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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Feb 21. 2024

나는 기억한다, 기억하지 못한다.

- 라라 소소 18

 1. 나는 기억한다.


사랑하는 쌍둥이 조카, 인겸이와 도겸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장면을 나는 기억한다. 때는 겨울이었고, 겸이들이 맞이한 일곱 번의 겨울 중의 어느 하루였다. 나는 보통 혼자서는 도겸이와 인겸이를 겸이들이라고 부른다. 둘을 한꺼번에 급하게 부를 때에는 겸쓰(Gyeoms)라고 부르기도 하고 메모를 할 때는 겸둥이들이라고 쓰기도 한다. 겸이들 할머니(엄마), 겸이들 할아버지(아빠), 겸이들 아빠(오빠), 겸이들 엄마(새언니), 가족 전체를 칭할 때는 겸이네 가족이라고 부른다. 이 아이들이 쌍둥이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인격체를 가지고 있는 개별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이를 존중해 주고 싶다. 아이들을 부를 때에는 되도록 도겸이 인겸이, 그리고 인겸이 도겸이, 이렇게 번갈아 가며 이름을 불러주곤 한다. 도겸이가 먼저 태어나서 첫째이고 인겸이가 나중에 나와서 둘째이기는 하지만 형과 아우의 구분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둘째다. 내 이름보다는 누구 동생, 어느 집 딸이라고 더 많이 불렸다. 이름은 고유하다. 고유한 이름을 불림받는 건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내가 둘째여서 이름을 많이 불림받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며 둘째인 인겸이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래도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인겸이 도겸이라고 하면 그다음에는 도겸이 인겸이라고 덧붙여 불러준다.


형과 아우의 차이는 무엇일까, 종종 생각한다. 울 겸이들은 이란성이어서 다르게 생겼는데, 쌍둥이인 걸 알고 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묻는 게, 누가 형이니?, 이다. 이 아이들은 같이 태어났다. 물론 같이 태어났다는 말보다는 한 뱃속에 같은 시간과 기간 동안 머무르면서 자라다가 한날에 나왔다는 말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세상으로 나오는 길이 하나여서 둘이 나오려면 순서가 생기기 마련이다. 배을 가른다고 하더라도 먼저 보이는 아이가 먼저 나오면 나중에 나오는 아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약간의 시간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형이라는 무게와 아우라는 무게는 각각 다르겠지만 어깨에 짊어지게 되었을 때 각자가 느낄 무게감은 타인이 판단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째이기에 받는 기대감과 그에 따른 부담감을 둘째인 내가 짐작밖에 하지 못하듯, 둘째만의 고충은 첫째가 감히 예상하지 못하리.


이 아이들은 커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사실 지금, 이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어떤 사건과 사물에 대해서 놀라고 신기할 만큼 풍부하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경험과 논리적인 사고는 아무래도 부족하여 생각과 감정을 물어보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지금은 매일 거의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 생각을 말하고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하게 될 때, 함께라는 상황이 비슷한 말을 낳기도 한다. 서로 눈치를 보며 종종 상대를 따라가기도 한다. 한 공간에서 자고 함께 먹고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놀고 씻고 하면서 생활하고 있지만 조금 더 크면 각자의 공간이 생기게 될 것이고 그 공간 안에서 각자의 경험치를 쌓아나가게 될 터인데, 그때는 또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자라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어른의 욕심으로 쌍둥이를 무조건 하나로 키우는 건 위험하다고 한다. 한 명이 하나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하는데, 쌍둥이라는 이유로 반씩만 받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들었다. 이를 주의하려고 한 명씩 샤워를 시키기도 하고 따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더 어렸을 때는 서로에 대한 인식과 마음이 크지 않아 각자 한 부모를 차지하는 걸 좋아하더니 이제는 둘이 서로 재미있게 잘 놀아서 둘이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모습이다. 모든 쌍둥이가 서로 친한 건 아니고 오히려 멀리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우리 겸이들은 자주 칭얼대고 싸우기는 해도 아직까지는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하겠다.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지만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라라 고모와 오래도록 함께하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우리 겸이들은 굉장히 열심히 뛰어논다. 놀이터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최선을 다해서 뛰어다니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난다. 이제는 둘이서 술래잡기도 하고 시소도 함께 타고 서로 친한 친구의 모습을 보인다. 몇 해 전만 해도 서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시간을 보내며 함께 잘 놀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일 년일 년이 다른 모습이다. 아이들이 뛰어놀 때면 약간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살짝 날린다. 둥근 이마와 자그마한 콧잔등에는 땀이 방울방울 맺힌다. 코로나 시기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녀서 마스크가 익숙한 아이들이라, 마스크를 쓰고 놀 때는 마스크 안이 젖어오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마스크 없이도 숨을 편안하게 쉬며 뛰어다닐 수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다. 겸이들이 야외에서 뛰어노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그날 해가 반짝이고 있어도 바람이 불어도 안개로 흐려 있어도 날씨와는 상관없이 그저 밝다는 느낌이 든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떤 밝음이 이 아이들을 감싸고 있다. 이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에서 그런 것이 느껴지는 듯하다. 열심히 뛰고 크게 소리 지르고 제 맘에 들지 않거나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속상해서 토라지는 모습마저도 밝게 빛난다. 어떤 때에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담 위로 덜컥 기어 올라가기도 하고 미끄럼틀을 아래에서 위로 반대로 올라가기도 한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인겸이도 도겸이도 아직은 배려라는 걸 말로만 이해하고 마음으로는 이해하는 거 같지 않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는 배려가 필요하고 양보가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마음에 그런 부분이 들어차지 않았기에, 발단 단계적으로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고 하니, 그저 조금씩 느끼고 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주 양육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배려라는 걸 모르고 살아가는 어른이 한둘일까.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게 젤 큰 문제겠지만 적어도 알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겠다.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발휘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생활에서 보여주기, 아이들에게만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렇게 하라고 다그치지 않기, 정말 중요하다. 배려라는 걸 어떻게 알고 어떻게 깨우치며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둥이 조카들이 있어서 고맙고 좋다.  


    



2.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몇 주 전에 H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린 시절의 얘기가 나왔다. H는 어린 시절을 꽤 생생히 잘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와 유치원 때 외국에 가서 생활하기 전과 후의 일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 기억은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유치원 전후로는 사진으로 남은 기억이 전부다. 그 기억과 그 느낌이 맞는지 정확하게 확신할 수도 없다. 어쩌면 엄마에게 들었던 말이 기억과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먼 과거의 시간을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H에게 너는 참 기억을 잘하네,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라고 말하니까 H는, 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잖아요,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또 그게 맞기도 하다. H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다. 유치원 때와 그전, 그리고 초등학교 때가 지금과 십 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에게 초등학교는 까마득하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경험한 두 가지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학교와 집이 멀어 아침에는 학교 버스를 타고 등교하고, 저녁에는 학교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대중교통으로 하교하곤 했다. 비슷한 동네에 살고 있던 J는 종종 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어느 여름, 그날도 J는 나를 기다려 주었고, 해가 지려고 하는 그 시간에 버스 안에 앉아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몇 정거장이 지나, 나는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학교에 두고 온 수영복 가방이 떠올랐다. 수영복을 학교에 두고 가면 수영장 물에서 묻은 소독약이 수영복을 상하게 만들 것이고 무엇보다도 덜렁거리며 가방을 챙겨 오지 못해서 엄마에게 혼날 생각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내렸다. J도 같이 내렸다. 우리는 그 몇 정거장을 걸어서 학교에 돌아갔다. 그 길에는 플라타너스 나무로 기억하는 큰 나무들이 인도를 둘러싸고 있었다. 공포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 나무에서 송충이인지 애벌레인지가 뚝뚝 떨어지더니 우수수 우리의 길을 막아서는 게 아닌가. 어디에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송충이를 온갖 난리와 소리로 피해 가며 겨우 학교에 다시 돌아가서 수영복 가방을 들고 돌아왔던 그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날 평소보다 집에 많이 늦게 도착했고, 나는 칠칠치 못해서 혼나고, J는 나를 기다려서 늦은 거에 더해 다시 학교까지 돌아갔다가 온 시간까지 혼이 났다. J야, 늘 미안하고 고마워. 우리는 여전히 만날 때마다 종종 이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하나 더 인상적인 건 4학년 때의 기억으로 생각된다. 셋째 삼촌이 한동안 우리 집에 같이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몇 번 삼촌의 차를 타고 학교에 갔는데 초등학생치고는 너무 일찍 아무도 없는 학교에 가서 그 풍경과 기운과 느낌이 특이했던 기억이다. 나는 맨 끝 교실을 사용하고 있었고, 학교 건물 끝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우리 교실이 바로 보였다.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가자 새벽의 싸늘한 추위가 교실을 감싸고 있었다. 그 시간에 당연하게도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고요했다. 새벽이라 어두웠지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바로 교실 전등을 켜지 못하기도 했다. 살며시 자리에 가방을 놓고 복도로 나왔고 다른 교실에도 아무도 없을까 생각하며 텅 빈 복도를 천천히 걸어 중간까지 갔다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교실을 차근히 둘러보았다. 여기까지가 내 기억의 끝이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오빠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랑 두 살 차이가 나니까 6학년이라 나와 함께 학교에 왔을 텐데 이상하게도 오빠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신기한 건 오래전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거에 비해, 내가 잔 기억력이 참 좋다는 거다. 남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자잘한 사건들이나 느낌들 또는 그들이 했던 말들은 기억이 잘 난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나 시험을 볼 때의 기억과는 다르다. 특히 나는 암기과목에 취약했는데 암기를 해야 하는 부분의 흐름을 잘 모르겠고 이해도 잘 안 되어 기억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무엇이든 이해를 하면 기억에 남는 편이었지만, 그때는 어쩌면 이해하려는 생각보다 암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도 역사는 어렵다. 한국사는 정말로 모르겠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에 부끄러울 때도 있다. K는 역사를 잘 알고 있고 관심도 많고 그에 관련된 책들도 좋아해서 종종 그런 주제를 꺼내기도 하는데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종이 언제고 뭐를 했고, 이런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아 순서가 엉망이다.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아무래도 각인이 수월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곤 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기억이 난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기억이 나도록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고 자기 나라의 역사를 아는 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제야 조금씩 들고 있다. 전에는 힘들고 아픈 역사나 사건을 기억하는 건 나에게 너무 아프고 힘든 일이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기억의 중요성을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너무 무지한 나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잘 알지 못하면 글이 깊어지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은 어떤 면에서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하이틴 로맨스에 그쳐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이틴 로맨스가 별로라는 게 아니다. 모든 글은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있을 게 분명하고 작가가 애쓰고 노력했으니 그 노고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내 기준으로 내 글을 보았을 때는 그게 잘 적용이 되지 않아서 문제지만.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떠오르는데 이를 하나로 정리하고 생각하다보면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이들어 간직하고 싶어진다. 물론 힘든 기억과 아픈 기억, 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도 많다. 어떤 기억이든 내 안에 담겨있고 그게 나라는 사람이라 쉽사리 버리게 되지는 않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스라한 기억들도 마음에 담아 내가 나임을 인지하고 있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해가 지고 바람이 불며 불빛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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