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라 소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iara 라라 Mar 06. 2024

이럴 땐 난감하지만 행복하기도.

- 라라 소소 20

괜찮은 책 좀 추천해 줘!     


종종 듣는 말이다. 나는 순간 얼어버리고 마는데 이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곤혹스러운 상황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면서 이 대답이 뭐가 그리 어렵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혹은 많이 읽는 사람들은 내가 왜 곤혹스러워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의 마음까지는 잘 모르겠고, 나는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책을 추천해 주는 사람도 많겠지만 내가 당황하며 그렇게 느낀다는 거다. 위의 질문을 나에게 건넨 상대는 나를 믿고 있다. 내가 자신에게 괜찮은 책을, 어울리는 책을, 그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책을, 추천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질문을 했을 것이다. 이에 나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 진지하게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진지함’이라는 단어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대부분의 면에서 나는 진지한 사람이다.     


재미있는 소설이 읽고 싶은데 어떤 거 읽으면 좋을까?

괜찮게 읽은 에세이 있어?     


우주만큼 광범위한 첫 번째 질문보다 이렇게 약간이라도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조금 낫다. 아주 조금이지만...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있다. 소설 분야만 치더라도 내용이나 작가나 문체나 하나씩 세밀하게 따지고 들면 다양하고도 세세하게 나누어 책의 분위기를 구분할 수 있다. 상대의 독서 취향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책 추천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상대의 취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독서 취향은 조금 다른 경우도 종종 있어서 더 어렵게 느껴진다. 독서 취향을 안다고 하더라도 추천은 망설여지는 이유다. 이 책은 네가 좋아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건 그간 서로 책에 대해서 자주 또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경우인데 – 물론 그림이 예쁘거나, 어떤 부분에 있어서 상대가 떠오르면 조금 다르겠지만 - 그렇게 추천받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가 이런 인상을 주었나, 하는 생각에 고민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당연히 일 년 전의 내 상태와 지금의 내 상태는 다를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상태로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그 책이 나에게 들어오는 감정도 다르게 된다. 어떤 이는 최진영 작가님의 <구의 증명>을 읽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올해의 책으로 손꼽는 반면, 다른 이는 내용이 너무 기괴하다며 책을 덮어 버리는 경우도 봤다. 한 권의 책으로 하나의 내용으로도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감히’ 추천을 하겠는가.     


그래도 나를 믿고 물어오는 이들에게 가열 차게 거절만 할 수는 없으니, 이럴 때는 상대에게 질문을 건네는 방법을 사용한다. 소설이 더 좋은지, 에세이가 더 좋은지, 아니면 인문서나 과학서가 좋은지, 읽고 싶은 책의 관심 분야에 대해서 먼저 물어본다. 관심 분야를 파악하고 나서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아니 예전도 상관없으니 재미있었던 혹은 인상적이었던 책이 어떤 거였는지 얘기해 달라고 한다. 이 정도의 정보를 갖게 되면 어떤 느낌의 책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된다. 물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도 있고 읽어보지 못한 책도 있을 터이니 그건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평소에는 논픽션을 선호하지만, 픽션도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떤 소설을 읽으면 좋을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역사가 담긴 소설이 있고, 조금 가벼운 외국 소설이 있으며, 얇은 국내 소설도 있고, 요즘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는 미스터리 장르나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고 있는 고전도 있다. 사실 좋은 책은 너무너무너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책도 너무너무너무 많고 좋아하지는 않지만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도 너무너무너무 많다. 한국 작가님의 소설과 외국 작가님의 소설은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 점도 예비해 두어야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책 추천이라는 건.  


   

나와는 다른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어느 날은 괜찮은 에세이를 추천해 달라며 간단하게 문자를 보내왔다. 고민스러웠다. 내가 에세이를 선호하는 건 아니어서이기도 했고, 책을 좋아하는 친구지만 인문, 과학서를 주로 읽고 있고, 우리가 책 이야기를 할 때도 에세이를 언급했던 건 기억이 나지 않아서였다. 지금은 서로 멀리에 살아서 자주 볼 수 있는 친구가 아니고 어떤 에세이를 좋아할지 대화를 나누고 추천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히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십 대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우리가 나눈 책 이야기를 떠올리고 친구의 관심사를 생각하며, 어떤 에세이가 좋을지 책장을 살펴봤다. 최근에 읽었던 에세이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친구가 재미있게 읽었다던 한 교수님의 인문 에세이가 눈에 띄었다. 나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고 그 교수님의 책은 최근에 나온 신작도 읽은 기억이 있다. 반짝, 하고 스쳐 지나간 그 한 권의 책으로 친구가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골라보았다.     


그렇게, 고민 끝에 친구에게 보낸 목록은 아래와 같다.     


[소설가]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평론가]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시인]

- 김소연 <시옷의 세계>

- 장혜령 <사랑의 잔상들>

- 유희경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나는 소설을 주로 읽지만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시인의 감수성이 풍부하게 담긴 에세이를 좋아하고, 교수나 평론가가 쓴 진지와 유머가 곁들어 글이 담백한 인문 에세이를 좋아하며, 평범하면서도 소설 같은 삶이 담겨있는 소설가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위의 목록은 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위의 책들 말고도 좋아하는 에세이는 더 있다. 다양한 에세이스트의 재미있는, 감동적인, 공감 가는 에세이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위의 목록을 선택한 이유는 친구를 생각해서였다. 친구는 종종 시도 읽고 좋아하는 시인도 있다. 책을 고르며 친구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친구에 대해서 하나씩 생각할 기회는 은근히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친구와는 보통은 보고 싶다,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 커피 마시고 싶다, 산책하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바보처럼 같이 웃고 싶다,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싶다, 이런 생각만 하게 되는 거다.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면 선택이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고, 단순해지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있어 먹을 건 전자에 속하고, 책은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단순하게 선택한다고 해서 한 권만을 선택하리라는 보장은 없고, 모든 책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기는 하겠다. 내가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서 몰랐던 책이나 작가를 알게 된다는 기쁨이 선택에는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위 친구의 경우처럼 책을 많이 읽는 이가 괜찮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긴장이 더 되게 마련이다. 그래도 이들과는 책을 읽기 전이나 후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어서 그건 좋다. 내가 좋았던 책, 상대가 좋았던 책 이야기는 신나게 약간의 흥분을 섞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 나눈다. 어떤 부분이 좋았고, 이런 부분은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상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책을 읽으면 나중에라도 얘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이 났고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상대는 어떻게 읽을지 정말 궁금해할 때도 있다.     

 

이런 면에서는 독서 모임이 필요하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독서 모임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코로나로 일도 줄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평소보다 독서에 더 심취하게 되었다. 우연히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게 된 게 독서 모임의 시작이었다. 한 달에 한 권 정해진 책을 읽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10시에 온라인으로 책 이야기를 한다. 발제는 모임이 있기 일주일 전쯤에 미리 게시글로 올라온다. 진행자는 시간을 확인해 가며 발제문을 하나씩 올리고, 그 발제문에 대한 의견을 독서 토론에 참여하는 이들이 댓글로 올리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온라인이어서 새로운 이들과 대면하는 부담감도 적었고, 매달 새로운 책을 – 읽어본 책은 재독을 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 읽는 즐거움도 있었다. 발제를 통해 책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참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댓글로 의견을 말하다 보니 책 얘기 말고도 다른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어서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일상에서 마주 보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온라인에서의 새로운 인연이, 특히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들에게 고마웠다. 코로나 시기여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발제는 돌아가면서 했는데, 나는 신입이어서 일 년 정도 온라인 독서 토론에 참여한 뒤에 발제를 맡았다. 함께 읽을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읽고,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를 생각하고 정리해서 발제문을 만든다. 이런 과정은 혼자만의 독서에서 함께 읽고 나누는 독서로의 확장된 세계의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나고 활발하다. 일상에서는 이렇게 책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한 권의 책으로도 다양하게 생각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구나, 좋다!     


내가 참여한 건 하나뿐이지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하는 모임, 지인들과의 모임, 온라인에서 모집하는 모임이나 오프라인에서 모집하는 모임 등에도 참여하는 분들이 많았다. 모임에는 각각의 색이 있어 여러 모임에 참여를 해도 대부분이 다 좋다고 한다. 좋은 만큼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책 친구를 사귀고 책 이야기를 더 나누고 독서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아닐까.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라 모르는 사람들과의 오프라인 모임이나 온라인 모임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는 건 어렵지만 익숙해진 좋은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고 책 이야기하는 건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종이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간혹 종이책을 발견하면 너무 반가워서 대뜸 말이라고 걸고 싶지만 - 그건 지금 하는 얘기고,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 말을 건네지는 못하고 어떤 책인지 흘끔흘끔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읽은 책이나 내가 좋아하는 책이면 금세 알아채고 속으로 혼자서만 기뻐한다. 모르는 책을 발견하면 검색을 해 보고 이런 책도 있었구나, 재미있을까, 생각해 본다. 제목이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고 왠지 안타까워 발이 동동 굴러진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사람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책 제목이 잘 보이게 들고서 읽기고 하고, 궁금증을 주고 싶을 때는 북커버를 씌워서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아직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은데 책 추천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내가 하는 건 어려워도 추천을 무한히 받고 싶어 진다. 언젠가는 읽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 당장 읽고 싶어 지거나 읽어야만 하는 책이 있을 수도 있다. 상대가 책을 추천하는데 깊은 고민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요즘 읽은 책 중에서 어떤 게 괜찮았나요?   

  

이유도 설명해 주면 더 좋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하고 가난한 일상에 갑자기 끼어들어 온 치아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