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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Jul 24. 2024

오다 주웠다 + 딜레마

- 라라 소소 40

 얼마 전인가 아버지가 던지듯 주고 간 오만 원권 지폐 때문에 엄마와 한참을 웃었다.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무심하게 툭. 평소에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에 약간의 민망함과 어색함과 관심이 더해진 모습이었다.     


 “오다 주웠다”라는 표현이 한때 유행했고, 이는 무심한 듯 신경 쓴 행동을 보일 때면 요즘에도 종종 사용되는 표현 중에 하나다. 어디서 유래되었나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또 놀랍게도 그리 오래된 유행어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전에 누군가의 사용으로 유행하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가볍게 찾아본 바에 따르면 2016년에 종영된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에릭이 이 대사를 한 이후에 이슈가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마음을 전하고는 싶은데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준비한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오다 주웠다”라고 말을 하며 전해주는 모습. 아무 말 없이 그냥 줄 법도 하지만 미리 신경 쓴 게 아니고 이곳에 오다가 ‘우연히 주운 것’이니 부담은 갖지 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누가 그것을 전달하고 누가 그 말을 건네느냐에 따라서 받는 상대의 기분이 정해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웃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질 텐데, 만약 평소에 정말 별로에다가 맘에도 들지 않는 사람인데 오다 주웠다는 물건을 건넨다면 과연 좋은 마음이 들 수 있을까. 하지만 막상 받아 본 물건에 정성이 가득 담겨 있고 절대 주운 물건일 수가 없다면 그 마음이 감동으로 바뀔 수 있을지는 잠시 고민을 해 봐야겠다. 진짜 어디서 가져온 물건은 아닌지 의심하는 나쁜 생각이 먼저 솟아난다면 참 난감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추측만 해볼 뿐이다.     

 

 사랑과 정성은 물건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눈빛과 행동과 말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성의 없어 보이거나 센스 없는 선물도 있겠지만 선물을 건네는 상대의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겠지.    


 


 현대 사회는 물건 문명의 시대로 손쉽게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다. 배송 시스템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특히 우리나라 택배 기사님들의 노고는 밤낮을 가르지 않는다. ‘문 앞 배송’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소비자가 배송받을 위치를 지정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문 앞, 경비실, 택배 수거함’ 등 선택할 수 있는 장소가 다양하다. 문 앞 배송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이 시스템이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편리한지 잘 알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나의 편리를 위해서는 문 앞 배송이 여러모로 좋은데 택배 기사님의 입장에서는 문 앞 배송만큼 불편하고 시간이 낭비되는 게 없을 테니 말이다. 소비자는 서비스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충분히 이용해도 무방하다는 데 의견을 기울이지만, 다량의 물건을 (아파트 기준으로) 한층 한층 문 앞으로 배송하기보다는 경비실이나 택배 수거함 같은 공간에 한꺼번에 보관을 맡기는 게 훨씬 편리하고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 몸이 불편하거나 꼭 필요한 사항이 아니고서 단지 잠깐의 편의를 위해 문 앞 배송을 신청한다는 게 왠지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택배기사님들에게는 물건의 배송 건수가 수당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시간은 생명과 같으니 밤낮없이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프리랜서라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날도 있고 바빠서 출근 전에 택배를 받아 확인하고 나가고 싶은 날도 있기에 문 앞 배송을 무조건 고집하고 싶기도 하다. 몇 번은 제대로 배송이 되지 않아서 택배 기사님께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다. 차라리 장소 지정을 하지 않았으면 기분이 덜 상했을 텐데 떡하니 문 앞 배송을 체크했는데도 배송 완료 문자를 받고 문을 열어 확인할 때 물건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화가 난다. (이럴 때는 대부분 문 앞이 아니고 경비실로 배송이 되어 있는 경우다. 경비실로 내려가서 물건을 찾아오면 될 텐데 그게 뭐 별거라고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딜레마 극복이 꼭 필요한가 싶지만 “오다 주웠다”의 정성을 생각하면 배송받는 편리함은 둘째치고 보내는 사람의 정성과 받는 사람의 기쁨을 먼저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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