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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Apr 17. 2024

나의 교통사고, 그리고 416 세월호 참사

- 라라 소소 26

  

하루 종일 울었다.     


길을 걷다가도 울컥하고, 전철에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고, 일을 하면서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참았다.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애썼더니 목구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고, 꺽꺽대다 목에 통증이 올라오고야 말았다. 흐르는 눈물조차 미안한 마음이다.     






대학교 1학년 여름이 오기 전에 교내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차가 나를 쳤고, 뒤에서 나를 보고 있던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붕 떴다가 털썩하고 떨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머리가 다치거나 겉으로 크게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다행이라는 건 그때의 생각이다. 다만 온몸이 떨렸고 온몸이 아팠고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엑스레이를 찍어 봤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이상이 보이지는 않았다. 무서워서 입원하지는 않았고 움직이지 않는 몸을 겨우 이끌고 벌벌 떨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앓았다. 다음날에는 더 아파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갓 성인이 된 젊은 나는 며칠 쉬고 나면 곧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서 며칠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몸이 아팠으니 다리와 허리 주변으로 돌아가며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가해자는 타과 전임 교수였고 처음에는 찢어진 옷도 사주겠다고 말하며 미안하다고 걱정도 해 주는 듯하더니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은 보험사에서만 왔다.      


타박상은 위험하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 아프다. 오래 걷지 못하고 습하거나 날이 궂으면 다리와 허리에 통증이 온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세한 통증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가 어느새 사라진다. 교통사고 후유증이다. 치료를 오래 받다 결국 합의를 했지만 합의금은 별로 받지 못했다. 아프니까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 돈으로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돈으로 평생 치료를 받지도 못한다. 나이가 들면 노화와 함께 통증은 더 심해질 거고, 전보다 더 자주, 또 더 많이 치료가 필요해질 거다. 한순간의 사고는 평생의 통증으로 이어진다.     


내 통증의 원인은 발견하지 못했다.     


거의 매일 다리를 주무른다. 거의 매일 길을 걸으면서 혹은 걷다가 고관절부터 슬관절까지 오른쪽 다리 옆을 툭툭 두드린다. 자다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손으로 움직이며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심하게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가거나 가지 않는다. 병원, 한의원, 자연치료, 등 좋다는 곳은 다 가봤고 괜찮다는 치료는 다 시도해 봤다. 가도 크게 차이가 없고 가면 돈이 드니까 점점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운동도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통증은 익숙해진다. 하지만 익숙해진다고 아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이 교통사고뿐 아니라 다른 지병도 갖고 있어 몸이 약한 편이다. 피곤해하고 자주 아픈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지인들이 많다. 다른 건 몰라도 교통사고나 수술에 대한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고 걱정한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아프고 힘들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냐며 고생이라고 얘기해 준다. 내가 얘기를 잘 안 하기는 하지만 상대가 먼저 이제 그만하라고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때 교통사고 합의금 받았다며, 그거면 됐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다. 가까운 사람이든 그냥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40-50대의 부모들은 50-60대가 되었고, 10대의 동생들은 20대가 되었고, 20대의 형제자매들은 30대가 되었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에서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 실종된 304명만이 나이를 먹지 않고 그날 그 모습 그대로이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4월이 되면 지겹다고,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소리를 스치듯이 많이 들었다. 나는 교통사고였고, 그 후유증으로 아프고, 심지어 살아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으면서, 세월호 사건은 사랑하는 가족이 당한 사고였고, 허탈한 죽음이어서 말이 안 되고 심지어 이제는 만날 수조차 없어 너무나도 아픈데 이들에게는 칼로 생살을 베어내는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아픔에는 기한이 없다. 죽음 이후는 어떨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으니 죽음 이후까지 아프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죽기 전까지 평생 통증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이런 사고가 일어나서도 안 된다.     


그사이에 다른 참사나 사건들이 벌어졌음에 허탈하고 분노가 치밀지만, 그럼에도 또 다른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더 살펴야 하고 더 투쟁하고 더 연대하며 더 서로 아껴야 한다. 나는 용기도 없고 비겁한 사람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다만 어느 상황에서든지 끊임없이 울고 함께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언제나 기억하고 이야기하며 하릴없이 글을 쓰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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