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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Nov 22. 2023

겨울 길목, 나의 오솔길에서

- 라라 소소 5

 

낮은 풀숲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당신과 나,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서로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길이 막힌 나와 풀숲에서 놀고 있었는데 엉겁결에 밀쳐져 길목에 우뚝 서버리게 된 당신. 당신은 내가 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최선을 다하여 후다닥 사라졌다.


집 근처에 산책로라고 하기에는 조금 짧은 감이 있고, 골목길이라고 하기에는 오솔길처럼 운치가 있는 길이 하나 있다. 전철의 맨 앞과 맨 뒤에 출구가 있는 전철역 옆으로 전철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길이다. 물론 전철역이 외부로 열려 있는 것도 아니고 철로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옆에 전철역이 있고 철로가 있고, 전철이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니까 함께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이 길은 어쩌면 방향을 잘 못 잡아 앞으로 나와야 하는데 뒤로 나온 사람, 혹은 뒤로 나와야 하지만 앞으로 나와버리고 만 사람, 그런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전철역의 앞과 뒤는 생각보다 멀고 너무나도 다르게 생겨서 초행길의 사람들은 전철역 밖으로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한다. 길 잃은 사람들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알려 주는 입장에서도 설명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이 길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전철역을 따라 옆으로 나 있는 이 길을 쭈욱 지나가시면 원하시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끝까지 가면 반대쪽 출구가 나온답니다. 그곳에서 건너편으로 가시려면 출구 위로 다시 올라가셔서 반대로 넘어가시면 되어요.


이렇게 설명을 하고도 상대가 당황하고 헤맬까 봐 걱정되어 말없이 동행하기도 한다. 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길지도 않은 이 길. 나는 이 길이 좋다. 나무가 많아서 산속을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초록의 나무 사이로 삐죽이 보이는 하늘이 얼마나 청명한지 모른다. 이 길은 전철역과 고등학교 사이 토막공간에 만들어져 있다. 누군가는 이런 길이 있는지도 모르겠지. 봄에는 벚꽃이 한가득이라 하얗고 분홍색 꽃잎 길을 만들어 주고, 가을에는 낙엽으로 운치가 깊다. 자투리 사이 공간이다 보니 햇볕이 담뿍 들어오지는 않아서 나무들은 위로 위로 자라고 둥치도 굵진 않은 편이다. 그런 나무들이 이 공간에 더 잘 어울린다. 낮에 주로 지나가게 되지만 밤에 걷는 것도 좋아하는데 가끔 엄마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이 길을 선택하면 엄마는 이곳은 외졌다며 큰길로 다니라고 늘 말씀하신다. 나는 자동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다니고 건물이 있는 큰길을 오히려 더 무서워하지만, 엄마에게는 그저 알겠다고 대답한다. 내가 어디로 다니는지 엄마는 알 방법이 없을뿐더러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다.



사람들이 보행하기 편하게 보도블록이 깔려있고 가로등도 있고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참 알차다. 어떤 밤에는 가로등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숲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아서 두렵기도 했는데, 하늘 나무 틈새로 보이는 달이 아름다워 안심을 한 적도 있다. 그 뒤로 몇 날 며칠 동안 가로등이 꺼진 상태여서 이 가로등은 누가 키고 끄는 걸까, 고민해 보기도 했고, 어린 왕자가 다섯 번째로 찾아갔던 아주 작은 별이 생각나기도 했다. 어린 왕자는 그 작은 별에서 가로등 하나와 그 가로등을 켜고 끄는 사람을 만났었다.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어떤 명령에 의해서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을 반복하곤 했는데 우리 동네 이 길의 가로등도 쉼도 생각도 없이 명령에 따라서 어떤 직원이 키고 끄는 걸지도 몰라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늘에 달도 별도 없는 밤이면 그 길을 지나는 건 눈과 귀가 너무나도 예민해지는 경험이기에 이 가로등을 담당하고 있다고 쓰여있는 구청 시설관리과에 문의 전화를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전철역과 학교 사이에는 보도블록이 깔려있고, 정비되었지만 구불거리는 모양을 가지고 있는 이 길만 있는 게 아니다. 학교 담벼락 쪽으로는 정말 흙과 나뭇잎을 밟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처음 그 자연 속 길을 알았을 때 그 길은 사람들이 그냥 조금 더 빠르게 다니기 위해서 혹은, 나무 사이를 걷고 싶어서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길에는 나무가 심겨있지 않은 걸 보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길 같기도 하다. 강아지들의 산책코스로도 안성맞춤인지 그곳을 저벅저벅 걸어 다니는 반려견들도 많다. 배설물은 주인이 다 치우겠지? 나는 그곳을 걸어본 적이 없다. 그냥 바라보기만 할 때 더 좋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어쩌면 아끼고 싶은 걸지도 모르고,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과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며 살포시 걷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동네 어르신 분들이 산책을 나서는 단골 코스이기도 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따뜻한 날이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원한 날에는 신발을 벗고 그곳을 걷는 분들도 왕왕 발견할 수 있다. 좋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발바닥이 아프지 않을까, 다치지는 않을까, 나는 괜한 걱정만 한다. 도시 한가운데에 이렇게 숨 쉴 공간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도심 한복판이라고 말하기에 너무나도 북쪽으로 치우쳐 있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산은 사방으로 펼쳐진다. 누군가 어디에 사냐고 물어볼 때면 지역이나 가까운 전철역을 대곤 하는데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서, 덧붙여하는 말이 있다.


우리 동네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의정부예요, 북한이랑 가장 가까운 서울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이 동네에 살고 있다. 강북에서도 더 북쪽. 서울 어디를 가든지 공평하게 오래 걸린다. 그래도 근처에 전철이 있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가까이든 멀리든 산이 보여서 좋다. 등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산을 바라보는 건 좋다. 공기가 정화되어 나까지도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산을 바라보면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도 확인이 가능하다. 미세먼지나 대기 중의 황사 농도가 높으면 멀리 있는 산이 뿌옇게 보이거나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구나, 창문을 열지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가끔은 안개일 때도 있어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싶으면 지역 날씨를 꼭 확인해 본다. 지역별로 날씨도 나오고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오존, 그리고 황사의 실황이나 예측까지 알아볼 수 있어서 좋다.


가까이에 천도 있다. 중랑천이라고 이를 따라가면 한강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한 번도 천을 따라서는 가본 적이 없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저녁에는 곳곳의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열심히 앞만 바라보며 걷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가 지는 어느 시간에는 시끌벅적하기도 하다. 에어로빅 수업인지 댄스 시간인지 음악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고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리듬을 타며 몸을 움직인다. 천 위를 지나가는 다리를 건너며 오밀조밀 모여서 동작에 열심인 사람들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가끔씩 시원하게 달리는 자전거를 보면 취미로 자전거를 타던 한 무리의 옛 인연들이 떠오른다. 자전거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결국 그 무리에 흡수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없어도 아직까지 서로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또 자전거도 즐기면서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유연하게는 아니더라도 자전거를 탈 줄은 안다. 탈 줄은 알지만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고 타면 늘 엉덩이가 아프다. 바람을 날리며 풍경이 쑥쑥 지나가는 기분 좋은 감각은 너무 순식간에 휘발되어 버려서 그때뿐이다. 다음에 또다시 타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전철을 타러 갈 때도 버스를 타러 갈 때에도 그 오솔길을 지난다. 그 길을 지나지 않아도 전철을 탈 수 있고 가까운 버스정류장도 따로 있지만, 특별히 마음이 급하지 않은 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길을 지나간다. 나 혼자서 그 길을 나의 오솔길, 나의 숲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낙엽을 사락사락 밟으면 와삭와삭 마른 낙엽의 부서지는 소리에 감자칩이 먹고 싶어 진다.



동네에는 길고양이들이 많다. 길고양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밥을 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곳에서 종종 고양이들은 야옹야옹 울어댄다.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고, 간식을 달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미안해지고 만다. 약간 멀찍이 서서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고 나서, 나는 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하니, 속으로 말을 건넨다. 고양이는 매번 다르다. 내가 지나가는 시간이 매번 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은 책을 읽으며 길을 가다가 뭔가 이상한 기운에 책에서 눈을 떼고 뒤를 돌아봤을 때 화들짝 놀란 적도 있다. 내가 지나온 길에 고양이 두 마리가 누워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놀이를 방해하며 지나갔었나 보다. 사람이 지나가고 있는데 피하지도 않고 조심하라고 신경질을 내지도 않으며 그렇게 사뿐히 평화롭게 나를 보내줄 수 있다니. 멋진 고양이들이다.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안녕, 미안해, 하며 사과하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 고양이들은 도도하게 나의 사과는 받아주지 않았고, 포즈를 취해주지도 않았으며, 뒤돌아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날이 추워지면 고양이들이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디에서 밥을 먹고 어디에서 잠을 자고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까. 너희들 괜찮은 거니?


나의 오솔길 한쪽에는 띄엄띄엄 작은 집이 놓여있다. 작은 그릇들도 그 옆으로 놓여있다. 길고양이들이 겨울에 춥지 않도록, 또 다른 계절에도 너무 힘들지 않도록 갖다 놓은 집들인 것 같다. 누군가 길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그 마음에 내 마음까지도 따뜻해지지만 고양이들에게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그 집에 고양이들이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걱정만 할 뿐이다. 처음부터 길고양이를 걱정한 건 아니다. 길고양이는 무서웠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이사 간 동네에서 유독 아기 울음소리 같은 고양이들의 소리가 너무 가까이 들려 그들이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유독 멀리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주변에 반려견은 많았어도 반려묘는 거의 본 적이 없어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를 집사라고 칭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주인님을 보며 조금씩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얘기는 많이 듣고 있지만 여전히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을 해 보지는 못했는데도 고양이가 이제는 친근하게 느껴진다. 거리의 고양이들이 얼마나 힘들지 눈여겨보게 된 것도 아마 그들이 이제는 나에게 가까이 느껴서일 것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참 묘하다. 나와 상관이 없으면 무관심으로 일별하고 - 일부러 관심을 표하지 않는 게 아니더라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기도 하다 - 조금이라도 연결고리가 생기면 그 순간, 어떤 끌림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나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날은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사라져 가는 가을이 안타까워 나의 오솔길을 걷고 싶었다. 조금 빠르게 걷고 있었고, 그런 내 앞으로 당신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었다. 당신은 아기 고양이. 후루룩 사라져 버린 낮은 풀숲을 멍하니 쳐다보며 지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풀숲을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들이 사륵사륵 놀고 있었다. 세 마리가 콩쾅거리는데 한 마리가 더 구석에서 껴들어 함께 장난치며 놀았다. 내가 슬쩍 들여다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뒤통수가 따가워서 돌아본 곳에는 불안한 듯 한 마리의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엄마 고양인가 보다. 고양이는 나에게서 아기 고양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사람을 지나쳐 아기고양이에게 가는 게 맞는 건지, 이 사람이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는 표정으로 나를 유심히 골똘히 위아래로 쳐다보며 앉았다 일어났다 다가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 고양이의 마음을 읽은 나는 안녕, 인사를 하고,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지 몰랐네, 너무 예뻐서 바라보기만 한 거야, 걱정하지 말아, 나도 이제 가봐야 해, 나름 안심을 시키려는 자세를 취하며 말을 속사포로 해댔다. 그래도 고양이는 안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바로 내 갈 길을 가는 수밖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서 살포지 돌아보니 어미 고양이는 길 중간에 어중간하게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 머쓱해진 나는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다시 종종걸음으로 내 갈 길을 갔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을 며칠 뒤에 또 만났다. 이번에는 반갑게도 작은 집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아기 고양이들이 다 자라기도 전에 날이 많이 추워질 것 같아 계속 걱정이 되었는데, 그래도 작은 집 근처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니 조금이라도 안심이 되는 마음이었다. 나를 보고 또 후다닥 숨어버리는 네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과 불안한 눈동자지만 고고한 자태의 엄마 고양이. 건강하게 이 하루하루의 날들을 무사히 잘 지낼 수 있도록 살포시 기도하며 다음에 다시 만나, 하고 인사했다. 


나의 오솔길을 지나가는 마음에 작은 기대감이 하나 더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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