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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Dec 27. 2023

베프와 결혼의 상관관계

- 라라 소소 10 

순이야, 너라면 다를 줄 알았어.


순이는 다를 줄 알았다. 결혼을 해서도 예전처럼 나와 재미있게 즐겁게 또 진지하게 미래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역시 결혼이라는 건 믿을만하지 못하다. 누구에게나 동일한가 보다.


우리는 열다섯 살에 만났다. 같은 반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짝이 되었다. 내 옆에 앉은 아이는 얌전해 보였다. 그 당시에 우리는 모두 머리가 귀 밑으로 5센티를 넘지 않게 달랑거리고 있었고 우중충한 색의 교복을 입고 있었기에 사실 여학생들은 모두 비슷하게 보이기는 했다. 모발 규정이 있는 학교는 우리 학교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크지 않은 학교였고 대부분이 초등학교에서부터 올라온 학생들이라 중학교 2학년이 되어도 혼자서 다니는 애들은 별로 없었다. 무리가 있었고, 무리가 없더라도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다녔다. 가만히 앉아 있는 애들은 순이와 내가 유일했을 거다. 그건 우리가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거의 유일한 2명의 학생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임에 늘 긴장을 하고 다녔다. 전 해에 겨우 친구가 된 아이들은 모두 옆 반이 되어서 좌절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있는 아이들 틈에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처음부터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상황이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반면에 순이는 혼자임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자그마한 체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담한 아이인가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그 홀로가 당당했던 이유는 성적에 있다는 걸 첫 시험이 끝나고 나서 바로 알게 되었다. 순이는 지방에서 왔는데 1학년 말에 전학을 와서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중학생들은 자기들 살기에도 바빴고 또 조금 살고 나면 자기들 놀기에만 에너지를 쏟는 애들이니까 전학 온 애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선생님들이 순이에게 잘해 줬었나 보다. 그래서 애들이 전학생 순이를 고깝게 여겼던 것 같다. 나는 잘 모른다. 옆 반에 있던 유일한 친구들이 순이라는 애와 짝이 됐다고 했을 때, 해 준 말이다.


순이라는 이름은 너무 올드하다. 우리 엄마들도 아니고 할머니들 나이대에 있는 이름이 순이 아닌가. 순이 할머니, 엄마 엄마의 이름이 순이야, 이 정도로 들어만 보았을 이름이다. 초등학교에서는 그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겠지. 나는 짝이 됐지만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고 흘끔흘끔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하고 상상했다. 순이는 어떤 애일까. 지방에서 왔다면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처럼 얼굴이 하얗고 새침한 표정이 도도해 보이는데, 하며 말도 안 되는 편견을 갖고 있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었다. 나는 빵이나 김밥, 혹은 삼각김밥이 주메뉴였고 순이는 간단하게 흰쌀밥과 반찬 두세 가지가 담긴 작은 도시락이었다. 엄마가 바쁘기는 해도 도시락은 잊지 않고 챙겨주었는데, 도시락통을 열면 빵이나 삼각김밥이 봉지째 들어있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김밥은 편의점 김밥이어도 보통은 통에 하나씩 담아 주었다. 김밥을 하나씩 옮겨 담는 엄마를 상상해 본다. 엄마는 김밥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엄마가 먹고 하나는 도시락통에 담고 있었을 것이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나는 참치마요를 좋아하지만, 엄마는 무조건 칼칼한 양념이 있어야 음식이 제맛이라며 매콤한 걸 좋아해서 늘 김밥은 제육 김밥이었다. 매웠지만 중학생은 늘 배고픈 법이라 헥헥거리면서도 허겁지겁 맛있게 잘 먹었다. 삼각김밥은 그때그때 맛이 달랐다. 보통은 1+1 상품이었을 거라고 예상한다. 빵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소보로나 소라빵을 넣어 주었는데 빵은 점심으로 먹기에 양이 적어서 배가 금세 꺼지곤 했다.



순이는 공부를 잘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순이를 콕 집어서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먼저 손을 들거나 대답을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순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 정답이어서 신기했다. 쉬는 시간에 나는 옆 반에 있는 친구들을 찾아 헤매 다니기 일쑤였다. 그 시간에 순이가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1학기 중간고사에 순이는 반 2등을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 부러움과 시기가 가득한 눈도 있었고 동경의 눈도 있었다. 나는 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 짝이 그런 눈을 받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이 없었고 친구나 생기면 좋겠다는 게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희망은 곧 절망이 되었고 나는 이렇게 친구 한 명 없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비참한 날이었다. 나는 이때 왜 순이에게 말을 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순이는 혼자이고 나는 옆 반에 친구가 있으니까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자만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 하나 없는 애한테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났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공부도 뛰어나게 잘하지 못하고 반에 친구도 없고 눈에 띄게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원.


그날은 점심시간에 옆 반에 가지 못했다. 반별로 따로 행사가 있었는데 옆 반은 야외활동이어서 점심시간이 달랐을 거다. 오랜만에,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내 자리에서 제육 김밥을 먹었다. 그날따라 물이 없어서 더 맵게 느껴졌다. 헥헥대고 있을 때 순이가 도시락통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흰 밥을 먹으면 좀 덜 매울 거라고 말하면서. 당황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입 속에 또 밥을 넣으라고? 그래도 앞에 놓인 흰 밥이 맛있어 보여서 한술 떠먹었다. 매운 기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흰 밥은 굉장히 찰졌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이런 게 가족의 따스한 사랑이 담긴 밥인가 하는 순진한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흰 밥도 한몫했고, 그렇게 말을 건넨 순이의 목소리가 외롭게 들려 순이라는 아이가 그때 처음으로 내 마음속에 다가왔다. 나도 김밥 하나 먹으라고 말했다. 그렇게 흰 밥과 김밥으로 우리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순이는 말이 많은 아이였다. 세상에, 그동안 말하고 싶은 거 어떻게 참았니? 지금까지도 나는 그런 얘기를 한다. 너 말이 참 많구나 순이야. 그래도 내가 하지 못하는 말까지 순이가 다 해 주니까 나는 좋다.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옆 반으로 가서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나랑 놀아달라고 또 수업 먼저 끝나면 기다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보다도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막상 순이와 친구가 되니까 공부 잘하는 순이가 자랑스러워져서 내 어깨도 으쓱하게 되었다. 정말 초등학생스러운 내가 아니었나 싶다. 순이랑은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고,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에 배정되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같은 반이 된 적은 없는데 어차피 순이는 이과고 나는 문과여서 2, 3학년은 같은 반이 될 수 없는 처지였다. 학교에서 집에 올 때는 습관처럼 같이 다녔다. 순이네 집을 지나서 길을 건너 조금 더 걸어가면 우리 집이 있었고 늘 함께 다니는 우리는 자매처럼 보였다. 내가 키가 더 커서 언니, 순이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아서 동생. 조잘거리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덩치 큰 언니. 얼굴이 하얀 순이와는 다르게 나는 조금 까무잡잡한 편이었는데도 우리 둘이 같이 다니면 자매냐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나는 책을 좋아했고 순이는 공부를 좋아해서 우리는 틈틈이 도서관에 다녔다. 나는 책을 읽고 순이는 공부를 했다. 순이의 닦달에 못 이겨 같이 공부하기도 했는데, 내가 책을 펴 놓고 딴청을 부리고 있으면 순이가 나에게 문제 풀이를 해 주는 식이었다. 그런 문제 풀이가 은근히 도움이 되어 성적이 조금 오르기도 했다. 수학이 아주 약간 좋아지기도 했고 단어 암기가 게임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순이는 내가 암기해야 할 단어를 자기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암기하기 수월하도록 나와 함께 이어 말하기 게임식으로 툭툭 던져 주곤 했다. 순이는 대학을 위해 공부하면서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주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갈피를 잡지 못했고 미래는 불투명했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대화를 하고 마음을 나누고 미래를 공유할 수 있었던 건 오랫동안 함께 한 시간만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로 우리는 대학을 다니는 기간 동안에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다녔기도 했고, 각자 다른 관심사가 생겼으며, 어울리는 사람들이 달라져서이기도 했다. 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지방에 있는 신생 대학에 갔고 기숙사 생활을 했다. 서울을 오가는 차비와 서울에 와서 사용하는 지출이 부담스러워 아르바이트를 우선시했다. 이건 차마 얘기하지 못했지만 나는 순이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다. 순이는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의 학생이었고 바쁘게 공부와 다른 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나와는 점점 더 멀어지겠구나 싶었다.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관심에서 떨어뜨리려는 나와는 다르게 순이는 틈틈이 잊지 않고 나를 챙겨주었다.


우리가 다시 가까워지게 된 건 내가 졸업을 하고 다시 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아니다. 순이는 기뻐했지만 서울 생활은 나를 더 힘들고 약하게 만들었다. 몸과 마음이 약해졌고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순이를 더 멀리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응급실에 누워서 오가는 의사들의 차가운 손길을 받으며 따뜻한 순이의 도시락이 생각났다. 물론 보온 도시락이 아니어서 따뜻하지는 않았는데 왜 그 밥이 따뜻하게 느껴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순이는 내가 그리웠다고 했다. 자기의 재잘거림을 들어주고 함께 해 주었던 내가 그리웠다고 했다. 서로가 하는 말을 그대로 듣고 이루어지리라고 믿었던 우리의 시간들이 자신이 치열한 이 사회에서 진득하게 버텨낼 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나는 몸속에 있는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하는 몸이 되었다. 엄마는 여전히 바빴고 순이가 자주 병실에 찾아와서 내 병시중을 들어주었다. 병원비가 걱정이었는데 엄마도 모르고 있던 아주 오래된 보험이 하나 발견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너무 오래된 보험이라 지금은 없는 종류라고 하는데 엄마도 언제 누구를 통해서 이 보험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숙모가 보험 회사를 다닐 때 엄마한테 하나만 들어달라고 해서 들은 보험 같다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엄마는 엄마 보험이 아니라 내 보험을 들었다. 숙모는 이제 없다.


순이는 남자친구가 끊이지 않았다. 오랜 만남도 짧은 만남도 있었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이건 다 내 탓이라고 했다. 내가 자기를 방치했던 20대 초반에 외로워서 생긴 습관이라나 뭐라나. 순이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결혼은 무조건 여자가 밑지는 장사라고 여겼다. 동거는 괜찮아도 결혼은 결사반대. 반면에 나는 이왕이면 결혼이라는 걸 한 번쯤은 해 봐도 괜찮지 않냐고 생각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함께 따뜻한 가정을 꾸리는 걸 상상했다.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는 잘 생기지 않았고 한번 사귀면 오래 만났다가 헤어지면 상실의 아픔에서 잘 벗어지니 못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갔다. 30대 중반을 지나며 순이는 다니던 좋은 회사를 그만두더니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했다. 대학원은 너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고 한 분야만 파고들어야 하니까 일단은 이것저것 배워야겠다며 여기저기에서 강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난 이때만큼 순이가 멋있던 적이 없다. 순이를 응원했다.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말로 순이의 기를 꺾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말한다. 지금 이 나이가 되었으면 규칙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을 구하고 월급을 받으면서 조금은 안정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지금 이 나이에 다른 걸 도전하는 건 너무 무모하다고, 다 네가 걱정되어하는 말이라고. 안 그래도 걱정을 빙자한 엄마의 잔소리에 나도 힘들어하고 있는데 나에게 모두 이렇게 심한 걱정을 해주니 나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순이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건 해봐야 나중에 속병 나지 않는다고, 또 지금이 가장 빠를 때일지 모른다고 나를 조용히 지지해 주었었다. 이제는 내가 순이를 응원해 줄 차례.


그렇게 우리 둘 다 잘 되었으면 참 좋으련만, 영화 같은 일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지 아직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과도 돈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만나면 신세 한탄을 하고 우울해질 쯤에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하며 꿈꾸는 사람의 반짝이는 눈으로 돌아온다. 순이와 대화하고 나면 힘이 생기고 잘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순이가 갑자기 결혼을 했다.

내 생일에 결혼을 했다. 결혼기념일이 내 생일이라니 그건 너무 하지 않나.


결혼을 준비하며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순이와 나, 각자의 미래가 아닌, 순이와 순이 신랑 될 사람의 미래를 얘기하게 되었고, 결혼 준비의 설렘과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임신의 불안과 시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아이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신랑이 아이를 좋아한다면서 임신을 빨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이 탓에 걱정이 된다고 얘기했다. 나도 너랑 나이가 같아, 순이야.


부유하고 넉넉한 사람은 아니지만 순이를 아껴주고 순이의 꿈을 지지해 주는 사람인 것 같아서 안심이 되고 감출 수 없는 순이의 표정을 보면 잘됐다 싶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조금 씁쓸했다. 나 질투하는 거야?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순이에게 실망하기도 하면서 일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내 생일과 순이의 결혼기념일 날이었다. 나는 순이의 축하를 기다렸고 아주 잠시라도 만남을 기대했다. 하지만 순이는 연락이 없었다. 우울했다. 슬펐다. 외로웠다. 그날따라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해야 할 작업들은 뒤로 미루게 되었다. 두고 보자, 하면서 순이에게 트집 잡을 일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너무 서운하다고!! 크게 외칠 수 있는 그런 큰 사건.


밤이 되었다. 늦은 귀가를 하며 톡을 보냈다. 자니? 순이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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