간인지 알아봤다. 내 방이 집의 맨 구석에 있고, 그 옆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화장실 앞에 물그릇과 밥그릇을 놓아두었다. 밥과 물은 그곳에서 먹으면 된다는 걸 잘 알아보았고, 화장실에서 대변과 소변을 보면 된다는 걸 금세 익혔다. 교육을 따로 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알아들었다. 작고 까만 아이. 핑키가 동동거리는 발걸음으로 걸으면 집이 넓어 보였다. 엄마와 식구들, 그 집의 분위기가 그리웠는지 초기에는 종종 끙끙거렸는데 슬퍼 보이기도 했다. 표정도 소리도 그 당시의 내 마음 같아서 자꾸만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여기 있다고, 핑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늘 함께 해 주겠다고 속삭였다. 내가 학교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핑키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조금씩 나아져 갔다. 학교가 끝나면 핑키를 만날 수 있으니 고독한 학교생활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핑키도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그래도 대부분은 엄마가 밥 주고 물 주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니까 엄마를 더 따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핑키를 정말로 깊이 사랑했다. 나는 어쨌든 집안의 막내고 핑키 눈에도 내가 제일 아래 서열이라는 게 느껴졌을 텐데 핑키는 나를 괄시하지 않았다. 핑키는 작아서 침대에도 소파에도 올라오지 못하고 낑낑거렸다. 가끔 컹, 하고 짖었는데 그 소리가 ‘나 좀 봐줘!’ 하고 작게 외치는 소리 같았다. 작은 소리. 작은 아이. 까만 아이. 엄마가 침대에는 올리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핑키를 침대에 올렸고 나의 소중한 침대를 핑키와 공유하였다.


핑키는 겁이 많았다. 겁이 많은 강아지는 짖기도 많이 짖는다고 하는데 핑키는 그렇게 많이 짖지는 않았고 오히려 무서움을 겉으로 완연히 드러내며 바들바들 떨곤 했다. 외출을 정말로 싫어하기도 했다. 집에서 뛰어다니거나, 공을 던지면 받아오는 걸 좋아했지만, 밖에 나가서 뛰어다니는 건 극도로 싫어했다. 나처럼 상당히 내향적인 강아지였다. 친구를 사귀게 해 주고 싶었는데 다가오는 친구가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부들부들 떨었고, 발에 매달려 살려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안아달라고 보챘다. 그 눈이 안쓰러워 결국에는 안아주고 말았는데 조금 더 독립심을 길러줘야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핑키는 자라면서 까만 털이 조금씩 사라지고 갈색과 황금빛 털이 우아하게 자라났다. 요크셔테리어 특유의 길고 아름다운 털이 자랐다. 귀여운 강아지에서 아름다운 성견이 되었다. 내가 힘든 중학교 생활을 버텨내고 친구를 조금씩 사귀면서 커 나갔던 것처럼 핑키도 집에서 사랑을 담뿍 받으며 커 나갔다. 우리는 함께 자랐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도 핑키는 늘 나와 함께였다. 침대와 소파에 오르지 못해서 바둥거리던 강아지가 이제는 가쁜 하게 원하는 곳으로 뛰어서 오를 수도 있게 되었다. 몸집은 여전히 작아서 가끔은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다시 도전하는 용감한 모습도 보였다. 핑키는 다른 성견 요크셔테리어에 비해서도 더 작은 축에 속했다. 친구가 생기고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핑키와의 관계는 조금 소홀하게 되었는데, 동생이 있으면 이렇게 외면하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약간은 귀찮은 마음이 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늘 함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존재가 가족인가 보다. 그러다 보니 너무 당연해서 소중함을 더러 잊고 말아 버린다. 사랑하지만 덜 표현하게 되고, 그럼에도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 버리고 만다.



핑키는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이 작은 생명체는 나를 지켜주었고,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고, 내가 울고 있으면 살며시 내 품으로 들어왔다. 많은 아픔이 핑키를 통해 치유되었다. 핑키를 껴안으면 따스한 온기를 느꼈고, 그 작게 콩콩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조금은 안도를 느끼기도 했다. 삶은 많은 시간과 공간과 경험을 거쳐 지나간다. 좋을 때도 있지만 아프고 슬프고 힘들 때도 많다. 좋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때도 많다. 화가 나면 괜히 짜증을 내거나 심술을 부리기도 했는데, 핑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에게 다시 돌아왔고 가까이에 있어 주었다. 늘 내 침대에서 함께했다. 일요일 아침에 더 자고 싶은데 방문을 벅벅 긁어서 내보내면 또다시 긁어서 다시 열어주고를 얼마나 반복했던지. 사각사각 발톱으로 열심히 긁어대는 문소리. 핑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답답했던 적이 많았을까.


나이가 많이 들고 핑키 할머니가 되어서도 다행히 다른 큰 질병으로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녹내장이 있어서 시력을 조금 잃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나이가 있어서 수술은 하지 않았다. 이곳저곳 쿵, 하고 부딪히고 당황스러워하는 핑키가 기억난다. 괜찮다고 안아주면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지만 움직이는 게 두려웠을 것 같다. 어쩌면 약간의 치매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나는 무서웠다. 평소와는 다른 핑키의 행동이 무서워서 그걸 숨기려 오히려 더 화를 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엄하게 말하기도 했다. 핑키는 내 동생 핑키여야 하는데 어느 순간 할머니가 되어서 할머니 핑키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몰라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핑키도 나도 서로의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나 자신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갑작스러운 병에, 수술도 받고, 많은 일들이 있던 사이에 핑키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갔다. 평소보다 조금 더 얌전해지고 조금 더 우아한 할머니가 되어갔다. 여전히 똑똑했고 나를 살뜰히 살폈으며 외출은 싫어했다. 품에 안겨서만 겨우 나가려 했고, 양말이나 신발을 신기면 너무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뒤뚱거리며 걸었다. 작고 따뜻한 생명체.


말년에 핑키는 자꾸만 빙글빙글 돌았다. 평형 기관에 문제가 생겨서 어지러웠을 텐데도 직선으로 걷지 못하고 자꾸만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잡고 있어도 불편하다고 끙끙거렸다. 당황하고 있었을 핑키에게 예쁜 말을 해 주지 못했다. 빙빙 도는 핑키를 안아주기만 했는데 핑키는 힘이 없어 보이면서도 애써 힘을 내는 것 같았다. 바스러질 것 같아서 밤에 잠을 잘 때에는 안고 잘 수가 없었다. 자꾸만 깨서 핑키를 쓰다듬었다. 핑키는 점점 더 오랫동안 잤고, 일어나서는 빙글빙글 돌았다.


공기가 참 맑고 좋았던 가을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서둘러 돌아왔을 때, 엄마는 핑키를 안고 울고 계셨다. 나도 엉엉 울었다. 핑키는 그때까지도 따뜻했다. 하지만 숨을 쉬지는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환청을 들었다. 문 열어 달라고 방문 긁는 소리가 자꾸 귓가에 들려왔다.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핑키가 느껴져 눈을 뜨면 아무도 없었고 그 밤들은 너무나 추웠다. 철저하게 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슬펐고, 마음껏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못해서 아팠다. 사랑은 남은 사람에게 후회를 남긴다. 충분히 후회하지 않게 사랑하라고 하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충분할 수 있는 건 없다. 모든 건 후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뿐. 핑키는 내가 가장 외로운 시기에 나에게 왔고 오랫동안 나와 함께하며 나에게 안정을 주었다. 끝까지 이기적인 나에게 모든 사랑을 주고 떠나갔다. 나는 그걸 안다. 핑키보다 더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핑키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따뜻하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립고 또 그립다. 만나고 싶다. 얼굴을 비비고 싶고, 까만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싶다. 장난치며 뒹굴고 싶다. 무엇보다 힘들고 외로운 지금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또다시 해본다.


나는 외할머니와 큰 이모를 많이 사랑했는데,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셨다. 핑키가 하늘나라에서 할머니와 이모와 하느님과 함께 편안하게 어지럽지 않게 따뜻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곧 다시 만나자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요즘에도 종종 하늘을 보며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모두 함께 웃고 있을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한다. 나도 빨리 그들에게 가고 싶지만, 그 시기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해진 만큼 나의 몫을 살고서 가야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공원이나 산책로를 걸으면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나온 이들이 많다. 반려동물이 많아지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도 많이 늘었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반려라는 말보다는 동물이라는 단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엄마가 핑키를 데려올 때, 강아지를 기른다는 건 한 아이를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만큼의 정성과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거라고,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모두가 이 말을 잘 기억하며 반려동물과의 삶을 살아나가면 좋겠다.


엄마가 핑키를 다 키웠다. 엄마는 오빠와 나와 핑키, 세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챙겨주고 사랑하며 길렀다. 엄마라는 존재는 늘 위대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 덕분에 핑키와 만났고 핑키 덕분에 외로운 열네 살을 잘 넘길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욕탕은 몽글몽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