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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Feb 28. 2024

소소하고 가난한 일상에 갑자기 끼어들어 온 치아 단상

- 라라 소소 19

나의 일상은 아주 단순하게 돌아간다. 주로 책 읽기, 글쓰기, 수업 준비하기, 수업하기, 겸이들이랑 놀기가 대부분이다. 전에는 일과 성당, 이 두 단어로만 삶이 돌아갈 정도로 치열하게 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단순하고 소박하다. 소박하다는 표현은 긍정형이고 약간은 가난하여 소박할 수밖에 없다. 치열했던 삶에서 얻은 건 병이라 그 생활에 어느 정도는 - 마침표까지는 아니더라도 – 잠시 쉼표를 찍고 스스로 이런 생활에 돌입한 지 몇 년이 훌쩍 지났다. 작년에는 갑자기 나의 자발적인 결정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더 소박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 지금은 조금 더 가난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가난하고 게으르고 열심인, 그런 날들이다.


일주일에 두 번은 수원집에 간다. 쌍둥이 조카 겸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엄마 밥을 얻어먹고 그때그때 필요한 생활용품을 수확하여 가방에 넣어서 서울로 돌아온다. 필요한 생활용품은 소소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커다랗기도 하다. 건전지 한두 개나 인스턴트 믹스 커피 서너 봉지가 되기도 하고, 샴푸나 갑 티슈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간식이나 먹을 게 가득 담겨있는 찬장을 슬쩍 열어보며 작은 봉지 과자나 참치 캔 한 개를 말하지 않고 가져오기도 한다. 냉장고에 있는 과일이나 반찬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엄마가 챙겨주기도 하고 뻔뻔하게 내가 달라고 하기도 하고.


요즘 겸이들은 수영장에 다니느라 바쁘기도 하고 신이 나 있기도 하다. 엄마는 오랫동안 수영을 했고, 거의 선수급까지 가능해서 오빠와 나는 엄마에게 수영을 배웠다. 오빠는 잘하고 나는 물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는 할 줄 안다. 수영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니, 겸이들이 태어나서 조금 자란 이후에 물가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에 겁을 먹던 아이들도 물속에서 재미있게 놀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수영 열이 치솟은 엄마와 오빠는 이 작은 아이들에게 수영 동작을 알려주기까지 이르렀다. 아이들은 곧잘 했다. 그 연장선은 제대로 된 강습을 받도록 해 주는 수영반 등록에 이르게 된다. 다행히 아이들은 즐겁게 다니고 있다. 수영장에서 유치원 친구들도 만나고 친구들과 수영도 하고 같이 놀 수 있으니 더 신나는가 보다.


며칠 전에는 치과에 다녀왔다. 아이들 이가 조금씩 빠지고 새 이가 나고 있다. 어금니는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잇몸을 찢어야 한다고 하더니 다행히 잘 삐져나오고 있다고 한다. 충치 예방을 위해 치아에 불소를 도포하는 치료도 받고 왔다. 치과도 두려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다닌다. 라라 고모보다 훨씬 낫다.



나는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사람을 좋아한다. 치아가 가지런하면 더 예뻐 보이기도 하지만 치열이 고르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의 웃음이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이빨까지 보이면서 활짝 웃으면 대부분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이다. 나는 그런 웃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람의 진심이 그 표정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주 그렇게 웃지는 않아도 어느 한순간 그렇게 웃는 모습이 내 시야에 포착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새로운 마음이 들고 더 따뜻한 마음을 품게 된다. 나도 사람들에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편안한 사람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이런 웃음이 진심으로 우러난다. 조금 망설이게 될 때도 있는데, 밥을 먹을 때나 식사 후에 양치질을 하지 않은 경우다. 이에 무언가가 껴서 혹시 서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거나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가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는 편이지만 입을 손으로 가리는 방법이 있으니 그냥 눈까지 작아지도록 이가 보이게 활짝 웃도록 놔두고 싶어 진다.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좋아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게 된다.


내 치아는 고르지가 않다. 앞니 두 개가 약간 오른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살펴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정면으로 보면 크게 차이가 없다. 앞니가 틀어져서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으니까. 사진을 찍을 때는 약간 다르게 보인다.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찍은 사진과 왼쪽으로 시선을 두고 찍은 사진은 차이가 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두면 왼쪽 뺨과 얼굴의 왼쪽 면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활짝 웃었을 경우, 이가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왼쪽으로 시선을 두면 얼굴의 오른쪽이 사진에 찍히고 약간 계단식 앞니가 눈에 띄게 되는 거다. 사람들은 모를지도 모르겠다. 나니까, 내 얼굴이니까, 내가 그 부분을 신경 쓰니까 그렇게 더 인식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이에 대해서 평소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생 때였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였나,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20대의 나는 바른 앞니를 원하며 교정을 하고 싶어 했다. 교정의 지난한 시간과 엄청난 비용과 지속적일 고통은 생각해 보지 않았고 그저 이가 가지런하고 바르면 보기에도 좋고, 내가 무언가를 씹고 자를 때도 이전보다 편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치과에 가보기도 했고 엄마에게도 얘기를 꺼내기도 했는데, 치과 의사도 엄마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치열이 고르지 않는데 왜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엄마 말씀에 따르면 치열이 고르지 않더라도 다른 치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치열이 더 흐트러지지는 않으면 굳이 교정을 권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뭐, 이미 이가 다 자랐고 이제는 영구치니까 더 이상 변화가 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내 이가 더 고르고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지만 간혹 가다가 치열이 고르고 하얀 사람을 보면 내심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나도 그런 치아를 가지고 있다면 더 화사해 보일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는데, 최근에 인겸이가 나에게 물어봤다.


“고모는 이빨이 왜 비뚤어?”


오오, 아이들 눈에는 내 이가 비뚜룸하다는 것이 보이는구나! 사실 나도 내 이가 왜 이렇게 어슷한지 이유를 잘 알지는 못해서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고 엄마가 종종 얘기했던 엄지손가락을 떠올렸다.


고모가 엄지손가락을 빨았거든. 쪽쪽. 왼쪽 엄지손가락을 그렇게 좋아했어. 조금 커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조금씩 몰래 빨았는데 그래서 이가 이렇게 조금 튀어나오게 자란 것 같아, 손가락을 빨아서 윗니가 약간 위로 들려진 거고, 아래는 왜 그런지 고모도 모르겠네,라고 대답했어야 하는데,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때 뜬금없이 내 이가 별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겸이들의 이는 예쁘게 잘 자라났으면 좋겠다. 인겸이는 지금 큰 앞니 하나가 빠져서 한 개만 있다. 웃을 때 활짝 웃는 게 좋은데 자꾸 입을 가리고 다물려고 한다. 한 개 빠진 이빨 때문에 그럴까. 엄마가 이렇게 웃으라고 했다는데, 설마 새언니가 입을 다물고 웃으라고 하진 않았을 거고, 인겸이 본인이 뭔가 다른 친구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극적이 되어 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일었다. 그래서 활짝 웃으면 정말 예쁘다고, 이빨 보이게 웃자고 얘기했는데도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을 때는 자꾸 입을 앙다물고 억지로 웃으려고 해서 괜히 내가 다 속상하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좋아, 진짜 아름다워 인겸아! 도겸이 너도 마찬가지야!


아이들은 사진을 찍겠다고 멍석 깔아주며 웃으라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표정을 짓거나 무표정을 만들어 버려서 사진이 덜 예쁘게 나온다. 반대로 하고 싶어 하는 청개구리 심보인가. 나도 그 시절에 그랬을까. 그래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으려면 급습해서 아무 때나 몰카로 찍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표정도 살아있고 이도 덩달아서 살아있다.



치과에 가는 걸 두려워하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도 치과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주 가지 않기도 하고, 가면 일단 치료비가 많이 드니까 더 안 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썩은 이가 있으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치료를 받을 때 아픈 건 둘째치고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드릴 같이 생겼고 드드드 소리가 나는 기계로 이빨 안에 썩은 부분을 매끈하게 밀어낼 때의 그 느낌이 으스스하다. 가끔은 신경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경우는 이가 평소보다 더 시리고 통증도 더 심하게 느껴진다. 또 입을 계속 벌리고 있어야 해서 입안에 자꾸 침이 고이고, 나는 입 안은 큰 편이지만 입 자체는 별로 크지 않아서 입을 벌리고 있으면 입술도 상당히 아프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기간에는 치과에서 치료받는 게 더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치과 의사나 치위생사들은 더 불안하고 불편했을 텐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이기적이었네.


건강검진으로 치과에 가서 구강검진을 했는데, 충치가 몇 개 보인다고 했다. 그때 잇몸이 많이 부어 있었고 일주일 넘게 아픈 상태여서 할아버지 의사는 잇몸 치료를 먼저 하고 충치 치료 얘기는 그다음에 하자고 제안했다. 약을 먹고 나니 잇몸이 나아져서 그 뒤로는 치과에 가지 않았다. 치과 가는 걸 자꾸 잊어버리거나 귀찮다고 안 가면 안 되는데 또 이래 버렸다. 급하게 들어간 옆 동네의 치과였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마음에 들었으나 그 동네에 갈 일이 드물다는 핑계를 대고 있는 나 자신의 게으름과 무관심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치아가 하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양치질하는 걸 좋아하는데 왜 내 이는 하얀색이 아닐까. 이를 하얗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스케일링 뿐만 아니라 화이트닝 케어를 따로 받아야 된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열심히 양치질만 해서는 되는 게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내가 커피를 좋아해서 치아가 하얗지 않을 걸 수도 있겠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 니코틴 때문에 치아도 잇몸도 색이 밝지 않은 것처럼. 찾아보니, 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입 안으로 넣고 씹는 음식물들이 이 미세한 구멍 안으로 들어가 색소가 침착되고 색이 변하는 거였다. 치아 미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기도 했는데 과산화수소가 포함된 미백제를 이용해 화학적인 방법으로 치아 표면에 쌓인 얼룩이나 변색된 물질을 없애주는 거라고. 치과에서는 미백제를 도포하고 광선도 쏘아주는 듯하고 집에서 셀프로 하는 방법도 이와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되며 시중에 여러 가지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치아에 미백되는 무언가를 붙이고 몇 시간을 보내면, 미백 효과가 있다고 한다. 관심은 있었지만 아마 금액이 비싸서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것도 나의 게으름이 한몫을 한 거다. 게으름과 치아 관리는 동일선상에 있다. 게으름과 나의 구석구석은 모두 동일선상에 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빨이 보이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때때로 해맑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들이 하나씩 생각난다. 계속 웃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어느 순간 수줍게라도 무방비 상태로 웃을 때는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호감이 가는 연예인도 그런 웃음을 가지고 있다. 유명하고 그저 잘 생기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미소를 띠고 이가 다 보이게 바보처럼 웃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 어디 없나. 요즘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지 않다 보니 그런 사람이 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코로나 시기 동안, 그 이후에도 자주 마스크를 매일 매 순간 끼고 있었으니 상대의 웃는 모습이 희미해져 가는 현상을 겪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그 사람의 얼굴도 조금은 변형되어 기억에 남겨지기도 해서 안타깝다.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마스크 낀 모습만이 아니라 마스크 없는 맨얼굴로 이까지 내 보이면서 무방비한 상태로 활짝 웃는 그런 얼굴 표정, 웃는 표정을 기억에 오래오래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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